[이채훈의 클래식비평]뮤지컬 <루드윅> 네 번째 시즌, 뜨거운 열기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뮤지컬 <루드윅> 네 번째 시즌, 뜨거운 열기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2.12.2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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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피아노의 감동, 일인다역 충만한 무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불황과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뮤지컬의 열기는 뜨겁다. 노래와 드라마가 어우러진 뮤지컬은 이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위안을 준다. 라이브 음악 위에서 펼쳐지는 꿈과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네 번째 시즌 또한 그러했다.

이 뮤지컬은 ‘음악의 성인’ 베토벤 생애의 팩트 위에 픽션을 더한 이른바 ‘팩션’이다. 베토벤은 실제로 50살을 바라볼 무렵 음악을 제쳐둔 채 조카 카를의 양육에 몰두했다. 그를 자기 아들로 여기며 강제로 음악을 가르쳤다. 전기작가들은 이 지나친 집착의 원인을 정확히 밝힐 수 없었다. 뮤지컬 <루드윅>은 이 지점에서 픽션을 도입한다. 베토벤은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찾아온 ‘신동’ 발터를 거절하는데, 그 아이는 영국으로 가던 중 선박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베토벤은 어린 발터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 때문에 조카 카를에게 집착하게 된다. 이 스토리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베토벤이 주인공인만큼 그의 음악을 활용했는데, 대체로 무난했다. 첫 곡을 베토벤 소나타 중 가장 애틋한 느낌의 E장조 소나타 Op.109로 선곡한 것은 신선했다. 교향곡 <운명>, <에로이카>, <전원>, <합창>을 메들리로 처리하고 교향곡 7번의 단조 악장으로 마무리한 것도 깔끔했다. 마지막 노래 <모두 기억할 당신의 음악>을 베토벤 <비창> 소나타의 주제에서 따 온 것도 느낌이 좋았다. 막이 오르기 전 <비창> 소나타와 <템페스트> 소나타를, 막이 내린 뒤 <운명> 교향곡을 들려준 것은 극장을 찾은 손님들이 베토벤의 음악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배려한 좋은 서비스였다.

어린 베토벤, 청년 베토벤, 늙은 베토벤이 숨가쁘게 역할을 바꿔가며 연기하도록 한 연출 테크닉은 훌륭했다. 5명의 배우들은 일인다역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소화하여 충만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베토벤 박민성, 청년 조훈, 마리 유소리 등 주연 배우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했다. 특히 김시훈은 어린 베토벤, 조카 카를, 신동 발터로 변신하며 신들린 듯 연기하여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음향과 조명도 효과적으로 잘 사용했다. 특히 베토벤의 청각 상실을 묘사한 그로테스크한 음향 효과는 실제 베토벤이 앓았던 귓병의 끔찍한 느낌을 잘 재연했다. 다만, MR 사운드의 음질이 좋지 않아서 윙윙하는 느낌이 들었고 귀가 아팠다. 최상의 사운드를 제공해 주기 바란다. 

이 뮤지컬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라이브 피아노가 맹활약한다는 점이다. 27일 공연에서 조재철은 대사와 연기와 피아노 연주를 넘나드는 신공을 발휘했다. 까다로운 청중이라면 더 완벽한 연주를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조재철의 연주는 뮤지컬의 흐름을 이끌고 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루드윅>은 피아니스트의 기량에 따라 퀄리티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므로 더 좋은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주기 바란다. 업라이트 피아노를 사용했는데, 이왕이면 최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하면 좋겠다. 

베토벤의 고뇌와 열정뿐 아니라 그가 얼마나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였는지 충분히 보여주었으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 베토벤은 카를과 함께 살게 됐을 때 “아내는 없지만 어엿한 가정을 이뤘다”며 기뻐했고, 자기에게 음악을 배우고 싶어한 소녀 에밀리에에게 “예술이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정답게 설명해 주었다. 이런 발언을 대사에 적절히 녹여내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듯하다.

▲뮤지컬 ’루드윅’ 커튼콜
▲뮤지컬 ’루드윅’ 커튼콜

마리에게 베토벤의 편지를 전달한 젊은이를 슈베르트로 설정한 것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탄탄한 팩트에 기반하여 픽션을 추구하는 게 목표라면, 슈베르트보다 리스트로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10대의 리스트는 실제로 베토벤을 찾아와서 가르침을 부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슈베르트 즉흥곡 G♭장조 대신 리스트 <사랑의 꿈>을 연주하면 될 것이다. 대사 중 ”그 잘난 모차르트“란 표현은 다소 거슬렸다. 베토벤은 헨델, 바흐와 함께 모차르트를 평생 존경했다. ”베토벤의 음악이 평생 지향한 것은 슈베르트 음악“이란 대사도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꿈꾸는 듯한 선율, 완전히 새로운 화음, 베토벤이 가지 않은 길“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이날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배우들이 절규하듯 대사를 처리한 뒤 서두르듯 노래로 이어가서 힘겨워 보였다는 점이다. 대사와 노래의 경계가 불분명했고, 음정과 프레이징이 불안했다. 비교적 안정된 노래를 들려준 것은 끝 부분 베토벤의 <피아노>와 마리의 <모두 기억할 당신의 음악> 정도였고, 다른 노래들은 듣기가 편치 않았다. 배우들이 너무 숨 가쁘지 않도록 대사를 줄이고 피아노 전주를 늘여서 충분히 호흡할 시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