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소설 《데미안》이 미술작품으로 거듭나다!
[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소설 《데미안》이 미술작품으로 거듭나다!
  • 황현탁 작가
  • 승인 2023.01.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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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 작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다.” 비록 독일어가 아닌 한글과 영어지만, 전시장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장인 이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소설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 이름으로 《데미안 어느 청춘의 이야기》(Demian die Geschichte einer Jugend)란 제목으로 1919년 출판되었으며, 10쇄 전까지 가명으로 인쇄되었다.

『10살의 어린 싱클레어가 우쭐대는 기분에서 사과도둑질을 했다는 거짓말로 인해 나이든 학생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협박을 받는데, 데미안을 만나 ‘크로머의 노예’처럼 행동해야 하는 불안을 떨쳐버리게 된다. 김나지움에 진학해서는 주정뱅이, 구제불능의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혀 제적경고까지 받는다. 베아트리체를 만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새로운 인간이 되고, 학교생활 과정에서 ‘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학에 입학한 후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꿈을 발견하라.’는 격려를 받으며, ‘사랑’에 대해 알아간다. 전쟁이 일어나 데미안은 동원되고, 싱클레어는 참전하였다가 부상당해 입원한다. 데미안은 ‘네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면서, 나쁜 처지에 이르면 자신과 에바 부인이 도울 것이라며 입맞춤한다. 잠에서 깨어나 데미안을 닮은 자신을 모습을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난다.』

▲(좌측부터) KMCA
▲(좌측부터) KMCA 《데미안》전시 포스터, 소설 《데미안》초간본 표지 (사진=황현탁 제공)

소설 《데미안》의 시대적 배경은 서문에 쓰인 대로 ‘대자연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기도 하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이며, 데미안은 전쟁에 동원되었고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 역시 전장으로 가 부상을 당한다. 그곳에서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듯이 발버둥 쳤고,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데미안을 만나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잠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그의 인도자였던 ‘데미안’과 닮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마침내 자아를 발견한 것이다.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가까이에 위치한 K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데미안展>이 열린다. ‘현대미술, 개념미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맛을 볼 수 있다. 여러 작가들이 소설속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심리나 그가 처한 상황,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이나 상징, 심지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만들어’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데미안》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는 사실도 적시하고 있다.

▲(좌측부터) 데미안 인물 관계도, 명언(한글) (사진=황현탁 제공)
▲(좌측부터) 데미안 인물 관계도, 명언(한글) (사진=황현탁 제공)

또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원하는,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는 도움이 될 거야”,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든 것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어두운 골목들과 환한 집들, 탑들, 시계 치는 소리와 사람들 얼굴, 편안함과 따뜻한 쾌적함으로 가득 채운 방들, 비밀과 무시무시한 공포로 가득찬 방들, 따뜻하고 비좁은 방의 냄새, 토끼와 하녀들의 냄새, 가정 처방약 냄새와 마른 과일향기가 난다.”와 같은 소설속의 문장들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외 여러 작가들과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나름대로 주인공의 불안과 두려움, 방탕과 혼란, 성욕과 사랑, 자아실현의 상태나 과정들을 작품화해놓았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해가면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 즉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그림, 설치, 영상, 문자, 오브제 등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작품 주위 설명문에 적어놓은 소설의 장면들과 작가의 의도를 읽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관람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좌측부터) 명언(영어), 싱클레어의 일기 (사진=황현탁 제공)
▲(좌측부터) 명언(영어), 싱클레어의 일기 (사진=황현탁 제공)

여러 종류의 열두 달 달력이 부착된 <싱클레어의 일기(Sinclair’s Diary)>란 작품에는 관람자가 포스트잇으로 해당 월, 일에 자신의 생각이나 일을 적어 붙일 수도 있으며, 달걀판을 이어 붙여 전시하고 있는 <알(the egg)>이란 작품 앞 체험 코너에서도 포스트잇에 원하는 글을 적어 ‘플라스틱 알에 집어넣어 박스에 넣도록’ 해 볼 수도 있다. 다수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몇몇 작가들 작품에서는 소설 《데미안》의 어떤 내용을 상징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데미안 전 : 싱클레어의 꿈,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란 전시기획의도 설명에서 김연진 미술관장은 “새로운 일상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가능성을 제시해준 것처럼, 《데미안》이란 소설이 독자들에게 영감과 위안을 준 것처럼, 관람객들에게 <데미안展>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좌측부터) 7egg, 나의 데미안, 자유와 사랑 (사진=황현탁 제공)
▲(좌측부터) 7egg, 나의 데미안, 자유와 사랑 (사진=황현탁 제공)

K현대미술관에서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만난 작가들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그룹 ‘뉴멘/포유즈’(Numen/For Use)가 포장용 테이프로 만든 설치체험미술작품 <TAPE SEOUL>, 그물로 만든 설치체험미술작품 <TUBE SEOUL>도 전시하고 있다. 스벤 욘케, 크리스토프 카즐러, 니콜라 라델코빅 3인으로 구성된 그룹은 2017년 <보이드(VOID)> 전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한국전시다.(~202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