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의금상경(衣錦尙絅)》展… “한국 미술계의 저류(底流)를 찾다”
학고재, 《의금상경(衣錦尙絅)》展… “한국 미술계의 저류(底流)를 찾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1.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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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본관, 신관, 오는 2월 25일까지
한국 단색화ㆍ후기 단색화 대표주자 15인 참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의금상경(衣錦尙絅), “비단옷 위에 삼(麻)옷을 걸치셨네.”라는 뜻을 지닌 2,600년 전의 고대어를 통해 한국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미의식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전시가 개최됐다. 학고재에서 지난 18일 개막해 오는 2월 25일까지 선보이는 《의금상경(衣錦尙絅)》전시다.

▲이동엽 LEE Dong-Youb, 사이-여백 908 Interspace-Void 908,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62.2x259cm (사진=학고재 제공)
▲이동엽 LEE Dong-Youb, 사이-여백 908 Interspace-Void 908,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62.2x259cm (사진=학고재 제공)

이번 전시는 전세계에 흐르고 있는 한류 문화와 ‘서울’이 세계 미술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기 시작한 최근의 경향에 대해 학고재가 분석하며, 2023년 한국 미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담고 있다. 학고재는 이번 전시에서 단색화 대표주자 2인과 그 이후 단색화 12인 및 중국 작가 1인, 총 15명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회화 총 55점이 전시된다.

전시 참여 작가는 최명영(1941-), 이동엽(1946-2013), 박영하(1954-), 이인현(1958-), 천광엽(1958-), 장승택(1959-), 김길후(1961-), 왕쉬예(王舒野, 1963-), 김영헌(1964-), 박기원(1964-), 김현식(1965-), 박종규(1966-), 박현주(1968-), 윤상렬(1970-), 박인혁(1977-) 총 15인이다. 이번 전시는 이진명 평론가(미술비평ㆍ미학ㆍ동양학)가 기획을 맡았다.

▲최명영 CHOI Myoung young, 평면조건 22-710 Conditional Planes 22-710, 202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30x130cm (사진=학고재 제공)

지난해 가을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가 첫 공동 개최를 하고,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이 잇따라 서울에 지점을 준비하거나 모색하면서 서울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 ‘K-아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증폭되는 때다. 이처럼 한국 미술 시장이 국제 미술시장으로 크게 도약할 시점인 지금, 불안감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한국에 불어 닥친 경제 위기, 예측할 수 없는 미술 시장의 경향이다.

학고재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 단색화를 향한 관심에 주목한다. 학고재는 단색화로 촉발된 한국미술의 관심을 지속해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진취적으로 선보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현대미술의 힘과 정신을 살피는 동시에 우리 미술계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져야 한다는 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현재 미술계의 경향을 분석하고,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방향을 제안한다.

▲장승택 JANG Seungtaik, 겹회화 150-22 Layered Painting 15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20x170cm(3)
▲장승택 JANG Seungtaik, 겹회화 150-22 Layered Painting 150-22,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20x170cm(3) (사진=학고재 제공)

이번 전시는 1940년대 출생 작가부터 1970년대 출생 작가까지 아우르며, 한국 단색화와 그 이후의 양상을 깊이 고려해서 작가를 선발했다. 전후 1960년대 서구로부터 유입된 추상회화 양식에 한국적 정신성을 녹여낸 작가들이 있고, 그 이후 더욱 새로운 기법과 방법론을 찾은 세대 작가들이 단색화의 다양성을 확립했다.

학고재는 작가들의 기저에 공통으로 흐르는 정신을 ‘의금상경(衣錦尙絅)’이라고 표현했다. 삼옷을 비단옷 위에 걸쳐 입는 것으로 남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지니고도 이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이후 화려한 형식을 될수록 감추고 내면의 빛을 살며시 드러내는 미의식으로 한국 단색화를 정의한 것이다.

▲김현식 KIM Hyunsik, Beyond The Color (y), 2021,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 54x54x7cm
▲김현식 KIM Hyunsik, Beyond The Color (y), 2021,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 54x54x7cm (사진=학고재 제공)

이번 《의금상경(衣錦尙絅)》 전시는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사유와 미의식에도 의금상경의 정신이 여전히 이어져 흐르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최명영, 이동엽은 한국 단색화의 정초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될수록 색을 최소화하고 힘을 응축하며 정신을 화면에 불어넣는다는 지향성이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정확히 같고, 후기 단색화의 대표적 유형으로 손꼽히는 장승택, 김현식, 박종규 역시 회화 창작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을지언정 근저의 정신성에서만큼은 힘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축적하는 의금상경의 사유를 옛사람과 똑같이 그대로 지킨다.

이번 전시는 또 한번 펼쳐질 한국 미술계의 1년을 상상하며, 더 앞으로를 고민해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