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두 해 넘긴 국립극장장 인선,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일까? 묘수(妙手)일까?
[기자수첩]두 해 넘긴 국립극장장 인선,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일까? 묘수(妙手)일까?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1.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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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호랑이가 가고 토끼가 왔는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국립극장을 이끌 극장장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직무대리가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으나, 2021년 9월 20일 이후 지금까지 대표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극장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란 무리가 있다. 당장 차기 수장의 선임이 무기한 지연됨에 따라, 전속 단체 예술감독의 인선에 차질이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으로 수출전략회의에서 K콘텐츠를 포함한 서비스산업 수출 전략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체부도 K콘텐츠 수출을 강화할 방침이다. 문체부는 올해 K콘텐츠 분야에 문체부 예산의 12.5%(8442억 원)를 할당했다. 콘텐츠 수출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 사업에 34억 원, 해외 시장 개척 지원 사업에 80억5,000만 원 등을 배정했다. 해외 시장의 신흥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K-아트 지원 예산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른바 ’돈이 되는’ 분야 외에 기초 예술 분야에 대한 구체적 지원 방안이나 정책은 여전히 논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국립극장장 임명 지연이 있다.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

국립극장에는 국립창극단ㆍ국립무용단ㆍ국립국악관현악단 등 총 3개의 전속 단체가 있다. 2000년 국립오페라단ㆍ국립발레단ㆍ국립합창단이 국립극장으로부터 독립했고, 이어 2010년 국립극단도 재단법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국립 예술단체의 독립법인화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예술단체를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것으로, 효율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곧, 국립 예술단체가 시장 논리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시대적 전통공연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 곳임을 뜻한다.

인사혁신처가 네 차례나 후보를 다시 공모하는 동안, 문체부에서는 후보자를 반려하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 표명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표 예술 기관인 국립극장의 수장 자리가 오랜 기간 공석임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문체부는 후보자 재추천, 재선발을 감행하고 있다. 

지금껏 공모가 무산된 이유에 대해서 많은 뒷이야기가 있다. 공모 과정에서 국립극장장으로서 전통공연예술에 정통하고 충분한 극장 운영에 대한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탈락하는 등 코드 인사를 위한 ‘무늬만 공모다’라는 말도 무성하다. 인사혁신처가 선발한 후보 2배수에 대한 반려 이유를 제대로 소명하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무책임한 재공모가 햇수로 3년째 반복되고 있으니, 그저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핑계를 듣기에도 민망한 기간이다. 

국립극장장 임명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전속 단체 예술감독의 임기도 끝이 났다. 국립창극단의 예술감독은 지난해 4월 1일 유수정 예술감독 임기 만료 후 현재 김형철 단원이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2019년 4월 1일 임명된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성진 예술감독과 11월 1일 임명된 국립무용단 손인영 예술감독은 주어진 3년의 임기를 마친 상태이나, 국립극장 수장 공백 사태가 길어지는 가운데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후임자 임명일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극장장이 계약을 체결하도록 되어 있는 예술감독은 후보 2배수 추천을 마치고 문체부의 최종 임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4차 공모에는 새로운 인재보다는 그동안 응모했던 인재들이 재응모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장의 뛰어난 인재들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선정 과정을 숨기고 결과만 통보하는 ‘깜깜이 인사’ 과정을 기꺼이 감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국립극장이라는 기관에 걸맞는 무게감과 경력을 갖춘 인사들은 정작 지원을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곧 공모제의 맹점이기도 하다. 하마평만 무수한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후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명이 유력하다 여겨지는 후보들의 면면을 보고 문화계 일각에서는 이력보다 배경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립극장 2022-2023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 현장
▲국립극장 2022-2023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 현장

우리나라 대표 예술 기관인 국립극장을 비롯해 국립 문화예술단체를 이끌어 갈 대표 결정 방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타 기관과 비교해, 문화예술단체장의 공석 사례는 꽤 빈번하다. 임기 만료 최소 1년 전에 차기 예술단체 기관장을 결정해 업무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해외 사례와는 굉장히 비교되는 지점이다. 지금처럼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문화예술단체 수장이 함께 바뀌는 일은, 문체부가 이들의 임명권을 갖고 있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 전문가들은, 해외 많은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는 ‘추천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위원회 구성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의 심의를 거쳐 올라온 최종 후보자 가운데 문체부가 선정ㆍ임명한다면 지금처럼 반복적 재공모나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더불어 심사 과정에 실무 능력 평가를 추가해, 학맥ㆍ인맥 등에서 벗어난 객관적 심사를 가능케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처럼 개선 방안은 다양하다. 중요한 건 정부의 개선 의지다. 

세상에 오래 비워도 괜찮은 자리는 없다. 문화예술기관장의 장기간 공백은 업무 부실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이를 향유하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립극장의 미션, 즉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전통에 기반한 동시대적 공연예술의 창작으로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예술 공간의 수장을 모두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