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취향과 고유함 사이
[Human Library]취향과 고유함 사이
  • 독립기획자 최소연
  • 승인 2023.03.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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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존중은 당연해지고 취향인간은 구분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시대다. 유행어처럼 쓰이던 ‘취향존중해주세요’라는 말은 이제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을 만큼, 당연히 지켜야 할 이치처럼 받아들여진다. 또 하나의 이치는 특색있는 상품과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블루오션이었던 시장도 경쟁이 심화되는 레드오션이 된다는 것이다. 취향인간이 너무 많은 빨간바다에서 더 큰 배를 띠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문화예술계는 어떻게 그 배에 탑승해야 할까. 

red shipⓒPixabay “레드오션에서도 사람들이 손대지 못한 곳을 찾으면 다시 블루오션이 되기도 한다. 느리고 작아도 지나간 배들이 놓치고간 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쥐어준다면, 최소한 물에 잠기지는 않아 누구든 태울 수 있는 배가 되지 않을까”
red shipⓒPixabay “레드오션에서도 사람들이 손대지 못한 곳을 찾으면 다시 블루오션이 되기도 한다. 느리고 작아도 지나간 배들이 놓치고간 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쥐어준다면, 최소한 물에 잠기지는 않아 누구든 태울 수 있는 배가 되지 않을까”

요즘 소비-취향 트렌드는  

‘소비’는 취향을 만들고 드러내기 쉽게 만든다. 정확히는 취향이 반영된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와 과정은 어렵지 않다. 소비 후 사진, 영상과 같은 인증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또한 어렵지 않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날 여기로 이끄는’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콘텐츠를 찾는 것도 보는 것도 쉽다. 중요한 차이점은 일반 제품의 경우, 가격대, 브랜드, 경험 등으로 판별하여 내 취향이 맞는지가 중요하다. 이와 달리 콘텐츠에 있어서는 ‘내 취향이 아닌 것’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시청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알고리즘 초기화 방법이 알고리즘의 연관검색어로 뜰 만큼, 시청기록과 사이트 방문 기록을 지우는 경우도 늘고있다. 음악, 스터디 등 원하는 주제에 맞추어 유튜브 채널을 여러 개 만드는 경우도 늘어났다.

타인이 열람하지 않는 내 구독채널, 내가 즐기는 나만의 공간 관리 즉,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 취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취향은 나의 고유함

소비로 만들어지는 취향, 쉽게 얻을 수 있는만큼 정보 공유와 영향력 또한 크고, 더 빠르게 유행과 트렌드가 굴러간다. 동시에 고유함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다. ‘취향존중’이란 말이 ‘취향’이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하고 즐기든 ‘나’를 존중해달라는 의미에서 시작했음을 생각해야 한다. <2022 트렌드코리아>에서 김난도 교수가 제시한 키워드 중 하나가 ‘나노사회’다. 공동체는 개인으로, 개인은 더 미세한존재로 분해되면서 개개인이 오롯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이라고 의미를 설명한다. 취향또한 나노사회의 개인들을 따라갈 것이다. 취향은 파편화라는 말도 너무 큰 범위일만큼, 개개인, 한 명, 한 명의 고유함으로 존재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을 저격’시키는 제품이 아니라, ‘취향을 표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누군가가 트렌드를 이끌게 될 것이다. 

예술의 진입장벽은 취향의 진입장벽과 엄연히 다른 말이다 

취향의 고유함, 나를 고유하게 만드는 취향. 이 조건으로 따져본다면 ‘예술’만한 게 없다. 그런데 왜 여전히 예술은 무겁고 어려울까. 예술은 내적인 만족이 이루어져야 정기적인 투자와 관심이 갖는 것이 가능하다. 내적인 만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량과 비용, 시간, 거주지 등의 환경적인 요소들을 ‘진입장벽이 높다’라고 표현한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예술의 기회를 넓히는 방향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왜 여전히 예술은 무겁고 어려운지’에 대한 답이 진입장벽을 아직 낮추지 못해서라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예술계의 모두가 발벗고 나서도 스타벅스보다 무신사보다 인스타핫플보다 진입장벽이 낮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 여름이었다...

취향, 트렌드, 예술을 아무리 예측하고 분석해도 예술 작품은 이래야한다라는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방향성만큼은 취향트렌드로 옳고그름을 따져볼 수 있다. 1990년대 하이틴 감성을 담아낸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와 뮤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10대를 떠올린다. 자신의 지난 기억과 삶이 노래와 중첩될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는 애정이 된다. 학창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오글거리는 감정’이 아닌 ‘뉴진스음악’으로 대명사처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뉴진스의 성공 요인이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취향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그 과정이 새로운 취향이 된다는 지점을 제대로 짚어서 봐야한다. 

취향은 나의 고유함, 예술은 진짜 고유함. 

예술은 고유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예술은 사람도 어딘가 고유해지게 만들 수 있다. 특별한 것들이 모여서 예술이 되기에, 예술이 되면서 특별해지기도 하기에. 그래서 삶의 파편들을 예술이 이름지을 때,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설명이 되는 경험이 주어져야 한다. 예술이 내 삶과 중첩되갈 수 있도록 점점 깊어지는 그 경험이 없는 것이 진입장벽의 새로운 정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배를 만들 때 물을 넣고 뺄 수 있는 칸을 만들어서 높낮이를 유동적으로 조절해야 가라앉지 않고 항해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은 더 빨리 갈 수도 없고, 가장 크고 호화스러운 유람선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레드오션에서도 사람들이 손대지 못한 곳을 찾으면 다시 블루오션이 되기도 한다. 느리고 작아도 지나간 배들이 놓치고간 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쥐어준다면, 최소한 물에 잠기지는 않아 누구든 태울 수 있는 배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