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박범훈류 피리산조 마스터 클래스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박범훈류 피리산조 마스터 클래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3.03.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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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원형, 내일의 전형으로 항하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박범훈류 피리산조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3. 5. 동국대학교 문화관 덕암세미나실) 대한민국에서 피리를 전공하는 4대가 모였다. 박범훈명인을 비롯, 1980년대에 그에게서 직접 피리산조를 배운 제자, 그 제자들이 길러낸 후세대와 현재 피리를 전공하고 있는 중고생까지 모두 모였다.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박범훈 개인이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지난 민속악 백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산조는 우리의 독특한 양식이다. 산조의 뿌리는 남도음악이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 땅에 가야금산조와 거문고산조는 있었어도, 피리산조는 없었다. 그 당시 피리는 신아위(시나위) 영역에 존재했다. 

지난 20세기 전반기의 구분에 따르면, 산조는 남도악(南道樂)이요 신아위는 경기악(京畿樂)이다. 산조는 남도사람에 의해, 신아위는 경기사람과 충청사람에 의해 전승됐다. 따라서 경성방송국 (JODK)에 출연한 산조와 신아위의 악사는 엄격히 구분됐다. 산조는 일찍이 독주형태를 지향했으나, 신아위는 피리 대금 해금의 관악 중주였다. 1940년대 이후 점차 피리시나위, 해금시나위, 대금시나위로 분화가 된다. 해방 이전 시나위의 명인은 누구였을까? 

피리는 한성준, 양정운, 이일선, 대금은 방용현, 이기창, 해금은 지용구, 김봉업이었다.  장구는 이정업, 이인호, 한성준이 잡았다. 한성준은 훗날 무용가이자 고수로 더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는 피리연주가 였고, 그런 기록이 보인다. 시나위의 장단은 굿거리, 신아위(살풀이)의 중심이었는데, 여기에 느린 중모리, 자진 중모리 형태가 덧붙여지면서 점차 산조와 같은 구조를 지향했다. 
 
민속피리의 계보, 6대를 이어가다 

해방 이후 피리시나위를 정착시킨 인물은 지영희(1909~1980). 그는 한성준이 이끄는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전문악사로 활동했다. 지영희에게 큰 영향을 준 음악가로는 지용구(1857~1939)와 한성준(1874~1941), 지영희는 해금은 지용구에게, 피리는 한성준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피리시나위에 머물렀던 음악은 어떻게 피리산조로 거듭날 수 있을까? ‘피리산조’로 명명된 최초산조는 박범훈류(1984년)이다. 이 산조는 가깝게는 지영희의 피리시나위를 계승하고 있고, 그 연원은 훨씬 올라갈 수 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경성방송국의 신아위를 계승한 것이 바로 지영희의 피리시나위이기에 그렇다. 한성준-지영희-박범훈의 계보를 생각한다면,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6대를 이어온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산조다. 

박범훈류 피리산조만의 가치는 무엇일까? 산조와 신아위를 만나게 한 음악이다. 시나위형태에 머물렀던 피리음악을 ‘피리산조’라는 이름을 떳떳하게 붙일 수 있는 음악이다.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멀리는 일제강점기의 피리시나위에 뿌리(경기악)를 두고 있는데, 이것과 남도악이 만나게 하고 있다. 

그 이전에 만들어진 다른 악기의 산조는 ‘귀명창’에게는 산조음악으로서의 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남도악 특유의 농밀한 정서가 아무래도 부족했다.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다르다. 진도씻김굿과 같은 남도악의 극성(劇性) 과 경기악의 서정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따라서 박범훈류는 ‘산조’와 ‘신아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피리산조로서 최초(最初)와 최고(最高)의 가치가 있다. 

박범훈류, 원형과 전형을 동시에 충족 

박범훈 명인이 주도한 마스터클래스의 3시간은 피리연주가에게 보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산조를 세련되게 연주하지만 감동은 없다. 왜 일까? 악보와 조성(調性)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조, 계면조, 평조 등의 구분은 정확하지만, 그런 연주가 천편일률적이다. 

박범훈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어리광조’ 또는 ‘어리광목’이란 얘기를 했다. 우조에세 계면조로 넘어가는 길목이 ‘어리광목’이 있는데,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 연주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조(調)는 조성(음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스타일을 뜻한다. 박범훈 명인이 여기 어리광조로 연주해야 한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는데, 이후 마스터클래스의 피리연주가의 표현법이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었다. 

21세기 무형문화재(문화유산)을 계승함에 있어서, 원형(原形, original forms))과 전형(典型, typifier)은 동시에 중요하다. 박범훈류 피리산조는 ‘원형적인 보존’과 ‘전형적인 확산’을 동시에 수렴하고 있다. 어떤 산조야말로, 계속 살아남을까? ‘작곡능력을 갖춘 연주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산조’야 말로 계속 이어진다. ‘작곡의 짜임새’와 ‘악기의 시김새’를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산조야말로, 21세기 산조로서의 가치가 있다. 박범훈류의 빼어남이 바로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