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성능경(1944- )은 누구인가? 이러한 물음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무려 50년에 걸친 그의 화단(畫壇) 경력이 이제 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한국미술계에서 그와 비숫하거나, 그보다 연상인 작가는 많다. 그러나 올해로 팔순(八旬)을 맞이한 그만큼 맹렬히, 전(全) 인생을 바쳐, ‘몸(body)’ 하나를 밑천삼아 일관된 작업을 펼쳐 온 작가는 흔치 않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그가 누구냐고 물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성능경’은 과연 누구일까? 70년대 중반부터 그는 ‘골수’ 전위작가이다. 한국미술사에서 ‘AG’와 함께 가장 첨단의 전위그룹으로 꼽히는 ‘ST’의 초기 멤버인 성능경은, 7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똑같은 태도를 견지해 왔다. 단 한 번도? 그렇다. 예컨대, 그는 어떤 경우에도 구상적인 화풍의 작품을 전시에 출품한 적이 없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구상적 경향을 폄훼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그도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 전공)에 다닐 때, 그는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 1928-2000)의 그림을 좋아했고, 그 영향으로 일련의 추상화를 그린 적이 있다. 성능경의 그런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본 은사이자 미술평론가인 이 일(1932-1997)이 그를 조선일보사 주최의 <현대작가초대미술전>(1957-1969)에 추천, 작품을 출품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성능경은 단 한 번도 구상적 경향의 전시에 그림을 출품하지 않았다.1) 왜 그랬을까? 최근에 미술사가 조수진이 성능경에 대해 쓴 다음의 글이 예술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잘 대변한다고 여겨져 다소 길지만 여기에 인용한다.
“성능경(1944- )은 1973년 전위미술 단체 ST(Space&Time 조형미술학회)의 회원으로 한국미술계에 등장해, 신문과 사진 등의 대중매체를 이용한 개념적인 전위미술 작업을 최초로 시도하고, 당시 이벤트로 불리던 행위미술 작업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후 성능경의 예술세계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방적 메시지의 개인적 재해석을 통한 권력에의 저항, 추상 일변도의 주류 미술계에 대한 육체성의 도전,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삶과 사물에의 주목, 작품의 반미학적이고 제도 비판적인 성격이라는 특징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런 성능경의 예술세계는 그러나 그간 주류 한국미술사는 물론이고 1960-70년대 실험미술의 역사 내부에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 왔다.”2)
이러한 미술사가 조수진의 평가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에 덧붙여 나는 ‘변절’을 극도로 혐오하는 성능경의 선비 기질3)을 들고 싶다. 성능경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세속적인 표현을 빌리면 ‘꼴통(Ggoltong)’4)이다. 꼴통이되, 끊임없는 독서와 사유로 형성된 지성을 바탕으로 때로 비수처럼 튀어나오는 비판과 풍자를 겸비한 전위적인 ‘꼴통’인 것이다. 팔십이 된 어르신에게 이런 호칭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러나 자신의 미학에 투철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며, 끊임없이 신조어를 생산하는 언어능력5)과 근엄한 척하는 기성문화에 날리는 촌철살인적인 경구(驚句)의 가격(加擊)은 가히 ‘꼴통’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자칫 저속(低俗)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이런 세속어를 구사하면서까지 성능경의 세계를 묘사하려 하는가?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기성의 관념에 절어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주류문화와 주류사회에 가하는 그의 통렬한 풍자이다. 그러한 풍자는 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온 그의 독자적인 퍼포먼스 스타일을 통해 표출된다. 그 특유의 퍼포먼스에 내가 붙인 ‘품바(Pumba)’는 원래 장터를 돌아다니며 벌이는 예인들의 공연을 가리키는 말인데,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하며 독자적인 형태의 ‘한국형’ 퍼포먼스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