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그레이트 한강을 위한 그레이트 야경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그레이트 한강을 위한 그레이트 야경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03.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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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때아닌 드라마 열풍에 나도 휩싸였다. 기다기고 기다리던 2부가 나오던 날, 새벽까지 앉아 끝편까지 보고 말았다. 물론 내용의 전개도 궁금하지만 엔딩이 더 궁금했다. 최근 몇몇 드라마가 끝편에서 호된 평을 받는 것을 보고 ‘역시’일지 ‘과연’일지..

시청자들이 만족해 할 만큼 성공적인 복수를 마치고 또다른 복수를 계획하며 의기투합한 두 주인공이 복수의 장으로 들어서는 엔딩에서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온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그들의 미래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듯이.. 작가가 그 장면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하였는지 들은 바는 없지만 드리워진 어둠이 긍정, 희망으로 가득한 그들의 미래에 대한 메시지는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둠’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본능적일 수 있으나 밝음에 대하여 호의적,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은 학습된 것일 수 있다. 종교가 곧 삶이던 시절, 신은 빛과 악마는 빛을 두려워하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다니는 존재로 동일시 되고, 선하고 좋은 것들은 밝음으로 나쁘고 두려운 것들은 어둠으로 표현되었던 고대, 중세의 회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에서도 이런 현상은 다르지 않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 교육 수준이 낮고 문화, 예술에 소비하는 비용이 낮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조사되는 환경적 특징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로등이나 보안등 시설이 미비하고 또 노후 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둡다. 대부분의 도시경관사업에서 확실한 개선 효과를 위하여 가장 먼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노후된 보안등을 교체하고 증설하여 골목길을 밝게 만드는 일이다.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로 언급되는 런던 외곽의 올드 스피탈 필즈마켓 재생사업을 들여다보면 밝기의 개선이 큰 역할을 한다. 우선 100년된 고풍스러운 외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지붕만을 개조하여 자연채광이 들어오도록 하였고 가판대를 비롯한 내부 시설물 색상을 환한 색으로 교체하여 밝고 활기차게 바꾸었다고 한다. 주로 주간에 이용하게 되는 전통시장에서 밝기 개선은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제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은 "빅토리아풍의 시장 지붕 아래에서 소규모 지역 생산자와 소매상인, 길거리 음식 상인이 함께하는 곳으로, 시내 번화가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주요도시, 야간경관 계획 마스터플레닝서

세밀하게 상세계획 수립, 지속위한, 유지관리 비용투입

 

최근 서울시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일찍부터 한강의 가치에 주목하고 잇었던 오세훈 시장이 한강변 뿐 아니라 한강주변의 경관에 까지 이르는 ‘그레이트’한 계획을 세운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경관에 다양한 콘텐츠를 추가한 것은 환영하면서 또 한편으로 걱정되는 일이다. 40km에 이르는 한강변 대부분은 아파트가 점령하고 있어 이렇다할 조형미 있는 건축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 현재 체육공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강시민공원 역시 이렇다 할 볼거리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변의 건축물이 지금과는 달리 조형미가 더해지고 리듬감 있는 스카이라인을 갖게 되고, 상징적인 경관요소가 만들어져 볼거리, 즐길거리가 생겨난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따르는 환경에 대한 피해, 더불어 시간과 비용의 문제 그리고 보장되어야 할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염려는 이미 익숙하다. 서울에 사는 시민들은 현란한 계획 이후의 답보, 축소, 철회, 무산 등으로 방치되어 경관을 망치게 되는 상황들을 경험했던 터라 한강변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걱정은, 그레이트 한강을 위한 55개의 사업에서 해진 뒤 한강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그레이트한 야간경관을 위하여 그레이트 주간경관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레이트 주간경관에 대한 치밀한 야강경관계획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레이트 한강은 반쪽짜리 서울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남북을 잇는 곤돌라나 서해바다까지 보이는 서울링에서 그레이트 썬쎗을 감상한 이후 사람들은 서둘러 한강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아름다운 여간경관을 갖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야간경관에 대한 계획을 마스터플레닝에서 공원의 벤치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가이드라인이나 상세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유지 관리를 위한 비용 투자나 인력 관리를 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야간경관 계획 역시 주간경관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며 정책의 지속성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은 ‘빛이 너무 많은 도시’로 알려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너무 많은 지역이 있을 뿐이다. 한강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공원을 이용해 본 서울 시민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너무 밝은 부분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어둡다. 산책하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그리고 그냥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그리고 너무 밝은 부분은 대부분 너무 어두운 부분과 공존한다. 누가봐도 너무 어둡다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맥락없는 조명기구들을 설치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둡다고 조명기구를 더 설치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더 어두워지는 지역이 생기고 차츰 밝아진 공원은 빛공해와 에너지 낭비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는 것이다.

쇠퇴한 시장을 명소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갔는지, 활기찬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조명기구를 더 많이 설치하지 않고 지붕을 열어 자연광을 들인 런던의 지혜를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