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산조춤의 명인 김진걸-김숙자
[성기숙의 문화읽기]산조춤의 명인 김진걸-김숙자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3.03.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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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흐름’에서 ‘실심초’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춤자료관 연낙재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오광수)와 공동으로 2012년 2~5월 “기억 속의 춤-한국춤 100년의 유산”을 주제로 기획전을 개최한 바 있다. 대학로 예술가의 집 명예의 전당에서 가진 기획전이었다. 전시는 애초 3개월을 예정했으나 한 달을 늘려 5월까지 연장 전시되었다. 그만큼 반향이 뜨거웠다. 

“기억 속의 춤-한국춤 100년의 유산”전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새로운 무용사조의 탄생과 진화과정 등 한국 춤 100년의 역사적 흐름과 발자취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전시 기간에 “한국근대무용사의 재발견”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  “영상으로 보는 춤의 거장 사인사색” 등 다채로운 기획이 함께 치러졌다.  

반추하건대, 당시 한국춤 100년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했다. “서구적 충격, 신무용의 탄생”(1900~1945)으로 집약된 제1기는 1900년대 초 서양무용의 유입 이후 신무용(新舞踊)의 출현과 함께 본격 예술춤이 전개되는 과정으로 한성준을 비롯 최승희·조택원·배구자 등의 사진과 공연팸플릿 등이 전시되었다. 

제2기 “폐허를 딛고, 새 한국무용 건설”(1946~1975)에서는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로 국립무용단 창단 및 대학 무용과 개설 등 공적(公的) 제도의 창출로 이어진 시기로서 새 한국무용 건설을 견인한 다채로운 자료들이 선보였다.

마지막 “춤아카데미즘, 예술춤의 진화”(1976~현재)를 다룬 제3기에서는 신무용시대의 종식과 함께 한국창작춤이 발원된 1970년대 이후 대학 동인무용단체 활동이 꽃을 피운 이른바 무용르네상스 시기를 주제로 했다. 그러니까 세 시기를 통해 근대 이후 한국 춤의 지형변화를 주도한 주요 변곡점을 다룬 셈이다.  

“기억 속의 춤-한국춤 100년의 유산”은 무용계에서 보기 드문 희귀자료 기획전으로 당시 꽤나 주목을 끌었었다. 이후 어느덧 10여년 세월이 지났다. 며칠 전 옛 기억을 반추케 하는 공연이 있었다. 원로무용가 김숙자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The 춤연구원과 김진걸류산조춤보존회가 주최한 “산조-그 흩어진 가락의 숨결”(2023년 2월 28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춤 백년의 유산’ 두 번째 시리즈로 마련된 무대였다. 

알다시피, 김숙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한성대 명예교수로 신무용 제2세대를 대표하는 한국무용가로 손색이 없다. 14세 때 서울 돈암동 소재의 김진걸 문하에 입문하여 신무용 스타일의 한국춤을 체득했다. 이후 수도여사대(세종대 전신)에 입학하여 한영숙에게 전통춤을 체계적으로 익혔다. 한영숙은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의 손녀딸로 자타가 공인하는 명무였다. 김숙자는 스승 한영숙을 사사함으로써 우리 춤 고유의 기본기와 속 깊은 멋을 체화할 수 있었다. 그에겐 더없는 행운이었다. 

한국무용가 김숙자는 전통춤과 신무용을 섭렵했지만 활동에서는 이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창작춤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 한국창작춤은 1970년대 중반 신무용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한국춤의 창조성을 화두로 내세운 춤사조를 말한다. 김숙자는 70년대 초반 아카데믹한 무용단체 학림회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1986년 대학 동인무용단체 한울무용단을 창단하여 제자들에게 활동 발판을 마련해줬다. 

한편, 그 스스로도 왕성한 창작춤 활동을 펼쳤다. ‘전통의 현대화’를 화두로 한 그의 창작춤은 문학성이 돋보이는 깊은 사유의 산물로 자리매김된다. ‘화사’(1986), ‘오열도’(1988), ‘링반데룽’(1991), ‘내림새여’(1994) 등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무용평론가 김태원은 김숙자의 창작춤 작업을 ‘상황적 무용극’으로 개념화하면서 ‘질긴 생명성과 여성적 삶의 순환성’을 주목한 바 있다. 

이번 공연 “산조-그 흩어진 가락의 숨결”은 김숙자의 예술적 지향과 미적 질감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무대였다. 더불어 그의 제자이자 딸인 최원선, 중견무용가 황희연, 원필녀, 장래훈 등 여러 춤꾼들이 각기 다른 산조춤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산조춤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진걸, 배명균, 최현 등과 호남춤의 명인 이매방의 한량무 풍(風) 춤이 무대에 올랐다.

우선, 배명균류 산조춤 ‘연지월’(蓮之月)에서 황희연은 연못에 비친 달그림자의 서정을 단아하고 고운 춤태로 그려냈다. 국악명인 김영재의 해금산조를 타고 넘는 담백한 춤사위가 퍽 인상적이다. 낭만주의 춤꾼의 대명사로 불린 최현의 산조춤은 제자이자 아내인 원필녀의 몫이었다. 최옥삼류 산조가락을 타고 넘는 산조춤 ‘여울’은 섬세하고 잔잔하면서도 언뜻 언뜻 비상하는 몸짓이 이채롭다.

출연자 중 유일한 남성춤꾼인 장래훈은 이매방의 ‘사풍정감’을 추었다. 그런데 ‘사풍정감은 산조춤이라기 보다는 한량무에 가깝다. 춤의 미감 또한 이매방류가 아닌 그가 자라고 오랜 세월 활동해온 영남의 향토성이 짙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호방하고 다이내믹한 춤사위에서 영남 춤꾼 특유의 기상을 엿본다.   

최원선의 ‘내 마음의 흐름’은 김진걸에서 김숙자로 이어진 춤가락을 따르고 있다. 주지하듯, 김진걸 산조춤은 독창성이 돋보이는 춤이라할 수 있다. 곡선 중심의 춤사위로 이루어진 여타의 산조춤과 달리 곡선과 직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물 흐르듯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최원선이 춤춘 ‘내 마음의 흐름’은 김진걸류 산조춤 고유의 미감을 고수하면서도 무대 어법을 고려한 현대적 세련미가 돋보였다. 스승과 세대를 넘어 이른바 진화해가는 산조춤의 한 사례와 마주한다.  

특별히 눈여겨 본 춤은 김숙자의 ‘실심초(失心抄)’이다. 스승 김진걸의 산조춤 ‘내 마음의 흐름’을 토대로 자신의 춤제를 곁들여 정립한 이른바 김숙자의 산조춤인 셈이다. ‘실심초’에서 김숙자는 일평생 춤꾼으로 살아온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아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분출하는 내적 갈등, 자아를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 삶의 마디 마디에 서려있는 한과 고뇌 등 삶의 서사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전적 성격의 산조춤인 셈이다. 

국악명인 성금연의 가야금과 안숙선의 구음은 ‘실심초’의 공연미학적 완결성을 한층 높여줬다. 농익은 가야금 선율과 처연한 구음 속에 내재된 속 깊은 멋을 연륜 배인 춤사위로 능숙하게 소화한 김숙자의 내공도 단연 주목거리다. 

작품 ‘실심초’는 전통춤과 신무용 그리고 한국창작춤으로 다져진 김숙자 고유의 춤어법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수작이라 여겨진다. 김진걸의 산조춤 ‘내 마음의 흐름’에서 김숙자의 산조춤 ‘실심초’로 대물림되는 춤의 여정을 인상깊게 관조한 값진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