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광장문화]신임 국립극장장에게 바란다
[김승국의 광장문화]신임 국립극장장에게 바란다
  •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회관 이사장
  • 승인 2023.03.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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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우리나라의 대표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중앙극장의 극장장이 거의 1년 반 가까이 공석인 채로 극장장 선임 공모가 세 차례나 무산된 데 이어, 우여곡절 끝에 이번 4차 공모에 박인건 전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가 국립극장장으로 선임되었다. 아무쪼록 문화예술계 중진인 박인건 신임 국립극장장이 우리 국립극장을 우리나라의 대표극장이자 세계적인 극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축하의 마음과 함께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보낸다.

1년 반의 극장장 부재의 공백을 딛고 우뚝 일어서야 한다

박인건 신임 국립극장장은 경희대 기악과(바이올린)를 거쳐 경희대 대학원 음악교육학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부장을 거쳐 경기아트센터 사장, KBS교향악단 사장,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이사 등 예술경영에 30년 이상을 매진해온 공연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동해온 문화예술경영 전문가다. 

하지만 백전노장의 그로서도 고민과 부담이 클 것이다. 내부적으로 어떻게 하면 1년 반이라는 극장장 부재 동안 흩어졌던 내부 직원들의 마음을 조속히 하나로 모아 역동적인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이다.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음악 부문에는 전문성이 있지만 전통예술 분야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그로서는 어떻게 하면 3개의 전속 전통예술 단체를 무난하게 이끌고 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국립극장을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극장으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며, 기관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다.

국립극장을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신임 극장장이 해결해나가야 할 당면과제는 너무도 많다. 최근 들어 국립극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립극장의 역동성이 보이지 않았다. 리모델링 기간 위축되었던 국립극장의 역동성을 되찾는 것이다. 예전의 국립극장은 프로듀서시스템이 활성화되어 활발한 신작 개발이 가능했었는데 요즘은 행정 시스템으로 전환된 느낌이 있다. 신임 국립극장장은 부임 후 먼저 환경분석을 해보고 극장경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하여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프로듀서시스템 활성화로 활발한 신작 개발과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도 필요하다.

현재 국립극장 예산은 총 366억으로서 공연 활동 지원 77억, 전속 단체운영 125억, 공연예술박물관 운영 6억 정도로 편성되어 있다.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제작해야 하는 제작극장으로서 예산이 너무 적다. 책임 운영기관이다 보니 모객이 쉬운 공연에 집착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제작극장으로 온전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예산확보가 필요하다. 신임 극장장은 예산확보를 위하여 문체부와 한 몸이 되어 기재부와 국회 상임위 의원님들을 지속해서 설득하여 예산확보에 힘써야 한다. 

국립극장의 인적 구성은 일반행정직 공무원, 별정직 공무원, 일반 계약직 공무원, 예술단원, 기획단원, 기간제 근로자로 구성되어 있어 전문성 축적이 쉽지 않고 공통된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구성원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하여 국립극장이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감독기관인 문체부하고도 지속적인 소통을 통하여 당면과제를 해결해나가면서 문체부의 문화정책과 방향성에 궤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 

우리 국립극장이 단순히 우수 레퍼토리를 제작해 내는 제작극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통 공연예술계의 플랫폼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지방 문화예술회관이 운영하는 극장과의 상호 협업 프로그래밍을 활성화하여 상생 구도를 구축하고 지역 문화 격차 해소에 노력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라 소셜 미디어 기반 홍보 및 온라인 공연 영상 콘텐츠의 기획, 제작, 공유 시스템 운영 및 소통 채널 확장이 필요하다. 

문화광장을 시민에게는 친화적인 공간,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연행 공간으로 개방해야 한다

국립극장을 들를 때마다 느끼는 점은 문화광장이 시민들과 예술가들의 문화공간, 휴식 공간, 소통 공간의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낮에 국립극장을 들르면 마치 깊은 산속의 절간에 온 적막한 기분이 든다. 공연이 없는 저녁에 오면 국립극장은 어둠 속에 잠겨있다. 이래서야 하겠는가? 국립극장의 문화광장은 휴식 공간, 먹을거리, 볼거리, 들을 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한 시민 문화공간이 되어야 하며, 젊은 예술가들에게 문화광장을 개방하여 전시 공간 및 거리예술공연, 버스킹 공간이 되도록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간에도 공연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활성화가 필요하다. 공연의 경우 시민들을 위한 힐링 공연프로그램과 외국 관광객을 위한 전통예술 상설 공연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국립극장에는 공무원노조와 예술단원노조 등 복합적인 노조 활동이 있다고 알고 있다. 신임 극장장은 노조를 적대관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동반자 관계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경청하고 요구사항 중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고, 그렇지 못한 것은 지속적인 설득을 통하여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국립극장 내에 있는 국립극장진흥재단을 더욱 활성화하여 재정자립도를 향상해야 한다. 또한 공연예술박물관은 박물관의 전시 공간을 첨단기술을 활용한 품격있는 전시 및 교육 공간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현 전시 공간은 국립극장 전시 공간으로 너무 초라하다. 또한 공연예술 관계자들을 위하여 공연예술자료의 접근성을 보다 높일 필요가 있으며 지속·가능한 레퍼토리 제작을 위하여 박물관 조직에 레퍼토리 개발 연구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3개 전속 예술단체의 체질 개선과 단체 간 융복합 레퍼토리를 창출해야 한다

국립극장은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3개 전속 예술단체가 있다. 창극, 무용, 국악을 다양한 장르와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지닌 작품을 창출해야 한다. 예술단체를 갖는다는 건 언제고 무대화할 준비된 레퍼토리를 갖겠다는 것이다. 전속예술단체의 단원들이 고루 출연할 수 있도록 맞춤형 레퍼토리 제작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젊은 스타 단원의 생산이 필요하다. 전속단체 우수 레퍼토리 지방공연 활성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립창극단 소속 기악부 단원 등 부족한 전속예술단체의 단원은 충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업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창극의 연주 언어와 국악관현악의 연주 언어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관중과 배우가 혼재되었던 마당놀이는 극장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곡예, 풍물, 탈춤 등 전통연희 부분도 부족하다. 국립전통연희단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국립무용단에 전통연희부를 두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기악 연주에만 머무르지 말고 가곡, 민요, 일반 가창이 포함된 성악부를 신설하여 가악(歌樂)이 어우러지는 더욱 풍성한 레퍼토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속 예술단체가 아무리 좋은 레퍼토리를 개발하였다 해도 관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홍보와 그것을 필요로 할 수 있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모객 전략은 홍보와 마케팅이 서로 상호 연동하면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마케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관객의 성별, 예매 채널, 장르 선호도, 패키지 구매 여부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특정 대상을 찾아내 온, 오프라인으로 자주, 편하게, 쉽게 국립극장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관계를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처음 방문한 관객이 다시 한번 찾아오도록 해야 하고, 점점 더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나아가 공연예술 애호가가 될 수 있도록 관객을 지속해서 발굴해야 한다.

과거 극장 운영 비판에 대한 성찰과 거듭나기가 필요하다

국립극장은 안호상 극장장 시절에 흥행에 성공하고 레퍼토리 시즌제가 정착되어 성과를 거두었으나 전통에 기반을 둔 국가대표 극장의 정체성이 손상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시대 관객과 호흡할 가능성을 전통에서 끌어내야 한다. 당시 레퍼토리 시즌제는 세계적인 연출가들을 초빙하여 작품을 만들어 이슈를 생산해낸 점은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세계무대로 확장되어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는 데는 다소 부족했다고 본다.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공연작품 제작을 위해 해외 예술가와 스태프. 외국의 자본과 기술력을 투자받아 중장기 공동제작을 추진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의 전통 공연예술이 세계무대에서 조명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수 레퍼토리 해외 공연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신작과 우수 레퍼토리 재공연 레퍼토리 시즌제는 지속되어야 하지만 대작 중심의 레퍼토리 제작에 치우친 점이 아쉽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전속예술단체 단원들을 활용한 중규모, 소규모의 레퍼토리 제작과 아웃리치 프로그램의 보완이 필요하다. 

전통공연예술계의 허브와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끝으로 국립극장은 한국이 한국을 대표하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의 생산기지와 순수 전통 공연예술의 허브와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요즘의 시대적 감수성을 꿰뚫고 있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새로운 작품들을 창작해야 한다. 국립극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다. 민간단체와 경쟁하라고 국고를 들이는 건 분명 아닐 테다. 민간단체는 하지 못하는 예술 활동,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국립극장이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버라이어티하고 화려한 작품들을 제작하려고 하기보다는 콘텐츠로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새로운 것에 집착해서 이전의 것을 지키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외부의 지속적인 소통과 전문가의 조언을 널리 구해 나가길

국립극장이 제작하는 공연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창작이 접목되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시대와 공유할 수 있는 시대적 감성을 담아야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공연예술의 의미와 가치는 그것을 즐기고 호응하는 관객과의 소통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신임 극장장은 국립극장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공연예술 제작극장이자 국내적으로는 전통 공연예술계의 플랫폼 기능을 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립극장의 우수한 레퍼토리 해외 공연을 통하여 세계적인 국립극장으로서의 우리나라의 문화적 품격을 드높여야 한다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것이다. 그러한 부담을 더는 방법은 내외부의 지속적인 소통은 물론 전문가의 조언을 널리 구해야 할 것이다. 박인건 신임 극장장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