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송은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 컬렉터의 시선과 신념은 무엇일까
[전시리뷰] 송은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 컬렉터의 시선과 신념은 무엇일까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3.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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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오는 5월 20일까지
‘회화, 조각, 미디어’ 중국 현대미술 지금 담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1970년대 말 스위스인 유명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는 재직중이던 쉰들러엘리베이터에서 중국 담당자로 발령 받게 된다. 지그는 중국을 알고자 했지만, 당에서는 그런 지그의 행동을 탐탁하지 않게 봤고, 감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그는 낯선 국가 ‘중국’을 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 현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지그의 결심을 져버리듯 1970년대 말의 중국에는 ‘현대 미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드디어 ‘중국 현대 미술’만의 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태동을 중국에선 아무도 유심히 보지 않았다.

▲Zhao Bandi 자오반디, Portrait Uli Sigg, 2010, 캔버스에 유채, 166.5 x 116.5 x 4 cm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당시를 지그는 “국가 단위의 미술 기관이 해야 하지만 절대 하지 않는 일을 나 스스로 하고자 결심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만들어진 중국의 현대미술을 수집해 중국현대미술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하는 폭과 깊이를 아우르고 모든 매체로 이뤄진 창작 활동을 반영하고자 했다. 그동안 2,000명에 가까운 작가들을 만났다. 대개 작가들에게서 직접 작품을 구매했는데, 적어도 처음에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아직 갤러리나 딜러가 활동하는 예술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회고한다.

스위스 유명 컬렉터 울리 지그의 컬렉션 전시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이 송은에서 오는 5월 20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세계적으로 큰 규모와 영향력을 지닌 중국현대미술 컬렉터로 여겨지는 울리 지그의 컬렉션을 국내에 처음 공개하는 전시다. 송은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현대미술 컬렉션의 취지와 현황을 정기적으로 조명하고자 다양한 컬렉션 전시를 기획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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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Ai Wei Wei 아이 웨이 웨이, Safety Jackets Zipped the Other Way, 2020, 구명자켓 5개, 가변설치/ Zang Kunkun 장쿤쿤, Upright (III), 2018, 벽돌, 구리, 나일론 밴드, 고무, 철, 나무보드, 바퀴, 110. 5 x 220 x 80cm (사진=송은문화재단 제공)

‘기증’을 위한 컬렉팅…“예술은 세계의 확장”

지그는 일반적인 컬렉터들과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 그의 컬렉션 원칙이 삶과 역사를 담은 작품에 있다는 점과 ‘축적’이 아닌 ‘기증’에 목표를 둔 컬렉팅 태도 때문이다. 지그는 ‘중국’이라는 국가를 알아가고자 ‘미술’에 관심을 가졌고, 국가단위에서 하지 않는 일을 자신이 나서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초창기 컬렉팅 원칙은 중국현대미술의 백과사전식 컬렉팅이었다. 되도록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고자 했고, 컬렉터의 취향이 개입되기보다 중국 현대미술사를 관망할 수 있는 흐름을 담아 중국에게 돌려주고자 한 것이다.

지그는 자신의 염원대로 2012년 1,510점의 중국현대미술 작품들을 홍콩의 M+ 뮤지엄에 기증하며, 홍콩의 M+ 뮤지엄의 개관 컬렉션 구성에 큰 기여를 했다. “사고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라는 박물관의 입장이 지그에게 결심을 일으켰다.

컬렉션 기증이후에도 지그는 컬렉팅을 멈추지 않았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북한, 몽골 주재 스위스 대사로도 재직했던 지그는 한국현대미술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2021년에는 스위스 베른미술관에서의 컬렉션전을 통해 남북한의 미술을 한 데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2012년 기증 이후 지그가 새롭게 컬렉팅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2012년 기증 이후 지그는 좀 더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을 반영한 컬렉션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지그는 “컬렉팅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술로 알게 되는 것이 새로움을 전한다”라고 말한다. 기증 이후에 지그는 300여 점의 규모의 컬렉션을 유지했으나, 그의 멈추지 않는 작품 수집 열망으로 인해 현재 컬렉션의 규모는 600점을 넘겼다. 이번 전시는 그 가운데 일부를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층별마다 각각의 장(章)으로 구성해 컬렉션의 다양한 작품을 통한 색다른 시선과 감성을 제공한다. 중국현대미술 작가 총 35명의 설치, 영상, 조각, 회화 등 48점을 선보인다.

2층 전시장은 <Pure Painting – Towards Abstraction (순수회화-추상을 향해)>이라는 주제로 한멍윈의 신작과 함께 중국 현대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선보인다. 3층 전시장은 <Body – The Revenge of the Female (몸-여성의 복수)>, <Nature – Acculturated(자연-동화되다)>라는 2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Body – The Revenge of the Female (몸-여성의 복수)>에선 중국 여성 작가들의 행위 예술, 신체예술을 선보이고 있으며 80년대생 위주의 중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Nature – Acculturated(자연-동화되다)>에선 중국 전통 대나무 회화, 자연물을 소재로 한 회화를 선보이면서 그 이면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하 2층 전시장은 <Material Stories>라는 주제로 조각 작품과 함께 몰입형 영상 설치 작업을 공개한다.

▲Han Mengyun 한멍윈, The Pavilion of Three Mirrors, 2021, 철판과 아치형 철 구조물, 가변 설치 (사진=송은문화재단 제공)

이번 전시는 울리 지그와 계속 소통하며 그의 컬렉션을 꾸준히 지켜봐 온 베르나드 피비셔(Bernard Fibicher)큐레이터가 협력 기획했다. 피비셔는 600여 점의 작품 중에 어떤 것을 선별해 선보여야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베른 쿤스트할레 디렉터, 베른 쿤스트 뮤지엄 디렉터로 활동 후,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스위스 로잔 주립 미술관 Cantonal Museum of Fine Arts (MCBA) 디렉터로 지낸 피비셔는 관장직에서 퇴임 후, 다양한 문화를 기반으로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며 꾸준히 프리랜서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전시 개막 전 이뤄진 간담회에는 울리 지그와 베르나드 피비셔가 모두 참석했고, 피비셔는 직접 전시를 소개하며 한국에서 중국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것의 새로움, 중국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지향을 신중하게 전달했다. 지그는 이번 컬렉션 전시가 자신의 컬렉팅을 중심으로 기획됐지만 ‘컬렉팅’보다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에 더 초점이 맞춰지길 바라며, 관람객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폭과 너비를 확장할 수 있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Cao Yu(차오위)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베르나드 피비셔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추상, 여성, 자연, 저항’으로 구성된 중국 현대 미술 장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은 ‘울리 지그’라는 컬렉터를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이지만, 확실히 ‘중국현대미술’이라는 지점에도 방점이 찍혀있다.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중국 현대 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을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됐으며, 총 4개의 장이 명확한 주제성을 가지고 펼쳐진다는 것이 전시에 흥미를 더한다. 더불어 모든 전시를 관람하고 난 후에는 각기 분리돼 공개됐던 작품들 또 한가지 주제 안에서 묶어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어, 다양한 시각으로 전시에 접근해볼 수 있다.

피비셔는 중국 전통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들을 중국 현대미술이 어떻게 비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전했다. 중국 전통회화는 작품 창작 이전에 작가 자신의 수양을 위한 명상단계를 거치고, 실질적으로 창작은 단숨에 행하며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진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현대 미술 작가들은 중국 전통회화와 같은 도상을 아주 느리고 오랜 시간 동안 제작해, 기존의 화법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기도 하고 페인팅 머신을 개발해 창작자의 개입을 최소화 하는 등의 창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는 작품은 Gu Xiao Ping(구샤오핑)의 <Ink Lines in Motion>, Xie Molin 시에몰린의 <Jian 2> 등이다.

▲(좌측부터)Shi Guowei 시궈웨이 <Kyoto>, Shen Shaomin 쉔 샤오밍<Bonsai No. 19>, Charwei Tsai 작품 (사진=송은문화재단 제공)

이번 전시에는 굉장히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이는 정치가 배제된 작품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작품이 많이 속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이지 않지만, 그 작품 이면에 있는 비틀려 있는 시선과 저항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재미가 될 것이다.

주목할 만 한 장으로 3층 전시장의 <Body – The Revenge of the Female (몸-여성의 복수)>을 꼽을 수 있다. 피비셔는 해당 전시공간을 소개하며 “1980년대 중국 행위예술계를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여성 행위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80년대 생 여성 행위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성의 몸으로만 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해 작업하고 선보였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생 예술가 Cao Yu(차오위)의 작품 중에는 엄마가 된 몸으로 자신의 가슴에서 젖을 짜내는 행위를 담은 작품이 있다. 피비셔는 해당 작품에 대해 “중국에서는 검열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은 선보이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검열이 없어서 공개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남성 위주의 예술 세계 속에서 여성의 몸으로만 할 수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Ji Dachun 지다춘, Kill Kill, 2004, 캔버스에 혼합매체, 140 x 140 cm (사진=서울문화투데이) 

3층 전시장 <Nature – Acculturated(자연-동화되다)> 장에서도 흥미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대나무와 자연 등을 소재로한 중국 전통 회화에서 새로움과 반전을 추구한 작품들이다. Ji Dachun(지다춘)의 <Kill Kill>이라는 작품은 언뜻 보면 대나무를 그린 회화인 듯 하지만, 대나무를 이루는 것이 뼈와 피로 형상화돼 있다. 중국 전통회화에서 대나무를 그릴 때 줄기, 옹이, 잎사귀 등의 요소를 필수적으로 배치하는데, 지다춘은 잎은 피로 형상화하고 대나무 줄기는 뼈, 옹이는 뼈의 관절 등으로 표현했다. 피비셔는 “중국에선 대나무 그림을 장수의 의미로 보는데, 이 그림의 경우 그 의미조차 뒤집어 인간은 언젠가 죽고,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느낌을 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Shen Shaomin(쉔 샤오밍)의 <Bonsai No. 19>도 흥미롭다. 화분에 나무를 심어 그 모양을 아름답게, 보기 좋게 가꾸는 분재를 기이하게 뒤틀린 형태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나무가 위로 자랄 수 없게 철판으로 막고 있고, 그 철판에 뚫린 구멍으로만 햇빛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나무의 줄기에도 나사를 박거나 철끈으로 감는 등 나무의 성장을 제한하고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이는 중국 사회의 제재와 검열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He Xiangyu 허샹위, The Death of Marat, 2011, 유리섬유, 실리카 겔, 36 x 183 x 85 cm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외에도 전시에선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동시에 미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도 전시의 중요한 지점이다. 2층 전시장으로 들어서기 전 마련된 공간에는 중국 현대미술가들이 그린 울리 지그의 다양한 초상화를 만나볼 수 있다. 전시를 다 보고난 후, 이 공간에 들어서면 컬렉터와 작가의 소통이나 믿음 같은 것을 느껴볼 수 있다. 송은의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은 한 개인의 컬렉션과 안목, 경향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현재 중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갈래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송은의 전시공간과 뚜렷한 주제가 드러난 각 장들의 구성이 재미를 더한다.

전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별도의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도슨트 투어는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하며, 11시, 14시, 15시, 16시, 17시 총 5타임으로 운영된다. 기타 자세한 문의는 송은 홈페이지(songeun.or.kr)를 참고하거나 전화(02-3448-0100)를 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