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展 “해방을 향한 여정”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展 “해방을 향한 여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3.30 1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트선재센터 1,2 전시실, 6.25일까지
약 130여 점 조각, 설치작 등 대규모 회고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해방’이라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모더니즘 조각의 흐름을 뒤집은 스위스 여성 아방가르드 예술가 하이디 부허(Heidi Bucher)의 아시아 첫 회고전이 개최된다. 아트선재센터 1,2 전시실(2,3층) 전시실에서 지난 28일 개막해 6월 25일까지 관람객을 만나는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다.

▲ ‹신사들의 서재 스키닝›, 1978, 싱글 채널 16mm 필름 (컬러), 음향, 43. 13’47’’, 촬영 인디고 부허, 제공 하이디 부허 에스테이트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장언)가 하우스데쿤스트 관장 안드레 리소니(Andrea Lissoni)가 모더니즘 조각사에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평한 예술가 하이디 부허의 회고전을 준비했다. 부허의 예술세계는 ‘해방’이라는 명확한 주제의식 아래 조각적, 수행적 작업 방식을 통해 특정한 공간에 위치하는 인간의 몸과 존재 양식을 탐구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부허의 초기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드로잉과 아카이브를 포함해, 후기 스키닝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약 130여 점의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기록 등을 공개한다.

부허는 아버지의 서재, 조상들이 대대로 살던 집의 마룻바닥, 여성 혐오에 기반한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질병과 관련해 당대 최고 전문가였던 정신과 의사 빈스방거(Dr Binswanger)의 치료실 등, 부허는 ‘가부장적인 위계성이 내재된 공간’을 탐구했다.

그녀의 작업은 공간에 라텍스를 바르고 천으로 덮은 후 벗겨내는 기법, 즉 스키닝(Skinning) 방식을 통해 공간에 개입한다. 부허는 스키닝 기법을 통한 설치 작업을 ‘피부를 생성하는 행위’로 설명했는데, 피부는 세계와 만나는 인터페이스로서 기쁨과 고통, 행복과 불편함을 담고 있는 기억의 감각적 창고로서 제시됐던 것이다. 전시에서는 부허가 스키닝 기법으로 제작한 <빈스방거 박사의 치료실(Parlour Office of Doctor Binswanger)>(1988) 등 주요 스키닝 설치 작업 4점을 선보인다.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 크로이츠링겐 벨뷰 요양원,1988, 거즈, 부레풀, 라텍스, 360x525x525cm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부허는 1940년대 취리히 미술공예학교(Zurich School of Arts and Crafts)에서 여학생들에게 권장됐던 의상 제작 교육을 전공했다. 이 시기 부허는 당시 교수였던 바우하우스 출신의 요하나스 이텐(Johannes Itten)의 영향으로 색채와 조형에 대한 실험들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텐의 색채론 영향을 드러낸 부허의 초기 실크 콜라주 작업 13점을 최초로 선보인다.

부허의 이러한 초기 조형 실험과 교육 배경은 이후 그녀의 “입을 수 있는 조각(wearable sculpture)” 시리즈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시한다. 칼 부허와 뉴욕으로 이주한 하이디 부허는 뉴욕 맨해턴 거리를 걸어 다니며 “입을 수 있고”, “옮길 수 있는” 조각인 <랜딩스 투 웨어(Landings to wear)>(1970)를 선보인다. 이 작업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영향을 미쳤던 도래할 우주시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랜딩스 투 웨어›, 1970, 뉴욕에서 칼 부허와 함께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1960-70년대 페미니즘 조각 실험은 철, 돌과 같이 반영구적 재료를 바탕으로 거대한 스케일로 제작하는 모더니즘 조각사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허가 제시한 <입고 움직이는 조각>은 페미니즘 조각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사회적 공간과 개인적 공간에 내재한 위계성을 드러냄으로써, 부허의 작업은 그녀의 표현대로 “변신의 과정(process of metamorphosis)”을 드러내는 해방을 향한 긴 여정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하이디 부허의 도전과 모험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고, 새로운 변신의 공간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