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카스피해 최대 항구 도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에라캄(ERAKAM) 한국학 국제학술대회
[특별기고]카스피해 최대 항구 도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에라캄(ERAKAM) 한국학 국제학술대회
  • 조현주 문학박사, 강동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 승인 2023.03.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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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찾아온 설렘

박사학위 논문을 마친 후 첫 국제학술대회의 참석은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해외 출국이 위축되었던 터라 오랜만에 출국은 더욱 시간을 재촉했고, 출국 당일은 들뜬 마음에 새벽을 맞았다. 여유 있게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은 팬데믹 전만큼 변함없이 붐비는 모습이었다. 긴 출국 시간을 기다린 끝에 오른 비행은 낯설기만 한 나라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두바이를 거쳐 도착한 아제르바이잔은 최근 코카서스라는 이름의 여행지 중 하나로 인기가 급등하고 있는 만큼 매력적인 나라였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듯,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할 때엔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고, 한국에서도 봄이면 만개하는 벚꽃들이 곳곳에 피어 우리를 반겼다.

▲개회식. 왼쪽부터 에르지예스대 이정혜 교수, 엘친 이브라힘,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튀르키예연구센터장 이은용, 주 아제르바이잔공화국 대한민국 대사, 카말 메흐디 압둘라예프,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총장 괵셀 튀르쾨쥬, 에르지예스 중핵대학사업단장
▲개회식. 왼쪽부터 에르지예스대 이정혜 교수, 엘친 이브라힘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튀르키예연구센터장, 이은용 주 아제르바이잔공화국 대한민국 대사, 카말 메흐디 압둘라예프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총장, 괵셀 튀르쾨쥬 에르지예스 중핵대학사업단장.

다양한 문화를 품은 불의 도시.

카스피해의 남서부 연안을 끼고 러시아 남부와 이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Republic of Azerbaijan)’은 세계적인 산유국이다. 나라 이름도 ‘불의 땅’ 이라는 의미다. 땅 곳곳에서 가스가 흘러나와 불이 붙는 모습을 본 고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불을 숭배했다. 자연스럽게 ‘불’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아 자르(Abhar)’와 땅을 의미하는 아랍어 ‘바이잔(Beygan)’이 나라 이름의 유래가 됐다.

신석기 인류 문명으로 수 천 점의 암각화와 진흙 화산으로 알려진 ‘고부스탄(Gobustan)’, 800년 역사의 중세 도시의 모습을 품은 고건축 ‘메이든 타워’, 현재 모던 건축물로 바쿠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플레임 타워’ 등이 시선을 이끌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독특한 문화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듯 했다. 밤거리를 거닐며 바라 본 카스피해 연안의 야경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바쿠는 한때 실크로드의 대상(隊商, Caravan)들의 주요 교역로이기도 했다. 수세기 동안 페르시아, 투르크, 러시아의 영향을 받으며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이후 19세기 후반 무렵 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되어 원유 생산국으로 세계의 자본이 모이게 되면서, 바쿠는 작은 항구 도시에서 단숨에 동서양의 문물이 어우러진 화려한 도시가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문화권이다.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라고는 하지만 거리에는 히잡 쓴 여성이 드물었다. 이제 새로운 문명을 더욱 받아들이며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공존하며 역사와 현재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아제르바이젠은 그들만의 문화예술이 숨 쉬고 있었다.

학술대회 발표자들. (왼쪽부터) 고려대학교 홍종열 교수  고려대학교 안남일 교수 고려대학교 박사수료 박주초, 에르지예스대 정진원 교수,. 고려대학교 박사 조현주
학술대회 발표자들. (왼쪽부터) 고려대 홍종열 교수, 고려대 안남일 교수, 고려대 박사수료 박주초, 에르지예스대 정진원 교수, 필자(고려대 박사).

에라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다.

이번에 참석한 에르지예스 유라시아 한국학 연구소(ERAKAM‧에라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는 튀르키예(옛 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중핵대학사업단의 주최로 개최됐다.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에서 3월 14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주제는 ‘알타이 벨트 한국학 연구’로 튀르키예, 한국과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7개국, 18개 대학에서 한국학 관련 연구자들 50여명 참가했다. 나라를 초월해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언어, 사회, 문학 등 한국학의 모든 제반 영역에 관련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알타이벨트의 한국학 전문가와 연구자들의 활발한 학술 교류 뿐 아니라 국제적인 한국학 연구 협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학술대회에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대회장
▲학술대회에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대회장

학술대회는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의 세심한 준비와 따뜻한 환대 속에서 막이 올랐다. 에르지예스 중핵대학사업단장의 개회사와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총장의 환영사, 주 아제르바이잔 대한민국 이은용 대사의 축사가 학술대회의 막을 열었다.

이후 개회장에 울린 아제르바이잔 국가는 알타이벨트 연구의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입증하는 듯 했다.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학생들은 학술대회 첫날 한복을 입고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을 안내했다. 무엇보다 한국어로 대화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주목할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 나라들에서 많은 발표자들의 지원과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뻗어가는 K-Culture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관심이 더 높아졌으리라. 외부에서 온 수십 명의 참관자들이 함께 참여한 국제학술행사는 열띤 발표와 토론의 장이 되었고, 진정한 한국학 학술 교류의 장이 펼쳐졌다.

▲발표자를 비롯 세미나 참가자들이 행사를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했다
▲발표자를 비롯 세미나 참가자들이 행사를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했다

필자는 고려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소속의 안남일 교수, 홍종열 교수, 박주초 박사과정 수료자와 함께 발표자로 참석하였다. 용혜정 박사과정 수료자는 참관자로 동행했다.

먼저 안남일 교수는 「충주 달달문화재 야행」연구를 발표했고, 홍종열 교수는「한국문화콘텐츠연구 키워드 고찰」을, 박주초 수료자는「한국 대중문화의 역주행 현상에 관한 고찰」을 소개했다. 필자는 콘텐츠 중 지역 뮤지컬 제작에 대한 발표를 계획했으나 문화콘텐츠 제작 여건이 열악한 현지 사정을 감안해 한국의 문화정책과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고, 참석자들은 경청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필자는 「지역문화재단의 뮤지컬 제작의 핵심 성공요인 연구」의 박사논문 요약본을 발표하고자 했으나, 현지에서 콘텐츠 제작보다는 한국의 문화정책과 지역문화재단의 역할 발표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져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발표 후 참가자의 질의학술대회를 통해 각 나라의 연구자들과 ‘한국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유익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학술대회가 열린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입구.(왼쪽부터)이번 대회 학술발표를 한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테츠학과  박주초, 홍종열, 안남일, 조현주 박사
학술대회가 열린 아제르바이잔 언어대학교 입구.(왼쪽부터)이번 대회 학술발표를 한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수료자 박주초, 고려대학교 홍종열 교수, 고려대학교 안남일 교수, 필자.

알타이 지역에서 한국학을 심다.

튀르키예나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은 알타이 지역으로 한국어(우랄-알타이 어족)와 뿌리를 같이한다. 말의 뿌리가 같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선조들이 이 지역에 살았으며 오래전에 그곳을 벗어나 머나먼 여정 끝에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국에 자리 잡고 살아왔다는 것을 입증한다.  

과거 대륙의 동쪽 끝 변방에서 문화를 꽃피운 한국은 이제 K-Culture라는 이름으로 세계 중심에서 문화 중흥기를 맞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 선조들이 살았을 지도 모르는 지역에서 한국학 연구 및 교육 인재 양성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번 학술대회가 열린 아제르바이잔 바쿠시 전경
▲이번 학술대회가 열린 아제르바이잔 바쿠시 전경

이번 학술대회는 튀르키예를 비롯해 인근 중앙아시아 지역 투르크어권 국가의 대학 연계를 통한 한국학 연구와 교육시스템 구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 과정이다. 이런 학술대회가 단지 일회성으로 ‘한국학의 새 물결’ 정도를 소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지원되어 한국 문화가 알타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를 응원한다. 나아가 한국의 문화가 세계의 중심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다. 이번에 참석한 에라캄 한국학 국제학술대회는 주로 문화 사업을 진행하고 실용학문에 앞섰던 필자에게 학문적인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 뜻깊은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