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딱지 16회
[연재] 딱지 16회
  • 김준일 작가
  • 승인 2010.02.08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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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당 (2), 6. 발표 (1)

▲삽화 문길시인
5. 무당 (2)

무당의 집에서 나오며 미순은 자신의 머리에다 꿀밤을 한 대 먹였다. 말도 안 되는 뻔한 소리를 듣느라고 쇠고기 한 근 값을 내버렸다는 게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스런 일이었다.

미순은 집에 돌아와서도 다시 한번 꿀밤을 먹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돈벼락을 맞는다는 그 소리가 생각나는 것이다. 바보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을 해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타협안이 나왔다. 사주하고 관상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고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으니 믿어 봐서 손해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해낸 것이다. 미순은 무당이 했던 것처럼 노트를 펼쳐 놓고 자신이 돈벼락을 맞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적어 보았다.

1. 복권에 당첨된다. 단 복권을 먼저 사야 한다.
2. 소식도 모르고 있던 먼 친척이 죽으면서 막대한 유산을 남긴다. 정구씨한테 그런 친척이 있는지 알아 볼 것.
3. 고향 선산에서 금광이나 온천이 발견된다.
4. 선산이 개발지구가 되어 땅값이 엄청나게 오른다.
5. 정구씨가 번역한 책이 백만 부쯤 팔린다.
6. 우연히 택시를 탔다가 누군가 두고 내린 가방을 줍게 되는데 그 안에 백만 달러가 들어 있다. 범죄와 관계된 돈이 틀림없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도 된다.

다시 한번 읽어 보고 나서 미순은 6번을 지웠다. 백만 달러나 잃어버린 범죄자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생 마피아와 같은 범죄자에게 쫓겨야 한다면 백만 달러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복권이었다. 그러나 미순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복권을 사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결국 여섯 가지의 가능성은 꼬깃꼬깃 구겨져 휴지통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대신 미순은 아무 죄도 없는 무당한테 화풀이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사기나 치는 엉터리 점쟁이 같으니.

6. 발표 (1)

자기 방에서 저녁 뉴스를 보고 있던 수동씨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뛰쳐 나왔다.

야, 너희들 지금 뉴스 보고 있어?

입춘 우수가 지나 날씨가 확 풀릴 무렵이었다. 정구와 미순도 물론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일산 신도시개발에 관한 뉴스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신도시개발이라는 것을 일산에다 또 아파트를 짓는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자기네들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제 팔자 고쳤다! 팔자 고쳤어!

수동씨는 너무 흥분해서 자신이 잠옷바람이라는 사실도 모를 지경이었다. 정구와 미순은 어리둥절했다. 수동씨가 급하게 숨을 몰아 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일산지구에다, 그러니까 일산읍하고 고양군을 합해서 새 도시를 하나 만든다는 거야. 길도 새로 뚫고 아파트 단지도 새로 만들고 말이야. 무슨 얘긴지 알아들어?
예. 거기까지는 알겠는데요.

정구가 어눌하게 대답하자 수동씨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연히 땅값과 집값이 뛸 거 아니야? 그냥 땅값과 집값만 뛰는 게 아니야. 현재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 그걸 원주민이라고 하는데, 원주민한테는 아파트나 택지를 분양받을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외지사람들처럼 추첨같은 거 안 하고 거저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니까. 그것을 딱지라고 해. 딱지란 말 들어봤지?
예.
그 딱지 한 장이 분당 신도시 때에는 1억5천까지 나갔어. 그러니 여기 일산의 경우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억은 나갈 것 아니냐 이 말이야. 이제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어?

다시 말하자면 정구네는 단돈 3백만 원을 들여 가만히 앉아서 1억을 벌게 되었다는 얘기다.

미순은 돈벼락을 맞을 거라던 무당의 말이 생각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맞출 수가 있을까. 그러나 무당의 예언을 알 리 없는 정구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안 나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