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문학을 잇는 건널목이 있다면
[Human Library]문학을 잇는 건널목이 있다면
  • 독립기획자 고은결
  • 승인 2023.04.19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문학을 대하던 모습

문학과 독서는 긴밀한 관계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고, 독서는 언어를 향유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미디어 콘텐츠가 문화 시장의 전반에 걸쳐 유통되면서 독서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취미의 우선순위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글을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책이나 종이보다 태블릿, 스마트폰을 통한 접근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며 현재는 문해력을 의심받는 시대다. 글을 읽고 쓰는 행위가 점차 간략화되고 이해 역시도 효율성을 요구하며 긴 글을 지양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문학을 접하는 일이 익숙한 아름다움에 가까워지면 어떨까. 매일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사소하더라고 기쁨에 가까운 것처럼. 카페 꼼마의 전경 ⓒ카페 꼼마 홈페이지
우리가 일상에서 문학을 접하는 일이 익숙한 아름다움에 가까워지면 어떨까. 매일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사소하더라고 기쁨에 가까운 것처럼. 카페 꼼마의 전경 ⓒ카페 꼼마 홈페이지

지금 우리의 독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이어 주목받는 단어 중 하나인 ‘갓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의 경향이 이제 자기 계발을 통한 만족과 성장으로 이어졌다. SNS에서도 도서 추천 콘텐츠가 빈번히 보인다. 물론, 문화적 과시를 위한 경우도 있다. 연대라는 틀 안에서 사람들은 성장과 성취를 동반하여 즐기고 있다. 독서라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의 과정도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책의 변화

독서의 방식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종이책이 전부던 예전과 달리, 오디오북, 전자책, 리더기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종이책의 물질적 단점이 사라지며 일상에서 짧고 굵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원작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한계다. 오디오북의 경우 녹음된 호흡을 따라서 읽게 되고, 전자책과 리더기는 등록된 작품만 있으며 스마트폰의 장시간 사용으로 과도한 피로감을 줄 수도 있다. 

문학의 원소스 멀티 유즈

최근 출판사와 문학 관련 단체에서도 SNS를 활용한 콘텐츠를 활발히 제작하고 있다. 기존의 독서를 즐기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문학을 더 넓고 깊게 즐길 수 있게 기회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현대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과 드라마 등이 활발히 제작되며 몇몇 작품이 주목받는 성공적인 사례도 있었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나 감상평을 공유하는 것, 원작이 타 장르로 재창작되면서 새롭게 표현되는 것은 분명 필요하고 긍정적인 점이지만, 문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까지 다가서지는 못한다. 타 장르로서의 특수성에 매료되어 재창작된 작품만 관심과 사랑받거나 문학 작품을 굿즈로서의 소비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문학과 독서 전후의 콘텐츠

문학은 개인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심리적 치유, 공감, 연대를 작용하게 하고 지적 능력의 성취와 만족을 돕는다는 것을 계속 증명해왔다. 그러나 아쉬운 지점은 단면적인 소통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는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입체적인 소통을 통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를 이루는 것이다. 문학을 읽기까지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콘텐츠가 필요하고, 읽은 후 감상을 나누고 작품의 여운을 즐길 기회가 필요하다. 이 과정이 활발한 문학 시장과 독서 문화를 촉진 시킬 것이다. 독서는 문학에 가장 적확한 접근 방법이지만, 독서만이 문학을 즐기는 방법이 되는 건 무리가 있다. 방송사와 신문, 뉴스 등의 언론이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다양한 매체에서 모습을 선보이고 있듯 문학의 움직임도 기대할 때이자, 보여줄 때다.

우리의 문학적인 일상을 기대하며

문학은 우리가 가닿아야 할 여백이다. 독서는 이전을 살펴보며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문학 작품을 읽는 건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취미가 아니라 내가 온전히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독립된 시공간을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의 안팎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여백에 닿게 해줄 목소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