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광장문화]AI, 너에게 묻는다
[김승국의 광장문화]AI, 너에게 묻는다
  •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회관 이사장
  • 승인 2023.04.1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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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예술가도 경쟁자로 걱정하는 챗GPT의 등장

어제저녁 후배 시인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다. “선배님! 요즘 뜬다는 챗GPT에게 시를 써보게 했습니다. 아직은 기계적이고 풀어내는 데 미숙한 문제가 많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알파고가 바둑을 정복하듯이 시(詩)도 시인도 AI에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풀이 죽은 내용이었다.

그가 챗GPT에게 ‘봄, 꽃, 새를 이용해서 동생을 생각하는 시(詩)를 써달라’고 주문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챗GPT를 써주었다는 것이다.

벌써 봄이 왔나 봐요 / 찬바람이 사라지고 햇살이 내리쬐네요 / 그리운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 봄의 아름다움에 취해봅니다 // 꽃들이 피어나고 / 새들이 노래하네요 / 그 소리를 들으면서 / 동생의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 어떤 꽃이든지 좋아했던 동생의 / 사랑스러운 모습이 생각나서 /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 나의 작은 마음이 동생에게 전해지길 / 새들의 노래처럼 행복한 봄을 보내길 / 그리움은 참 아프지만 / 봄의 따뜻한 햇살로 함께 녹아내리길 바래봅니다

챗GPT가 쓴 시를 시문학적으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글쎄 100점 만점에 30점 정도를 줄 만한 어찌 보면 귀엽기까지 한 시였다.

나는 그에게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을 따라갈 수 없겠지요. 그냥 이럴 수도 있겠다 하십시오.”라고 답변 문자를 보내 그를 다독이고 카톡 대화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한 참 생각에 잠겼다. AI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것은 틀림없다. 정상급 프로 바둑기사를 누를 정도니까. 예술 영역에서도 멋진 그림을 그리고, 3D로 조형미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시도 쓰고, 작곡도 하고, 문학적 에세이와 소설을 쓰니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다른 프로그램과 연결하여 휴가 계획도 짜주고 호텔·항공권 예약도 대신해주는 ‘챗GPT 플러그인(plug-in)까지 나왔다고 하니 어디까지 무궁무진하게 진화 발전해나갈지 모르겠다.

AI는 인공물일 뿐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창작의 고통을 느낄 줄 몰라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불과 1, 2백 년 전 사진이 등장할 때만 해도 미술 회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탄식 섞인 우려의 말이 나왔지만, 여전히 사진은 단지 이미지만 만들어낼 뿐이고, 오히려 사진은 미술작가들의 지평을 더 넓혀주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인공지능 3D 로봇으로 매끄러운 조각 작품을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로댕의 작품처럼 작가의 깊은 고뇌가 느껴지는 조각 작품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AI 기술은 예술가들의 창작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로 사용될 것

AI는 인간의 놀라운 성과이기는 하다. 내 후배 시인이 걱정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알파고가 바둑을 정복하듯이 시도 시인도 AI에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우려는 그저 기우일 뿐이다. 오히려 예술가의 창작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예술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이 예술가들의 창작 지평을 넓혀주고 있는 것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AI는 인공물일 뿐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창작의 고통도 느낄 줄 모른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져야 하는 시대정신도 없다. AI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지도 못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과 평화에 대해 끊임없는 통찰을 하지도 못한다.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미적 탐구에 대한 본질적 고뇌의 경험도 없고 고뇌할 줄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가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과 사랑, 미적 창의력과 상상의 세계가 없다. AI가 아무리 진화 발전한다고 해도 예술가를 넘어설 수 없다.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하였다. 나는 AI에게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AI, 너에게 묻는다 / 인생과 예술을 함부로 논하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도 한 번이라도 뜨거운 인공지능이었느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