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으로 돌아온 인왕산 호랑이
문화의 힘으로 돌아온 인왕산 호랑이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2.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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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이야기 · 전설이 사람들을 매료시켜

호랑이 하면 떠 오르는 것이 백두산 호랑이와 인왕산 호랑이다.(지리산 호랑이니 묘향산 호랑이라는 말은 없다.)  백두산 호랑이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라는 웅혼한 이미지와 어울려 우리에겐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준다.

특히 나라가 위태롭거나 민족의 자존이 심히 구겨진 시대엔 그것을 표상으로 국운 개척의 지줏대로 삼고 싶은 것이 백두산 호랑이였다. 지금부터 100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新體詩)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가 실린 것으로 유명한 잡지 <소년>(1908년 11월 창간)의 표지 그림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 잡지를 창간한 육당 최남선 선생은 창간호 표지 그림을  호랑이로 형상화한 한반도로 장식해 당시 뜻있는 이들의 격찬을 받았다. 최남선은 호랑이 한반도 그림에서 우리나라 백두산 지역을 호랑이의 포효하는 아가리와 빛나는 눈빛을 번득이는 머리로 표현해 놓고, “동아대륙을 향해 나르난 듯 뛰난 듯 생기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이라는 해설까지 덧붙였다.

나라가 일제에게 넘어가던 시절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호랑이의 기상에 기대어 나라에 새 힘을 불어 넣으려 했던 선생의 뜻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인왕산 호랑이는 백두산 호랑이의 상징성을 넘어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 온 호랑이였다. 다시 말해 같은 ‘백두산 호랑이’가 우리 백성들과 어울리며, 생활 속에 함께 들어 왔을 때 ‘인왕산 호랑이’가 되었던 셈이다.

결국 백두산 호랑이와 인왕산 호랑이는 동일한 우리 호랑이 ‘조선 범’인 것인데, 그것이 민족의 상징으로 다가올 땐 백두산과 겹쳐지고, 생활로 다가올 땐 인왕산과 겹쳐졌다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상징으로서의 호랑이보다 생활로서의 호랑이가 이야기와 전설도 많이 남겼다.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보다 인왕산 호랑이 이야기가 더 많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왕산 호랑이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이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948~1031)에게 쫒겨간 호랑이 이야기이다. 남경이라 불리던 한양에 강감찬이 판관으로 부임해 왔는데, 삼각산(북한산)과 인왕산 일대에 호랑이가 하도 많았던 모양이다.

비범한 강감찬이었던 지라 어느 날 뒷산 양지바른 곳에서 졸고 있는 늙은 중이 호랑이가 변신한 요물임을 단 번에 알아 보았다. 강감찬이 그를 불러 “너 본색을 드러내라”하고 “너희들이 들끓어서 백성들이 살 수가 없으니 족속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명령했다.

과연 그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호랑이들이 한 줄로 서서 힘없이 물러가는데 그 행렬이 밤낮 사흘이 걸렸다. 이때 새끼를 배어 만삭이 된  호랑이 한 마리만 두만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도록 허락했는데, 그것이 번져서 한국 호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인왕산 호랑이는 효자 박태성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전한다. 조선말 한양에 박태성이란 효자가 살았는데, 그는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도 고양에 묻힌 아버지 산소를 찾고 나서야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인왕산 아래 무악재 일대에 호랑이가 출몰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무악재 너머 고양까지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40년 동안 그를 태워 아버지 산소와 무악재를 왔다 갔다 했다. 인간의 효심을 알아 본 이 호랑이는 박태성이 죽었을 때 그의 무덤 옆에서 같이 죽어 후손들이 함께 묻어 주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북한산 기슭에 이 박태성 부자의 무덤과 박태성을 태워줬던 인왕산 호랑이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인왕산 호랑이는 우리네 생활 속에 이토록 풍부한 전설과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그 호랑이를 이야기하는 ‘인왕산 호랑이상’이 설날인 2월 14일 인왕산 기슭 청운공원 ‘시인의 언덕’에서 제막식을 갖는다.(인왕산 정상, 시인의 언덕, 사직동 초소 삼거리 등 세 곳에 호랑이상 설치).

호랑이 해를 맞아 민족의 상징으로 생활속에 함께 했던 우리 호랑이를 ‘인왕산 호랑이’란 브랜드에 실어 국운 융성과 지역발전을 기원하겠다는 종로구의 기획이다. 호랑이가 전하는 풍부한 전설과 이야기가 이제는 ‘스토리텔링 상품’으로 ‘문화의 힘’으로 우리 곁에 다가 왔음을 알리는 순간이라 하겠다. 종로구의 ‘탁월한 지향’이 좋은 열매를 맺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