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사랑은 노래 하나를 남기고 떠나는 것’
[이근수의 무용평론]‘사랑은 노래 하나를 남기고 떠나는 것’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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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관객을 위로하고 평론은 예술가를 위로한다는 믿음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서울문화투데이>가 수여하는 2021년 <무용부문 문화예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시상대에 섰을 때 “30년간 무용평론가로 활동해오면서 무용계가 한 번도 주지 않은 상을 언론계에서 받게 되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감을 밝힌 일이 있다. 이 신문에 무용 평론을 처음 실었던 날이 2013년 5월 3일이었다. 오늘이 그로부터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올해 창간 15주년을 맞은 신문의 역사와 거의 함께 달려온 느낌이 있을 만치 <서울문화투데이>는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랑은 노래 하나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권진경이 1984년에 부른 ‘강변연가’(김정률 작사, 오준영 작곡)가 그 하나의 노래다.  

“그대 나를 멀리 떠나 가신대도 그대 못 잊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미련 때문에 내가 우는데
사랑한다 말을 해야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말 못하는 내 마음은 이슬비처럼 눈물 흘려요,
내 마음속 깊은 그곳에 안타까운 사랑만 있네
그대 나를 사랑했다 생각한다면 아무 말 없이
나의 눈에 젖어 있는 이 눈물을 닦아 주세요.”

가사 원문에서 ‘그대’와 ‘나’를 바꿔 놓아도 달라질 것은 없다. 어차피 떠나는 것은 슬프지만 떠남은 사라지기 때문에 오히려 영원한 것이니까. 10년 동안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이 신문에만 쓴 글이 족히 150편은 될 것이다. 모두가 19면 오른쪽 상단에 <이근수의 무용평론>이란 이름으로 실렸던 내 분신 같은 글들이다. 한 주에 두세 편, 1년에 100편 이상의 무용공연을 보면서도 공연을 보기 전엔 늘 가슴이 설렜다. 공연을 본 후에는 리뷰 할 작품을 고르고 객석에서의 느낌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어휘를 찾느라 또 며칠이고 가슴 조렸던 날들이었다. 무용 가족들 중심으로 한산하던 공연장이 유료 관객들로 북적대고 티켓이 매진되는 공연도 속출하면서 공연장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2년여 문을 닫았던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관객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K-Culture의 확산으로 작품 질이 현격히 좋아진 것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서울문화투데이와 함께 할 수 있던 이 시간 들이 흐뭇하고 또 감사하다. 단 한 편만의 무용 평론이 실리니 다른 평론가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리뷰 대상 선택이나 글 형식과 내용 결정에 간섭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 달에 두 번 발간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동시에 노출되는 신문인만치 다른 무용월간지보다 더 많은 독자가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지면이 주는 장점이고 또 내가 이곳에 글쓰기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다.

대학의 현직 회계학 교수로서 무용 평론을 쓰기 시작한 후 30여 년, 무용계와의 인연은 길다면 길고 깊다면 깊다. 1993년 ‘춤’지 6월호에 ‘애장터’(김말애 안무 출연)에 대한 리뷰를 쓴 것이 아마도 무용지와의 공식적인 첫 만남일 것이다. 1969년 창간한 후 계간지로 발행되던 ‘무용한국’에 3년, ‘예총(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이 발행하던 월간 ‘예술세계’에 10년쯤 <무용산책>이란 칼럼을 썼다. 1999년 창간한 ‘춤과 사람들’에도 1년. 1993년 창간한 ‘몸’지에는 해외에 나가 있던 전 후, 두 차례에 걸쳐 5년 정도 평론을 실었다. 그리고 서문투와의 10년 인연이니 지금까지 쓴 무용 글이 아마도 3~400편은 넘을 것이다. 평론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스스로 한 약속을 이렇게 써놓았던 것이 남아 있다. 

“작품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 무용 예술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사랑, 문학적 가치를 지닌 이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 이러한 능력을 모두 갖추게 될 때 나는 무용가와 독자들에 의해 붙여진 무용평론가란 이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능력을 상실했을 때 언제든지 나는 그 명칭을 반납하고 미련 없이 평론이란 이름의 글쓰기를 중단할 것이다.”(문화예술 2000, 4, 문화예술진흥원). 

사랑은 가슴 설렘이다. 연간 100편의 공연을 보면서도 늘 나를 설레게 했던 춤에 대한 사랑을 예전처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평론가가 넘쳐나고 평론 글이 흔해지면서 희소가치는 사라지고 리뷰를 대체할 수 있는 공연의 보존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관객을 위로하는 것이고 평론은 예술가를 위로하는 것이라는 내 믿음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무용에 대한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이근수의 무용평론은 필자의 사정으로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는 마감합니다. 추후 사정이 여의해 지실 때 간간이 글을 또 게재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0년의 시간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글을 실어주신 이근수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독자여러분들께서도 혜량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