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광장문화] 봄날은 간다
[김승국의 광장문화] 봄날은 간다
  •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회관 이사장
  • 승인 2023.05.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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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오늘은 2023년도 5월의 마지막 날이다. 3, 4, 5월을 봄이라 여기고, 6, 7, 8월을 여름이라 여기는 게 일반적 통념이지만 이미 여름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형식적인 봄날은 오늘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봄을 보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고(故) 백설희(1927~2010)가 부른 ‘봄날은 간다 ’이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1절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산 제비 넘나드는 서낭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봄날은 간다

2절 :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흘러가더라/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봄날은 간다

3절 :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새가 날면 따라 웃고/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봄날은 간다

여인의 한(限)과 봄날의 자연 풍경이 잘 어우러진 가사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가사 속에 노래 주인공의 감정이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듯 자기 한과 그리움을 담담하게 지는 봄바람 속에 날려 보내는 마음이 느껴진다. 잊고 지내고 있지만 가끔은 떠오르는 나 자신의 과거 속에 한때 정다웠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 노래의 선율 속에 살포시 다시금 떠올라 좋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 만나면서 얼마나 많은 맹세를 했던가? 그러나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 ‘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봄날은 간다’처럼 영원한 인간관계를 맹세했던 그 사람들을 떠나보냈고, 그 얼굴들도 기억 속에 희미해졌다.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살펴보면 노래 속의 주인공은 여자임이 틀림없다. 지금은 헤어져 지내지만, 평생을 함께 살자 굳게 약속했던 임을 한편으로는 원망하며 한편으로는 그리워하는 여인의 여린 마음이 저무는 봄날의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잘 담겨있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여자가 아닌 남자, 유명 작사자 손로원

그러나 이 노래의 작사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다. 작사자는 손로원(孫露源, 1911~1973)인데 「귀국선」·「봄날은 간다」·「비내리는 호남선」·「물레방아 도는 내력」·「홍콩 아가씨」·「경상도 아가씨」·「에레나가 된 순희」·「고향의 그림자」·「인도의 향불」·「센프란시스코」·「페르시아 왕자」·「아메리카 차이나 타운」·「백마강」·「잘 있거라 부산항」·「휘파람 불며」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의 가사를 쓴 유명 작사가이다.

CJ 그룹 E&M의 음악 전문 채널 엠넷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6년제 고등보통학교 졸업으로 독학으로 무대장치에 필요한 미술 작업과 공연 포스터 작업 관련 일을 하였다고 한다. 1932년 서양화가로 데뷔하였으며 1934년 시인으로 데뷔하였고 1943년 대중음악 작사가가 되었으며 1958년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반야월과 함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봄날은 간다’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는 1953년에 잉태되었다. 당시 손로원이 부산 용두산 공원 근처 산동네 판잣집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해 겨울 판잣집 단칸방에 고이 모셔 놓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님의 사진을 화재로 잃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평생을 힘겹게 사시다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불효의 회한과 여인으로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외로운 길고 긴 시간을 보냈을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님에 대한 연민을 노래한 ‘봄날은 간다’라는 가사가 그렇게 쓰이게 된 것이다. 다음 해인 1954년 봄이 저무는 어느 날 손로원은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에 있었던 작곡가 박시춘에게 “봄날은 간다” 작사를 전하여 작곡이 완성되어 백설희가 부르면서 영원한 노래 “봄날은 간다”가 탄생한 것이다.

시인 100명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1위로 뽑혀

2004년 계간지(季刊紙) '시인세계'에서 전국에 있는 시인 100명을 상대로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뽑았을 때 손로원이 작사한 “봄날은 간다”가 1위를 할 정도로 가사의 문학성이 뛰어나다. 당시 조사에서 2위는 양인자가 쓴 ‘킬리만자로의 표범’ 3위는 정태춘이 쓴 ‘북한강에서’ 4위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5위에는 정덕수의 시를 원작으로 하덕규가 쓰고 곡을 붙인 ‘한계령’이 자리매김하였다.

‘봄날은 간다’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장사익 등 우리나라 주요한 가수가 가장 많이 리메이크하여 부른 노래이자 일반 대중들이 애창하는 국민가요로 자리 잡고 있다.

봄날은 간다. 그렇지만 봄날은 올해의 여름과 가을과 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돌아올 것이며 올해 진 꽃은 내년에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진 젊음은 다시 피지 않는다. 흘러간 추억도 소중하지만, 지금 이 시간(Here and Now)을 소중히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빛나는 삶이 될 것인지를 늘 성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외친 이 말이 떠오른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