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구자범 지휘 <자유의 송가>, 베토벤 연주의 새로운 장
[이채훈의 클래식비평]구자범 지휘 <자유의 송가>, 베토벤 연주의 새로운 장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3.05.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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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자유’의 참된 의미 선언, 관객의 뜨거운 호응
200년 전 베토벤이 초연할 때와 비슷한 풍경 흥미로워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2023년 5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교향곡 연주사에 한 페이지가 추가됐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초연한 게 1824년 5월 7일이니 초연 200주년을 꼭 1년 앞둔 시점이다. 구자범은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검열 이전의 원작대로 <자유의 송가>로 복원, “모든 이가 형제애로 하나될 때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힘주어 선언했다.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 있는 사람의 자유’로 타락한 ‘자유’란 말은 “만인을 위해 일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라는 원래 의미를 회복했다. 

92명의 오케스트라와 262명의 합창단이 무대를 메웠고, 객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4악장 합창은 단연 백미였다. 국립합창단, 서울시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참콰이어가 함께 한 대규모 합창단은 묵직한 음량을 들려주었고, 세밀한 표정과 다이내믹으로 청중의 가슴에 메아리쳤다. 소프라노 오미선,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김석철, 바리톤 공병우는 가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구자범은 5·18 30주년을 맞는 2010년 말러 <부활>로 광주 영령들을 부활시켰고, 국정농단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2016년 오페라 <맥베스>로 상식의 회복을 외쳤고, 제주 4·3 70주년을 맞는 2018년 베르디 <레퀴엠>으로 제주 원혼들을 위로했는데, 이날 연주는 그 연장선에 있었다. 클래식 음악은 고답적인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 역사와 현실에서 생동하는 ‘모두의 음악’으로 거듭났다. 

지휘자 구자범은 텍스트를 우리말로 번역했고, 방대한 해설을 직접 집필했다. 참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와 연합 합창단을 이끌고 거대한 앙상블을 이뤄낸 것은 불굴의 투혼이었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이올린 파트 음량이 약했고, 팀파니의 포르테가 너무 커서 ‘비음악적’이었고, 호른 파트가 두어 번 틀린 것도 안타까웠다. 4악장에서 성악 솔로이스트들을 무대 측면에 배치한 게 특별한 음악적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고, 목관과 성악 솔로가 맞지 않아서 다시 연주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휘자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1악장 코다, 4악장 코다 등 몇 대목에서 극단적인 템포 변화를 지시했는데, 오케스트라는 이 템포가 몸에 익지 않은 듯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상봉 교수의 지적처럼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탄생한 오케스트라”이며 “최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이 추구하는 으뜸의 가치, 즉 예술의 자유를 위한 연주”라고 이해한다면 이러한 흠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구자범 지휘 <자유의 송가> 공연 커튼콜 ⓒ이채훈

교향곡 9번을 초연했을 때의 베토벤과 우리말 <자유의 송가>를 초연한 구자범은 나이가 같다. 구자범이 지휘한 이날 연주와 베토벤의 이끈 초연 풍경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베토벤은 두루 존경받는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대중 앞에서 서는 건 10년 만에 처음이었고, 초연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연주회장은 좌석이 많고 설비가 좋은 테아터 안 데어 빈이 허가가 안 나서 케른트너토어 극장으로 변경했다. 오케스트라는 45명의 극장 오케스트라에 빈의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더해서 87명의 규모로 확대했고. 극장 합창단도 66명 규모였는데 공개 모집을 통해 100명 가량의 대합창단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리허설을 충분히 할 수 없었다. 합창단 리허설 4번, 오케스트라 파트 리허설 1번, 전체 리허설 1번, 드레스 리허설 1번으로 만족해야 했다. 악보 필사도 순탄치 않았다. 특히 4악장 성악 부분은 가사와 음표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필사해야 하는데 필경사가 제대로 못 해서 베토벤의 애를 태웠다. 연주자들의 불평도 만만치 않았다. 당대의 인기 소프라노 헨리에테 존탁은 “쉽게 고쳐달라”는 요구를 베토벤이 거부하자 “독재자”라며 투덜댔다. 초연 당시 “괴물같은 교향곡”이라며 거부감을 표한 사람도 있었지만, “베토벤이 자기의 모든 인적 힘을 다 쏟아 탄생시킨 위대한 작품”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연주에 대해서는 “리허설이 부족하여 정확성과 섬세한 강약 표현이 불가능했다”는 의견과 “불과 3번의 리허설로 이 정도 연주한 것은 대단하다”는 평가가 엇갈렸다. 

구자범은 이 날 연주를 위해 지휘자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지휘했고, 연주가 끝나자 탈진하여 다음날 오후에야 일어났다. 그는 이 날 연주가 꿈만 같다고 했다. 평생 꿈꾸어 온 무대인 만큼 성취감도 크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 송가> 피날레가 끝났을 때 땀에 젖은 그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베토벤 교향곡 9번 초연 200주년이 되는 내년 5월 7일, 다시 한번 그의 꿈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