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돌아온 샤일록의 시대, 안토니오를 위하여”…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현장프리뷰]“돌아온 샤일록의 시대, 안토니오를 위하여”…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5.18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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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에 대항하는 젊은 소상인들 이야기로 탈바꿈
6.8~11,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 우리 고유의 언어와 소리로 재탄생한다.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은선)은 내달 8일부터 11일까지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을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기자간담회 현장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기자간담회 현장(왼쪽부터)원일 작곡가, 김은성 작가, 이성열 연출, 유은선 예술감독, 안토니오 役 유태평양, 포샤 役 민은경, 샤일록 役 김준수 ⓒ국립극장

개막에 앞서 국립창극단은 18일 오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베니스의 상인들>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자리에는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이성열 연출, 김은성 작가, 원일 음악감독을 비롯해 작품에서 안토니오 역을 맡은 유태평양, 샤일록 역의 김준수, 포샤 역의 민은경 단원이 참석했다. 

이날 유은선 예술감독은 “새로 부임한 뒤 첫 작품이 <베니스의 상인들>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거쳤고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품을 어떻게 준비할까 하다가 웃음을 같이 드릴 수 있는 작품으로 찾아왔다. 6월에 이 공연을 통해 많은 분들이 웃을 수 있고 힐링이 될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다.

독점적 대자본에 대항하는 젊은 소상인들의 이야기로 탈바꿈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은 2017년 창극 <산불>에 이어 국립창극단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추는 이성열이 연출한다. 이성열은 이번 작품에서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빚어내는 희망을 그린다. 

이성열 연출은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베니스의 상인’은 세계가 다 아는 명작이지만, 몇 백 년 전의 작품이다 보니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조금은 의아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들도 존재한다. 종교적ㆍ인종적 편견 등의 부분을 과감하게 각색해 새로운 서사 속에서 우리 시대에 맞는 작품으로 선보일 예정이다”라며 “원작 제목에 ‘들’을 붙여 베니스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젊은 상인들이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각하고자 했다. 공동체적 연대와 희망에 중점을 두면서도 원작의 희극성을 살려 낭만적이고 유쾌한 창극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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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샤일록 役 김준수, 안토니오 役 유태평양 ⓒ노승환

원작의 베니스 무역업자 안토니오는 젊은 소상인 조합의 리더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노회한 대자본가로 바꿨다. 또한,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를 설정해 원작 속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요소를 정제하고, 현대 법정과 같이 법관과 변호사의 역할을 세분화하는 등 지금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각색했다. 

김은성 작가는 “대극장에서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인물들의 사이즈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샤일록은 베니스 무역을 주도하는 대자본가로 탈바꿈시켰고, 안토니오는 베니스 소상인 조합의 리더로 새롭게 설정했다. 대규모 무역상사 회장인 샤일록과 소규모 상인들이 뭉쳐 있는 조합 간의 대결 구도로 바뀐 게 가장 큰 각색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작품 제안을 받고 오랜만에 원작을 꼼꼼히 읽었는데,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들었다. 샤일록이 밉지만, 후에 그가 혼이 나는 장면에서 그리 통쾌하지 않고 씁쓸했다. 오히려 샤일록을 혼내는 안토니오와 그 친구들이 야속하게까지 느껴졌다. 한편으론 샤일록이 사회적 약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돈만 좀 있을 뿐이지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필요악으로 여기던 고리대금업은 유대인들이 떠맡아서 했다. 즐겁게 사랑 놀음을 하며 잘 지내는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늙은 노인을 혼내는 느낌을 받아서 찝찝함이 함께 왔다”라며 “연극으로 각색할 기회가 있다면 샤일록을 중심에 넣고 역으로 젊은 상인들을 혼내주는 전개도 해보고 싶어졌다”라고 덧붙였다. 

원작이 지닌 희극성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우리 소리와 만나 극대화된다. 작창가 한승석은 다양한 장단과 음계ㆍ시김새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역대 창극단 작품 중 최다의 62개 곡으로 이야기 사이사이를 촘촘히 채운다. 

2004년 이후 19년 만에 국립창극단의 창극 작곡을 맡은 원일은 국악기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16인조 구성의 음악과 전자음악을 조합해 작품의 몰입을 끌어올린다. 아이리쉬 휘슬, 마림바 등을 활용해 생동하는 베니스와 이국적인 벨몬트의 분위기를 배가할 예정이다. 여기에 개성 있는 움직임으로 정평 난 안무가 이경은이 합세해 다채로운 군무로 관객의 흥을 돋운다. 

원일 작곡가는 “이번 작품은 이전의 어떤 작품보다 ‘작창의 힘’이 강조된다. 보통 작곡가가 투입되면 작창과 작곡의 비율이 7대 3 내지는 6대 4 정도인데, <베니스의 상인들>의 경우 100% 작창으로 구성됐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판소리의 원형적인 힘이 더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곡가로서 저의 역할은, 작창된 원형의 힘들을 이 시대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록(Rock)적인 것부터 시작해 팝(Pop)적인 요소, 헤비메탈적인 요소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캐릭터에 맞게 등장한다”라며 “이례적으로 창극에서 전자 음악적인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쓰인다. 대중적인 음악 코드 안에 오리지널 작창의 힘을 녹여내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창극단과의 작업을 통해 새롭게 보여주고자 했던 음악적 시도를 묻는 질문에 원일 작곡가는 “샤일록이 갖고 있는 부분들은 일렉 기타나 드럼 같은 비트가 강한 악기로 채워진다. 아울러, 드라마가 갖고 있는 것 이상의 어떤 공상적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사운드 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싶었다”라며 “한편으로는 판소리를 듣고 악기들이 그대로 따라가는 수성가락을 국립창극단의 정체성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극 중) 조합원들의 비극적 정서를 나타낼 때 이를 활용해 계면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저에게 새로운 음악적 방향성보다는 음악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다고 생각했다”라며 “창극은 말로 장단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이 굉장히 잘 구축되어 있다. 이는 작창이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창만 흘러가다보면 멜로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대중음악적 프레임 안에 넣어 관객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기자간담회 현장(왼쪽부터)샤일록 役 김준수, 포샤 役 민은경, 안토니오 役 유태평양 ⓒ국립극장

무대는 사랑과 자유가 충만한 환상의 섬 ‘벨몬트’와 냉혹한 법이 지배하는 현실의 ‘베니스’가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꾸며진다. 제31회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무대미술가 이태섭을 필두로, 연극 <화전가><썬샤인의 전사들>의 조명디자이너 최보윤, 전통한복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의상디자이너 차이킴(김영진) 등이 합세해 볼거리가 풍성한 무대 미학을 완성한다.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울 약 3만 송이의 꽃과 6m 길이의 거대한 범선, 인도의 전통의상 ‘사리’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의상이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해 11월 브루클린음악원의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Next Wave Festival)’의 초청을 받아 기립박수를 받은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은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로 그 열기를 이어간다. 이처럼 국립창극단에 대한 관심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유은선 예술감독은 <베니스의 상인들>의 영어자막을 준비하고 있다며 “<베니스의 상인들>이 아직 공연 전이라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결과에 따라 <트로이의 여인들>처럼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단원들에게 <베니스의 상인들>이 베니스에서 공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세계 어디든 공연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일 것이라 자부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유 예술감독은 “국립창극단은 투트랙으로 갈 예정이다. 외국 작품 소재로 탄탄하게 창극을 만들어가는 한편, 한국적인 전통을 깊이 담은 작품들도 균형을 맞추면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연습하는 과정만 지켜봐도 그 완성도가 느껴졌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래서 더 제가 할 일이 많다. 더 큰 도약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이끄는 안토니오와 샤일록 역에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스타 유태평양과 김준수가 각각 캐스팅됐다. 벨몬트의 주인이자 지혜로운 여인 포샤는 민은경이,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 바사니오는 김수인이 연기한다. 이외에도 소피아‧루치오‧토마소 등 평범한 이들의 강한 생활력을 표현하는 캐릭터들이 새롭게 등장해 작품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가운데,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한 총 48명 출연진이 함께한다. 

첫 창극 집필에 도전한 김은성 작가는 “몇 해 전부터 국립창극단의 작품을 챙겨 보는 것이 저에겐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국립창극단이라는 단체가 지금 전성기구나 할 정도로 배우들이 너무 아름답고 건강하며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서, 늘 부러운 눈으로 보고 가곤 했다”라며 “그러던 중 집필 제안을 받고 너무 좋은 나머지 덜컥 수용을 했는데, 사실 작업을 하면서 마음 고생하는 기간이 길었다. 집필 기간을 3~4개월로 예상했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소리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가사와 노랫말 만드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작창가 선생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많은 수정을 거쳐,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 힘들었지만 아주 즐거운 과정이었다”라고 전했다.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연습 현장, 샤일록 役 김준수 ⓒ국립극장

샤일록 역의 김준수는 “이전에 <리어>라는 작품에서 리어 역을 맡았기에 이번엔 노역(老役)이 조금 수월하냐고 물으신다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샤일록이 갖고 있는 연령대나 설정에 대한 부분들을 소화하기에 어렵기도 하지만, 연출님께 여쭤보기도 하고 어떻게 다른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깊다. 이 안에서 나오는 샤일록이 부르는 다양한 작창 스타일, 특히 노래를 하고 있지만 말맛을 살리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다”라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희극이지만, 샤일록은 희극 속 비극적인 인물이라 저는 사실 비극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샤일록이 가진 탐욕과 증오, 복수심이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모습을 직접 연기하며, 많은 교훈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극 속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배우로서 한 발짝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포샤 역의 민은경은 “창극 5바탕 외에도 <트로이의 여인들><메디아> 등 고전 비극을 많이 해왔다. 비극이 판소리가 갖는 한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베니스의 상인들>을 준비하면서 희극 역시 판소리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라고 전했다.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캐스팅이 기존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데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성열 연출은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저희 작품 속 샤일록은 원작의 60대 설정과는 조금 다르다.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의 번영은 3대에 걸쳐 이루었다’라고 했는데, 우리로 치면 재벌 3세다. 젊다고 할 순 없지만 아주 나이들지도 않은 중년의 샤일록을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연출은 “동물에 비유하는 게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굳이 얘기한다면 샤일록은 뱀 같은, 간교하고 영리하며 독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반면 안토니오는 바위처럼 든든하고 우직하면서도 오뚜기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느낌이었다”라며 “샤일록이 단죄를 받아 법정에서 구속될 때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세상일 때 다시 태어나겠다. 그때 가서 만세의 번영을 무궁하게 누리겠다’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를 보면 샤일록이 다시 태어나서 횡행하는 것 같다. 당시 뱉었던 저주의 말이 지금 실현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오뚜기처럼 어려움에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안토니오를 응원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은 오는 6월 8일부터 1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일시  2023.6.8(목)-6.11(일) / 목‧금 19시 30분, 토‧일 15시(4일 4회)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관람료  VIP 80,000원 R석 60,000원, S석 40,000원, A석 20,000원 
관람연령   8세 이상 관람 
소요시간   약 170분 (중간휴식 포함)
예매  국립극장 02-2280-4114 www.ntok.go.kr

*주요 제작진
극본 김은성, 연출 이성열, 작창 한승석, 
작곡 원일, 음악감독·편곡 한웅원, 안무 이경은, 
무대디자인 이태섭, 조명디자인 최보윤, 
음향디자인 지영, 의상·장신구디자인 김영진, 
소품디자인 김혜지, 분장디자인 백지영 외

*주요 출연진
안토니오
유태평양
샤일록 김준수
포샤 민은경
바사니오 김수인
네리사 조유아
그라치아노 이광복 외 국립창극단 및 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