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자]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 “‘영화보다 감동적인 오페라’를 만든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자]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 “‘영화보다 감동적인 오페라’를 만든다”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김재성 사진기자
  • 승인 2023.05.2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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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오페라 단장, 작품성으로 민간 오페라단 자생력 인정
서양 음악에 우리나라 특색 더해진 ‘우리만의 클래식’ 만들어야
공공 지원 오페라, 지원 예산 대비한 작품 평가 반드시 필요 
대한민국 오페라 역사, 민간오페라단 희생이 일군 결과…상응한  대우 있어야
콘서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5.25 저녁 7시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김재성 사진기자]1948년 1월 16일, 오페라 ‘춘희(椿姬)’가 서울 명동의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됐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선 보인 오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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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한국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 ‘춘희’

일제강점기 시절 의학도였던 이인선은 성악가를 꿈꾸며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해방 이후 의사이자 성악가로 활동하며 국제오페라사를 창단하는 등 한국 오페라 개척자 역할을 했다. 그중 최대 업적은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전막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를 올린 것이다. 그는 제작, 번역은 물론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까지 1인 3역을 소화해냈고 ‘한국 오페라의 대모’로 일컬어지는 그의 제자 김자경이 비올레타를 노래했다. 임원식 지휘, 서항석 연출이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안하고 혼란했던 시기 정부 지원은 물론이고 오페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거의 없던 시기에, 민간 오페라단은 기적적으로 이 땅에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후 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된 1962년 이전까지 6.25 전화의 폐허 속에서도 민간 오페라단은 개척자적 사명으로 대한민국 오페라를 이끌었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며 활약하고 있는 현재 국내 성악가들의 업적과 성악계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민간 오페라단’의 역할이다. 

▲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은 35살의 나이에 최연소 단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러시아 그네신 국립음악원 마스터 클래스, 러시아 쌍트 빼째르부르그 국립음악원 마스터 클래스를 수료했고, 러시아 마그니타 글린카 국립음악원 연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오사카, 인도네시아, 에스토니아, 호주 시드니, 중국, 라오스 등지에서 초청 연주를 했으며, 캄보디아에서 열린 19차 세계한인상공인대회 개막식 및 폐막식 초청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런 활발한 국제교류를 인정받아 2014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예술봉사 부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그레이스 조 단장이 이끄는 뉴아시아오페라단은 부산 지역을 거점 삼아 굵직한 무대를 연속해서 선보였으며, 지금은 제주까지 포함해 전국구로 활동하고 있다. 조 단장은 틀에 박힌 오페라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가 가미된 오페라를 지향한다. 지난 2014년 선보였던 <박쥐>는 이야기의 배경을 현대의 부산으로 각색해, 무대를 해운대의 클럽으로 만들어 오케스트라와 디제잉을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그레이스 조 단장은 “대한민국 오페라의 역사와 산업은 민간오페라단이 일군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지원은 국립과 민간, 나아가 지역별 편차가 매우 심화되어 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조 단장은 대가 없이 손해를 기꺼이 감수해가며 대한민국 오페라 산업을 일궈온 민간 오페라단 단장들의 희생이 후대에도 계속 이어질 순 없을 것이라 냉정한 진단을 내리는 동시에, 팝페라와 국악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이는 등 오페라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변화’를 통한 ‘상생’의 예술을 위해 쉴 새 없이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가르는 그레이스 조 단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오페라와 무대 그리고 예술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제1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시상식 당시 전하지 못한 수상소감과 수상 이후 근황이 궁금하다.

수상 당시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한 것 같다.(웃음) 상을 받은 후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 기운으로 좋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클래식에 관한 포럼도 진행하고 있고, 오페라 강의도 준비 중이다. 

제주가 예술의 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페라 쪽은 저변이 많이 부족하고 공연 횟수도 매우 적다. 이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문예회관 기획자 분께서 연락을 주셨다. 제주에는 오페라 만드는 사람이 아예 터를 잡고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오페라를 알리기 위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공연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에 더 흥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보다 교육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오페라 강의를 맡아서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제안을 해주셨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서 지원을 받는 오페라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동명대학교 클래식 조찬 포럼이라고 해서, 오페라뿐만 아니라 바로크부터 현대까지의 클래식 음악을 아우르는 12회 정도의 포럼이 진행 중이다. 부산 CEO, 기관장 및 기타 참석 희망자들과 함께 클래식 공연과 음악 강연을 하는 포럼 기획을 맡고 있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지만 바로 공연을 보러 가기엔 어렵게 느껴져 선뜻 객석에 앉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것이 클래식이니, 교육이나 강의가 클래식ㆍ오페라 저변 확대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강의의 비중을 높여,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바쁜 일을 제쳐두고 강의 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다. 

▲뉴아시아오페라단 ‘리골레토’ 커튼콜 장면
▲지난 2016년 선보였던 뉴아시아오페라단의 한국·이탈리아 합작 오페라 ‘리골레토’ 커튼콜 장면

지난해 8월 열렸던 오페라 ‘카르멘’ 부산ㆍ제주 갈라 콘서트를 비롯해, 이달 말 제주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콘서트 오페라를 갖는 등 정식 오페라 공연 외에도 여러 지역의 시민들이 오페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갈라 형식의 콘서트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2014년에는 오페레타 <박쥐>를 완전히 모던하게 바꾼 사생아적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오케스트라와 디제잉을 더해 공연장을 해운대 클럽으로 만들었다. 최연소 단장이다 보니, 실험적인 것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페라는 힘들다 어렵다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오페라계에서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일 중요한 건 관객이다. 당시 많은 관객들에게 ‘너무 재밌었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라는 평을 들었고, 그것만으로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마다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해 볼 예정이다. 

오페라 공연 외에도 여러 분야의 음악 공연을 기획ㆍ제작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힐링뮤지션 휴와 함께한 ‘K-팝페라 콘서트’는 모던하면서도 신선한 악기 구성과 국악 편성이 눈에 띄었다. 

오케스트라 앙상블,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신디사이저, 생황, 퍼커션, 피아노 등으로 이뤄졌다. 팝페라 콘서트에 항상 관심이 많았는데, 오페라를 어려워하는 일반인들이 좀 더 친숙하고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국악기인 생황의 독주와 전통 성악인 정가(正歌) 무대까지 함께 선보여 새로움을 더했다. ‘K-팝페라’라는 이름을 통해 한국의 위대함과 강성을 더 드러내고자 했다. 서양 음악이지만 우리나라 뮤지션이 연주하면 우리만의 새로운 장르가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새로움, 창조적인 활동과 작업을 가미해 우리만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전통을 잘 가미한 우리만의 색깔을 잘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제1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문화경영) 수상장면. (왼쪽부터)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 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
▲‘제1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문화경영) 수상장면. (왼쪽부터)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 그레이스 조 뉴아시아오페라단 단장,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

수상 당시 “문화 경영, 음악 기획의 길을 15년간 걸으며 11년째 오페라를 올리고 있다. 오페라 제작은 많은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것처럼 그간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다.

부산의 민간 오페라단체로서는 할 수 없는 무대 제작을 많이 했다.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고 싶어 이탈리아에서 의상과 무대장치 등을 직접 공수했다. 작업을 할수록 눈높이는 높아지는데, 적당히 낮춰서 타협하긴 싫었다. 맘에 차는 작품을 못 올릴 바엔 갈라 공연으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왔다. 앞서 밝힌 것처럼, 대출을 받아 오페라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 역시 단장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정성과 예술인에 대한 예우를 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마저 영위할 수 없으면 그만두는 게 맞다. 그래도 열심히 한 덕분에 이자는 밀리지 않고 내고 있다. 근데 원금은 참 안 갚아지더라.(웃음)

시상식 자리에서 소감과 함께 언급했던 것이 바로 오페라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었다. 공익사업으로 간주되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도 오페라를 여유 있는 사람들의 호화스러운 취미생활로 치부되곤 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정책ㆍ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대한민국 오페라의 역사와 산업은 민간오페라단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공연과 오페라 인구를 양산해낸 것은 예술인들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은 국립과 민간, 나아가 지역별 편차가 매우 심화되어 있다. 지원의 균형이 맞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나?’ 생각하게 될 정도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작품이라는 결과물만 보고 평가를 하게 된다. 지원을 많이 받은 오페라단에 비해 재정적 열악함으로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곳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되고 이는 단체가 새로 창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앗아가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에 나는 작품에 얼마가 지원됐는지 일반 관객에게도 오픈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을 토대로 비판의 잣대를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산이 공개되고 이에 대한 결과물을 투명하게 평가하는 환경이 구축된다면, 일부 계층만 누리는 문화예술이라는 오페라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자기 모든 것을 걸고 작품을 만드는 모든 민간 예술인들의 희생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길 바란다. 민간 예술시장이 활발해져야 유기적으로 전체적인 예술 환경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대구오페라페스티벌이 생기면서 오히려 대구오페라단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일부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환경 말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지역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제작극장이라는 명목 하에 배가 산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상생하는 지역 문화를 위해 민간의 단장들이 돌아가면서 제작감독, 총감독을 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연출자와 지휘자만 모아서 작품을 올리는 게 오페라가 아니다. 오페라는 모든 장르의 멜팅으로 이뤄지는 장르다. 그런데 지금 올라오는 공연들은 대부분 연출자들이 오퍼레이트 하고 있지만 연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오페라단의 단장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중 자신의 돈을 써가면서 하나의 장르를 일으킨 이들은 달리 평가되어야 하지 않겠나. 과거 우리나라가 오페라 불모지인 시절부터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힘써온 선배 단장님들이 더 많이 회자되고, 상도 받으며 그 공이 치하돼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면 후배, 제자, 나아가 우리 후손 중 누구도 내 모든 것을 걸고 예술 활동에 전념하지 않게 될 것이다. 

▲ 뉴아시아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 장면

처음 오페라를 올렸을 때를 기억하는지? 어떤 작품이었나?

2013년 선보였던 <라 트라비아타>였다. 객석점유율 96~97%라는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아봤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출산 직전까지 모든 연습에 참여하며 열정을 불태웠다. 당시엔 무조건 그렇게 해야만 공연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공연이 올라간 건 조리원 4일 차였다. 의사 및 조리원 원장님의 만류를 뒤로하고 이틀 연속 공연장에 나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회복 중이라 아직 불편하던 몸을 조금이라도 숨기기 위해 한복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나중에 전해 듣기로 어떤 분들은 내가 나이 지긋한 할머니인줄 알았다고 한다. 걸음도 느릿하고 얼굴도 말이 아니었을 테니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웃음) 우여곡절 끝에 올린 작품인 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이 공연이 유독 가슴 깊이 남아있는 또 다른 이유는 관객들이 전한 진심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었던 관객으로부터 사과 한 상자와 향수, 소품 등 선물과 함께 ‘오페라가 영화보다 감동적이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됐다. 멋진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짧지만 강렬한 이 피드백이 지금까지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소프라노로 활동하다가 오페라 기획ㆍ제작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는지?

소프라노로서 공연이나 행사 무대에 서면서, 기획이나 진행 면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내 눈에 보였다. 작품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자문하고 계속 입을 대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주변에서 기획을 해보라는 제의를 많이 받게 됐다. 

그렇게 소프라노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기획을 병행하던 중, 경영상황이 악화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오페라단을 맡아서 해보겠냐는 요청을 받았다. 어떻게 나에게 연락이 왔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 한 기회였고, 나이었기에 고민이 되긴 했지만 ‘운명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새로운 길로 나를 이끌 수 있다’는 그간의 경험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됐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름도 ‘뉴아시아오페라단’으로 새롭게 붙였다. 뛰어난 실력의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위상과 능력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다. 이름대로 간다고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며 활동하고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다면?

작품이 올라올 ‘때’를 생각하는 편이다. 올해처럼 베르디 210주년 같은 기념해야 할 이벤트를 뜻하기도 하지만, 올리고 싶은 작품을 제대로 표현해 줄 수 있는 가수와 함께할 수 있는 타이밍을 뜻하기도 한다. <카르멘>은 이전부터 참 하고 싶던 작품이었는데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집시를 정확하게 구현해줄 가수를 찾지 못 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완화될 무렵인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 출신의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타티아나 비친스카야(Tatyna Vitsinskaya)와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관객들에게도 선보이게 됐다. 더불어, 작품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필요한 화두를 던질 수 있을 것인지도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냥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통해 창작자와 공연자 그리고 관객이 함께 소통하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그레이스 조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그레이스 조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소프라노 출신 오페라 제작자 그레이스 조의 장점이자 강점은 무엇인가?

성악가로서의 경험이 있으니 공연을 기획할 때나 함께할 가수들을 캐스팅 할 때, 연출적인 부분과 연주자의 입장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미 많은 무대를 통해 검증된 분들 외에 새로운 선생님들을 발굴해내는 과정은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다. 그 캐릭터를 가지고 전국적으로 활동하시는 걸 보면 뿌듯함도 느낀다. 더불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좋은 건, 무대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경험이라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오페라 한 장르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난 대학 때부터 참 많은 일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틀에 메이지 않고 다각도로 풀어낼 수 있는 눈을 키워가게 됐다. 오히려 지금은 눈을 들어 주변도 둘러보게 됐지만, 다소 무모했던 지난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금전적인 상황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빚을 지더라도 작품을 끌고 왔던 기간들은, 여러 역경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을 키워줬다.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나. 이와 더불어 어려운 점은?

하늘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닐까.(웃음) 그리고 이 모든 건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건강관리를 잘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제주와 부산의 자연을 품으며 1~2주에 한 번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반반씩 생활하고 있는데, 오고가는 길만큼 좀 더 너른 마음과 시야로 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다. 예술적인 부분에서는,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색깔이 있는데 이를 직접 느끼고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며 다양한 시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 뉴아시아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 장면

 

올해 공연 계획이 궁금하다.

가장 가까운 시일 내 예정되어 있는 건 오는 25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베르디 탄생 210주년 기념 「라 트리비아타」콘서트 오페라 ‘오월동백, 사랑으로 다시 피다’ 공연이다. 이어 8월 초에는 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 조수임 라틴콰르텟, 가수 임정희 등과 함께 ‘제주, 재즈와 재주하다’라는 타이틀로 재즈 콘서트를 갖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즈라는 장르를, 많은 도민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기획하게 된 공연이다. 단장이 노래를 좀 불렀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계속 있어서, 8월 공연에서는 직접 한 곡 부르게 될 것 같다. 9월 1일과 2일에는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막달레나> 한국 초연도 선보일 예정이다. 더불어,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 탤런트 중 한 명과 음악극 형식의 팝페라 콘서트도 기획 중이다. 

여러 공연을 기획하며 오페라 가수로서는 대리 만족을 워낙 많이 느끼고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오페라보다 재즈 쪽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보려 한다.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켜 음악 세계를 확장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재즈 음반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만드는 저도, 참여하는 아티스트들도, 관람하는 관객들도 즐기며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 관객의 입장에서 어렵다고 느껴지는 오페라를 잘 요리해서 드시기 좋게, 일상을 벗어나 예술을 접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작품은 내 인생의 부분들이기 때문에 행복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자는 말을 자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만드는 사람이 그리고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무대 위에서 절대 그런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들 역시 당연히 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의 다짐을 잊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무대를 만들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