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구겐하임미술관 공동기획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한국 근대화ㆍ산업화 시절의 ‘MZ’를 마주하다”
[현장리뷰] MMCA-구겐하임미술관 공동기획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한국 근대화ㆍ산업화 시절의 ‘MZ’를 마주하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5.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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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서울관, 오는 7월 16일까지
서울 전시 이후, 뉴욕ㆍLA 전시 개최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주요 작가 참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1960-70년대는 전환의 시기였다. 국제 사회는 68혁명, 반전 평화운동, 페미니즘 등으로 인식의 전환기를 맞았으며, 한국은 6.25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한 압축적 근대화와 산업화의 급속한 사회 변화를 맞이했다. 이 시기 한국의 청년작가들은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며 그룹 또는 개인으로 ‘실험미술’의 이름으로 전위적인 예술활동을 펼쳤다.

▲정강자 <키스미>(1967) ⓒ서울문화투데이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근대화, 산업화의 국가 재건 시대에 청년작가 중심의 전위적 실험미술을 다룬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을 개최한다. 서울관에서 오는 26일 개막해 7월 16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이하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 및 주최한다. 2018년부터 시작된 양 기관의 국제적 협력과 공동 연구가 실현된 결과물이다. 특히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 작가 및 작품, 자료를 국내외에 소개하는데 의의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학예연구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안휘경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는 작가 인터뷰, 작품 실사 및 학자들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이번 전시를 구현했다.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현재도 해외 유수의 미술관이 한국 실험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소장하려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한국 실험미술 주요작가 29명의 대표작 약 95점과 자료 30여 점을 공개한다. 국현 소장품 22점,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 4점, MOMA 소장품 1점이 포함돼 있다.

▲둘째, ‘도심 속, 1/24초의 의미’ 섹션에서 취재진이 김구림 <1/24초의 의미>를 감상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대전환기 시대 속, ‘한국 실험미술’ 향한 관심

전시 공동기획을 맡고, 25일 열린 언론공개회 전시투어를 진행한 강 학예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왜 해외에서 이 시기 한국 실험미술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강 학예관은 “먼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질곡의 역사가 중요한 지점으로 여겨진다. 일본식민지를 벗어나 급속도로 산업화, 근대화를 맞았고 이 가운데서 벌어진 전위적인 예술 실험을 향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또한, 1960-70년대 세계에 불어 닥친 대전환기가 한국에서는 또 다른 양상으로 드러난 것에서 대한 호기심도 포함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당대 한국미술의 면모를 새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의 일원으로 그 실천의 영역을 확장했던 한국의 실험미술 역사를 조망한다. 세계의 전환을 인식하는 동시에, 한국에 급속도로 불어 닥친 변화 속에서 예술의 의미를 지속해서 묻고 있는 그 시대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한강변의 타살>, 1968, 1968년 10월 17일 제2한강교(현재의 양화대교) 아래 강변에서 열린 퍼포먼스의 기록, 사진: 황양자 제공 (사진=MMCA제공)

한국의 1960-70년대는 경제 개발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ㆍ사회적 억압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일상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예술의 의미를 모색해 온 청년작가들에게 이는 모순된 토대로 작용했다. 청년들은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주장,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며 작품을 선보였다. 기존의 회화,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매체들을 ‘실험미술’의 이름으로 포괄하며, 역동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했다.

강 학예관은 이 시기 ‘한국 실험미술’이 정치적 아방가르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현됐다고 명확히 짚었다. 민중미술 같은 직접적인 리얼리즘과는 다른 방향을 지니고 있으며, 은폐의 언어를 사용해 작품을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당시 1960-70년대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목소리를 잃지 않고, 예술활동을 펼쳐왔던 청년 작가진의 창작욕을 많이 드러내는 데에도 힘을 쏟는다. 전시장에서는 좀 더 직관적으로 그 시기의 힘과 사상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작들이 배치됐다. 강 학예관은 이번 전시가 한국 미술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동시에, 영미권에서 새로운 담론을 촉발시키고 ‘한국 실험미술’의 확장적 고찰을 시작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셋째, ‘전위의 깃발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섹션, 이건용 <신체항> 2023년 재현 ⓒ서울문화투데이

한국 실험미술 주요작가, 그룹 중심으로

전시는 총 6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첫째,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 ▲둘째, ‘도심 속, 1/24초의 의미’ ▲셋째, ‘전위의 깃발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넷째 ‘“거꾸로” 전통’▲다섯째, ‘‘나’와 논리의 세계: ST’ ▲여섯째,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다. 전시는 당시 실험미술의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과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ST(Space&Time)학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특히, 마지막 섹션인 “여섯째,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의 경우, 암울한 시기 청년 작가들에게 돌파구가 되고, 한국 실험미술의 국제적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던 제8회 《파리비엔날레》(1973), 제13회 《상파울로비엔날레》(1975) 등을 다룬다.

첫째,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전위적 실험미술의 양상들이 소개된다.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 등의 신진 예술인그룹의 활동을 선보인다. 또한, 이들이 연합해 개최한 《청년작가연립전》(1967)을 통해 국전(國展)과 기성 미술계를 비판하고 ‘반(反) 미술’과 ‘탈-매체’를 주창한 청년예술가들의 주요 작품과 해프닝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이 섹션에선 첫 페미니즘적 작품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등의 <투명풍선과 누드> (1968), 정강자의 <키스미>(1967) 등이 공개된다. <키스미>는 위아래 치아가 다 드러나 보이는 입술을 거대한 석고로 만들고 밝게 채색한 대형 입체 작품이다. 치아 위에는 선글라스를 쓴 여성의 머리, 가정용 고무장갑, 유리 플라스크가 설치돼 있다. 정강자는 과장된 신체 부위를 통해 남성의 성적 시선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주체로서의 성적 욕망’에 대한 강령을 선포하려고 시도한다. 당시 <투명풍선과 누드> 작품을 본 한 여대생은 ‘여성의 몸이 저렇게 아름다운 지 처음 느꼈다’라는 감상을 남겼다고 한다. 그 시절 정강자의 시도가 사회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었음으로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등의 <투명풍선과 누드> (1968) ⓒ서울문화투데이

둘째, ‘도심 속, 1/24초의 의미’에서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시행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조명한다. 실험미술의 선두에서 활동했던 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가 상영된다. 이 작품은 제작 당시 서울의 에너지와 역동감 넘치는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김구림이 기획과 감독, 편집을 맡고 제작한 영화로, 초당 24개의 프레임을 개별적으로 연결해 제작한 것에서 작품의 제목이 유래했다.

강 학예관은 “<1/24초의 의미>에서는 60년대 후반 급격한 현대화의 순간을 겪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이미지 콜라쥬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라며 “이미지의 교차 속에서 그 시대의 불안감, 긴장감 등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고 작가님들이 작품 속에 등장해 하품을 하거나, 어슬렁 어슬렁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주목해볼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도록에서 안휘경 큐레이터 글에 따르면 “(하품을 하거나,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인물은 도시 생활에 대한 무관심과 권태감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현대인의 기계화된 삶에서 방향 감각을 잃은’ 도시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찬승(인물)의 존재는 현대인의 과도한 자극과 피로에 굴복하지 못하도록 저항하고 간섭한다”라고 설명됐다.

▲김구림 <구겐하임을 위한 현상에서 흔적으로>(2021) ⓒ서울문화투데이

한편, 이번 전시에선 국립현대미술관을 감쌌던 <현상에서 흔적으로>(1969)를 재해석해 새롭게 제작한 드로잉 <구겐하임을 위한 현상에서 흔적으로>(2021)가 최초 공개된다. 강 학예관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김구림 선생님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다시 재연하고자 제안했는데, 전시를 준비하면서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뉴욕시와의 협의 문제로 실현할 수는 없게 됐다. 제안은 이렇게 드로잉으로만 남게 됐다”라며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땅을 파서 관을 묻고 거기서 이어진 광목천으로 미술관을 휘감는 행위인데, 이는 기성세대 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미술관을 증오와 미움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다 끌어안고, 다시 탄생하는 의미를 지닌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셋째, ‘전위의 깃발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섹션에선 1970년대 초 실험미술 그룹과 개인들의 주요 활동을 소개하고, 넷째 ‘“거꾸로” 전통’에선 한국의 전위미술과 전통의 특수한 관계를 다룬다. 통상 전위미술이 전통의 부정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전통예술의 재발견을 추구한다. 이 지점에 대해 학자들은 일본식민지배의 역사와 정치 억압의 역사의 특수성이 작용됐을 것이라고 본다. 전통의 재발견을 통한 전위적 실험미술의 행보는 한국미술의 탈서구화 및 전통과 현대의 긍정적 계승으로 이어졌다. 아부다비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인 이승택의 <무제(새싹)>(1963/2018)와 <무제(낫)>(1969)등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다섯째, ‘‘나’와 논리의 세계: ST’ 섹션에선 작가 스스로 작품에 대한 논리와 이론의 토대를 정립하며, 한국미술에 개념적 설치미술과 이벤트를 맥락화한 전위미술단체‘ST(Space&Time)’학회(1971-1981)의 활동상을 소개한다. ST그룹은 유신정권 이후 청년들이 모일 수 없는 상황 속 개별 활동을 주로 선보였다. 이들은 예술개념의 문제를 분석·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매체의 본질을 언어에서 찾고자 했으며 동서양 이론을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사진, 사물, 행위, 이벤트 등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으로 성능경, 이건용 작품이 공개된다. 성능경 작품 <신문 1974.6.1. 이후>(1974)는 박정희 정권 언론 검열에 대해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작품으로 예술과 사회의 연관 관계를 은유한다. 그는 《제3회 ST전》당시 한달 동안 매일 아침 전시장에 나와 텍스트의 물성을 잘라 파란색 아크릴 박스에 넣고, 모든 것이 잘려나간 신문은 전시됐다가 하루가 지나면 투명 아크릴 박스로 옮겼다.

성능경 작가는 당시 매일 아침 빠르게 이 작업을 하고 도망치듯 전시장을 떠났는데, 작가는 ‘무서워서’ 그랬다고 말한다. 강 학예관은 “당시 성 작가의 행위에 대해 학자들은 ‘왜소한 자아주체’라고 명명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당시 사회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섯째, ‘‘나’와 논리의 세계: ST’ 섹션, 성능경 <신문 1974.6.1. 이후>(1974) 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전위적 청년의 시선, 한국 미술사의 ‘획’으로

마지막 여섯 번째 섹션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에서는 당시 청년작가들의 돌파구가 되었던 해외 비엔날레와 AG의《서울비엔날레》(1974),《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를 상호 교차하여 한국 실험미술의 국제적 면모를 선보이는 데에 주력한다. 심문섭의 <현전>(1974-1975), 박현기의 <무제(TV돌탑)>(1982), 이강소의 <무제 75031>(1975) 등 당시 작품들이 공개된다.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 작품으로는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은 아니지만, 당시 청년들의 지향을 담고 있는 듯한 성능경의 <세계전도(世界顚倒)>(1974)가 전시된다. 이 작품은 ‘최신 세계 행정 대지도’라는 거대한 지도를 모두 오려내 300조각으로 만들고, 그것을 조합해 새롭게 재조립한 작품이다. 어떤 질서 안에 속한 지도를 당시 청년의 언어로 다시 발화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던 한 때의 가장 전위적이었던 청년들이었고, 지금은 한국 미술계의 굵직한 원로작가로 자리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여섯 번째 섹션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 중, 성능경 <세계전도(世界顚倒)>(1974) ⓒ서울문화투데이

지금도 여전히 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아주 쉽게 들려온다. ‘90년대 생’, ‘MZ세대’, ‘알파세대’ 등, 업무시간에 에어팟을 끼고 일하거나 상사가 커피를 사준다고 하면 비싼 커피를 시킨다는 그런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50여 년이 흐르고 나면, 2020년대의 알 수 없는 ‘MZ세대’도 그 시절 가장 전위적인 세대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굴곡의 한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동시에, 한때는 전위로 세상을 마주했던 이들의 열기를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이제는 또 다시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그 시절의 전위와 역동을 한 획의 한국 미술사로 제대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는 서울 전시에 이어 9월 1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 11일부터는 LA 해머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개최된다. 다양한 연구논문과 당시 주요 비평글, 선언문 등을 총망라한 국·영문 전시도록도 발간된다. 국문판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영문판은 구겐하임미술관이 각각 편집을 맡았다.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한국의 실험미술을 서울에 이어 미국 뉴욕과 LA에서 잇달아 선보인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