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8
옛날이나 지금이나
봄이 오는 길목에 장터에 가면 씨앗 봉지를 펼쳐놓고
열심히 설명하는 씨앗 장수를 만난다.
천구백구십년 전북순창장에서 만난 씨앗 장수 할매는 하얀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씨앗을 담아 팔면서 어떤 씨가 어느 봉지에 담겨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할머니 머리가 좋으시네요” 인사를 하면
장사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며, 씨앗 봉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금매 아욱씨 100원어치만 주랑께 왜 안판다고 그러요.
100원은 돈이 아닌감네이!”
백원어치는 안판다는 할매와 백원어치만 팔라는 할매가
한참을 실갱이 하며 찾아낸 합의점이 500원어치다.
신문지에 500원어치 아욱씨앗을 싸주자
씨앗을 받아든 안씨할매가 구시렁구시렁 볼멘소리를 하지만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려 돈을 셈하고 있다.
이들을 한참 지켜보면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인생을 순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숭고해 보인다.
한치 양보도 없을만큼 팽팽하더니 500원치 아욱씨를 통크게 산 할매가
보자기 속에 씨앗을 넣더니 머리에 이고, 총총히 사라진다.
이렇듯 장터에 가면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의 삶을 만난다.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 전에 정(情)을 나누는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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