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雪(설)날이라고?
설날이 雪(설)날이라고?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2.1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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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최대명절인 설, 똑바로 알고 제대로 즐겨보자

“2월 14일은 무슨 날인가?” 라는 질문에 ‘발렌타인데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다. 설날이란 조상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요새는 단순히 며칠간의 휴가쯤으로 치부해버린다. 어른들은 해외여행 예약에 분주하고, 아이들은 PC게임방에서 설날 이벤트를 학수고대한다. 심지어 부모님 계좌로 용돈만 보내드리고 낮잠을 즐기기에 바쁘다.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 조상과 함께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이 때 동안만이라도 설날특집 프로그램 채널을 돌리고 있는 리모콘에서 손을 떼고 가족의 따스한 손을 잡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은 대개 세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설날을 ‘낯설다’ 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 대한 낯설음’ 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설날은 ‘선날’, 즉 개시라는 뜻의 ‘선다’ 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 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 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원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베트남의 설날인 ‘뗏(Tet)’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베트남인들의 연중 최대 명절 뗏(Tet)은 뗏윙당(Tet Nguyen dan; 원단절, 우리나라의 음력설)의 약자로 그 의미는 ‘새해 첫날 아침’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 ‘선날’과 일맥상통하다.

또한 그들은  이날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섦다’ 의 어원과 비슷하다. 다만 설 첫날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한 해의 운세가 뒤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점이 상이하다.

설날의 유래

<삼국지>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 와 조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중국도 음력 1월 1일인 춘절(春節)은 최고의 명절이다. 다만 정부 훈령으로 최소 7일간은 쉰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게다가 법 규정상 고향으로의 이동 시간도 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어 고향이 오지인 사람들은 한 달 이상 휴가를 갖는 경우도 있으니 얼마나 부러운 지 모른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외상 거래 및 미지급임금도 춘절 전에 모두 지급해야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만일 춘절 전에 해결하지 못하면 불량 기업으로 낙인이 찍혀 신용관계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겐 최고의 휴식기간이지만, 기업주 입장에선 매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셈이다.

▲대만, 중국 등지에서 쓰이는 ‘홍빠오’. 사진은 기축년 당시 설날때 쓰인 소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설날의 풍속

우리나라 설날 세시풍속은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복조리걸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며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날리기 등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대표적인 설날놀이 역시 연날리기(타코아게, たこ上げ)이다.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도 쉽게 사먹을 수 있는 ‘타코야끼(たこやき)’ 와 비슷한 발음에서 알 수 있듯 ‘타코(たこ)’는 우리말로 '문어', '아게(上げ)'는 ‘올리다’는 뜻으로 문어모양의 연을 하늘 높이 띄운다는 말이다.

연날리기가 처음으로 보급된 곳은 칸사이지방으로 이 지방에서는 ‘타코’라는 말 대신 '이카'(イカ, 오징어)라고 불렀으나, 점차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타코’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 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 곧 지방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그러나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의 설날 아침에는 오히려 차례가 없다. 문화대혁명 이후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습관이 아예 없어졌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고개를 조아리는 절 또한 노예시대나 가능한 비굴한 행위로 인식돼 정부수립 이후 없어졌다.

다만 고개만 꾸벅하면서 “신녠 하오(新年好, 새해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며느리도 시아버지를 만나면 고개를 꾸벅하며 절대신 악수를 한다하니 우리에겐 어색할 뿐이다.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 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뱃돈을 줄 때 대부분 은행 봉투나 흰 봉투에 넣어 준다. 하지만 중국, 대만, 일본에서 이렇게 준다면 주고도 욕먹을 일이다. 특히 화교권에서 흰 봉투는 죽은 사람에게만 쓰는 것이니 더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중국이나 대만은 ‘홍빠오(紅包, 빨간 봉투)’에 넣어서 세뱃돈을 주는데, 이는 ‘붉은색은 잡귀를 쫓고 부귀를 부른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한족문화의 영향으로 받는 사람을 축복하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일본의 타코아게(たこ上げ). 우리나라의 연과 전체적인 모습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꼭 설이 아니더라도 생일, 가정방문, 결혼, 조의, 입학, 졸업 등 일상생활에서 ‘홍빠오’ 문화를 흔하게 접할 수 있으며,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그 집의 가장 어른이 ‘홍빠오’를 주는 것이 예의이다. 만약 중국 현지인들과 친해지고 싶다면 ‘홍빠오’ 를 항상 준비해 두었다가 사용한다면 효과만점이다.

그나저나 경제 성장으로 ‘소황제(小皇帝, 1980년대에 태어난 독생자층)’ 가 주류소비계층으로 떠오른 요즘 중국 아이들은 푼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하니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 씁쓸해진다.

일본의 경우엔 새해 첫 날 세뱃돈을 그냥 건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새해를 상징하는 연, 매화 등이 그려져 있는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준다. 역시나 섬나라의 특성상 ‘와(和)’를 중시하며 남들을 생각하며 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라다운 생각이다. 하지만 그림을 못 그리면 오히려 더 민폐가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세배에 관해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오른손이 왼손위에 놓아서 큰절을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헷갈리는 것으로 꼭 잊지 말도록 하자.

설날을 맞아 새 옷을 입는 것은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다 똑같다. 단지, 태국의 설날인 ‘쏭끄란(Songkran)’의 경우엔 새 옷을 입으면 오히려 화를 부른다.

태국력으로 4월 초순부터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쏭끄란’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물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즉, 석가탄신일에 불상을 목욕시키는 것과 같이 물을 뿌리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 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물을 뿌리는 행사를 하는 것이다.

이날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날아든 물세례로 흠뻑 젖을 뿐 아니라, 픽업 트럭 뒤에 물을 가득 실은 큰 드럼통을 가지고 다니다가 길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양동이 한가득 물을 퍼 붓는다. 또한 물에 갠 백묵이나 진흙 같은 것을 묻히기도 하기 때문에 새 옷을 입었다간 하루 사이에 걸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설날 요리인 '오세치 요리'

설날의 음식

설날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바로 떡국이다. 설날에 흰 떡을 끓여 먹는 것은 고대의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양의 둥근 것을 상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은 떡국에 지금은 쇠고기나 닭고기 등이 쓰이지만 옛날에는 꿩 고기로 많이 했다고 전해지니, 당시엔 꿩이 흔했을지 몰라도 지금으로썬 상당히 최고급인 셈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경우, 설날의 대표적 요리로 '오세치 요리' 를 들 수 있다. 원래 '오세치'라는 말은 '오세치쿠(御節供)'의 준말로 오절구(五節句) (음력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에 신에게 공양하던 음식을 뜻한다.

‘오세치 요리’ 는 우엉, 연근, 새우, 다시마, 검은 콩, 무 따위를 달짝지근하게 조리한 것으로 국물 없이 건더기로만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한꺼번에 음식들을 전부 장만해 놓고 설 연휴에는 여자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명절만 맞이하고 나면 시댁식구들과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명절증후군’에 걸리는 우리나라 주부들에게는 부러운 대목이다. 오죽하면 명절이 지나면 이혼신청이 갑자기 증가한다는 뉴스까지 심심치 않게 들리겠는가.

중국의 새해 음식인 ‘딤섬(만두)’의 경우 만두 속을 넣고 만두피를 서로 맞붙이는 것은 입을 막는다는 의미로서 모든 나쁜 일을 미리 없앤다는 뜻을 품고 있다.

베트남의 ‘반쯩 (banh chung)’ 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명절 떡의 경우, 푸른 빛깔의 정사각형 모양은 땅을 상징하며, 이는 힘써 토지를 일구어 얻은 수확물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설날 음식들. 이번 설날만큼은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천천히 오래오래 되새김질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