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대구의 중요성Ⅱ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대구의 중요성Ⅱ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3.05.31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 호에 이어서>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1974.10.13.-19)에는 70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는데, 50주년을 앞둔 현재의 화단 상황으로 볼 때 이들 중 많은 수가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전시는 자칫하면 한국미술협회가 기획한 1973년의 [서울현대미술제]에 선두 자리를 빼앗길뻔 하였으나, 이 전시가 신문에 보도까지 됐지만 불발되는 바람에 현대미술사상 첫 ‘현대미술제’로 등재되는 행운을 잡았다.

[대구현대미술제]는 최초의 전국단위 현대미술제였다. 이 무렵이면 1972년에 창설된 [앙데팡당]전을 비롯하여 1975년의 [서울현대미술제]와 [에꼴드서울] 등 서울 주도의 현대미술제가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그 사이에 해당하는 1974년 대구미술인들에 의해 자생적이며 자발적인 [대구현대미술제]가 창설되었다. 김기동, 김영진, 김재운, 김종호, 이강소,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이 발기하여 전국적인 작가 선정이 이루어졌다. 참여작가 수가 약 70여 명에 달하며 <ST>와 <신체제> 등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미 역사화된 그룹이 초대되었다.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원로, 중진작가들로 간주되는 중심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름은 생략하거니와, 대구 현대미술제는 한국 현대미술이 서울 주도에서 지역으로 옮겨지는데 견인차적 역할을 했다.

1974년에서 79년에 이르는 [대구현대미술제]는 총 5회에 이르는 동안 307명의 작가가 초대됐는데, 그 명단을 살펴보면 가위(可謂) 한국 현대미술을 대구로 옮겨다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위세가 막강했다. 물론 이때는 [현실과 발언](1979 창립)으로 대변되는 민중미술이 등장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개념미술을 비롯하여 입체, 설치, 비디오, 이벤트 등 모더니즘위주의 다양한 미술사조와 경향이 화단을 독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구현대미술제] 전시기간 동안 강정(1977, 79)과 냉천(1978) 등 야외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벤트(Event)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중앙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해서 이 행사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언론이 있다.’는 속설이 입증하듯,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면서 성가를 높이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서 대구와 강정, 인근지역
한국실험미술과 전위미술 산실이며 요람

 

Ⅲ.

전국에 광역시가 여러 곳 있지만 대구만큼 현대미술에 대한 역사가 깊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은 드물다. 대구는 경북대를 비롯하여 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대구카톨릭대, 대구예술대 등등 미술학과를 두고 있는 대학이 많고, 섬유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콜렉터 층이 형성돼 화랑업이 번성했다. 현재 대구의 화랑은 약 70여 개에 달하며 대구화랑협회(회장: 전병화, 소속화랑 42개사) 가 결성돼 있을 정도로 세력이 막강하다. 미술대학이 이렇게 많다보니 여기서 배출된 미술인들이 많아 대구에는 연일 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이상은 대구미술 인프라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지표들이다. 거듭 이야기하거니와 이처럼 우수한 대구미술 인프라는 수성구의 입장에서 볼 때 관내에 있는 대구미술관과 함께 수성아트피아의 존재를 재인식하게 만든다. 이번에 1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새롭게 단장한 수성아트피아의 재개관은 정말 뜻이 깊은 경사다. 무릇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롭게 단장한 새 건물에서 첫 기획전을 여는 일이야말로 수성아트피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Ⅳ.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구와 강정을 비롯한 인근 지역이 지닌 중요한 의미는 한국 실험미술 내지는 전위미술의 산실이며 요람이란 사실에 있다. 이 점은 [대구현대미술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려니와, 문제는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느냐 하는 데 있다. 이 부분이 본 세미나 발제의 결론이자 핵심이다. 토론을 통해 풍성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한가지 첨언(添言)하고 싶은 것은 [강정현대미술제]에 관한 것이다. 1977년과 7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대구현대미술제]에서의 강정 이벤트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최첨단의 매우 획기적인 행위예술이었다. 당시 참여작가 중 한 사람인 이강소의 다음과 같은 르포 기사는 매우 현장감이 느껴져 여기에 인용한다.

<다음 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