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빛을 발하던 ‘잉카’, 21세기 한국을 만나다”
“찬란한 빛을 발하던 ‘잉카’, 21세기 한국을 만나다”
  • 편보경 기자
  • 승인 2010.02.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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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태양의 아들 잉카’전, 잉카 문명의 근간 이룬 안데스 고대문명 함께 전시

영화 '아바타'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 때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잉카인들의 문명을 전시하고 있어 국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3월 28일 까지 세계문명전 ‘태양의 아들 잉카’전을 통해 500여 년 전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 대륙의 잉카인들의 신앙과 우주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잉카 제국뿐만 아니라 잉카 문명의 근간을 이룬 안데스 고대문명까지 전시하고 있어 볼거리를 더했다. 페루국립고고인류역사박물관을 비롯한 페루 각지의 9개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안데스 고대문명과 잉카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 351점을 선정, 전시 중인데 특히 한번 반출되면 다른 곳으로 60년 이상 이동시키는 것이 금지돼 있는 웅크리고 있는 미라와 1700여 년 전 이 지역에서 맹위를 떨쳤던 모체왕의 찬란한 황금 유물인 시판왕의 피라미드 유물을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잉카문명은 1532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황금이 약탈되고 고유의 문화는 기독교로 인해 사라져 버렸지만 천년 동안 이어졌던 안데스 고대 문명은 20세기 새로이 발굴되어 그 찬란한 문화를 우리 앞에 자랑한다.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에 온 것 같은 신비한, 또 아기자기하고 귀엽기마저 한 유물들은 호기심을 마음껏 자극한다. 정수리가 뾰족하면 귀족이었다는 잉카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은 금상들과 그들이 신성시 했던 라마 동물상들은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다. 지금까지 큰 크기의 유물들도 남아 있다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펠리노 신상

 잉카 제국은 스페인 침략 이전 즉 1430년부터 1532년까지 10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멸망했으며 스페인 침략 당시 잉카의 황금을 모두 녹여 금궤로 만들어 가져갔기 때문에 페루에서 조차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전시에서는 잉카가 태동하기 이전 안데스 문명이 어떻게 싹트게 됐는지부터 차근차근 보여주며 그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잉카인들에게는 그들의 수도가 ‘쿠스코’ 즉 우주의 배꼽이었다. 우주는 잉카가 지배하는 4개의 제국과 풍성한 음식을 제공하는 지하의 땅, 그리고 태양과 달과 별이 있는 하늘이었다. 이는 잉카이전 차빈, 모체, 나스카, 와리 등의 문화를 꽃피웠던 안데스 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사상들이었다. 왕을 칭하는 ‘잉카’는 태양의 아들로 신성시되었고 황금은 밤에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잉카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사상은 현실의 동물들로 상징되었는데 하늘은 독수리, 콘도르와 같은 새로, 땅은 재규어와 퓨마와 같은 펠리노로, 지하는 뱀과 거미로 각각 상징화 되었다. 이러한 동물들은 신격화 되었고 인간의 모습과 합쳐져 보다 초월적인 신의 모습으로 표현 됐다.

 전시되고 있는 그들이 남긴 도자기 등의 유물에는 그들이 신성시했던 동물들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다. 또 주의 깊게 볼 유물로 미라를 싸던 직물이 전시돼 있는데, 낙타털로 만들어 졌으며 그들이 생각 했던 신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이 직물은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들 중 가장 비싼 유물이기도 하다.

 차빈 문화의 영향으로 시작된 안데스 고대문명은 기원전 100여년을 전후해 국가의 단계로 발전했다. 페루 북부의 모체, 중부의 리마, 남부의 나스카, 그리고 티티카카 호수 인근의 고원에서는 티아우아나코 문화가 발전했다.
 
 이 때에는 사회계층의 분화, 대규모 피라미드의 축조, 관계수로의 축조, 농업량의 증가, 야금술의 발달, 희생제의의 수행 등이 이뤄졌다. 이와 관련한 유물들로 흥미로운 것들은 머리카락을 뜯으며 싸우는 두 인물의 토기나 남근의 모양을 제작한 에로틱한 토기, 포로들의 모습을 재현한 토기들이 있다.

 특히 홍수가 나거나 국가에 좋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노한 신들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의례를 행했는데, 그 때 사용했던 투미와 피를 담던 잔이 으스스하기마저 하다. 전쟁을 일으켜 사로잡은 포로의 목을 투미로 자르고 그 피를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희생의례가 치러졌던 태양의 신전에서 의례용 토기들에도 그들이 숭상했던 동물들이 새겨져있다. 벽면을 장식했던 조각품들을 보면 그들이 양각과 음각 모두를 구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미라

 특히 언덕 같은 형상을 띠고 있어 도굴을 당하지 않았던 모체왕의 피라미드는 그 규모에서도 놀랍지만 현재 체계적인 발굴을 통해서 많은 유물들이 발굴 돼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를 알게 해준다. 이 피라미드 속에서는 모두 10개의 무덤이 발굴 됐는데 시판에서 발견이 됐기 때문에 지역 이름을 따 시판왕이라고 지칭하고 또 다른 한 무덤에서 발견된 디엔에이가 똑같은 왕은 ‘늙은 왕’의 무덤이라고 이름 지었다.

 발굴된 유물 중에는 왕의 모습을 만든 황금 판이 있는데 은과 금을 섞어서 만들어 그들이 음과 양의 조화를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특히 그 판 속의 인물상은 목걸이와 허리띠를 착용한 모습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푸른  빛을 띠는 터키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치아의 경우 조개로 아로 새겨 넣을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막이라 조개가 굉장히 귀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왕의 위엄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타내려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 밖에 현재 착용해도 너무나 아름다울 금 장신구들은 그들의 문명이 현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지상위의 불가사의한 회화로 유명한 나츠카 문명은 모체 문화와 비교 했을 때 화려한 색을 사용한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2가지 색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이 전시코너에서는 형형색색을 띤 유물들을 접할 수 있다. 또 나츠카 평원의 미스테리한 그림을 모래위에 빔 프로젝트로 재현, 보여주고 있다. 

 웅크린 채로 보존된 미라는 인공 미라 한 구와 두 구의 자연 미라가 전시중이다. 인공 미라는 미라 속을 라마 털과 알파카, 치자 잎 등을 채워 넣어 만들었다. 자연적인 미라는 머리털과 눈썹 등도 고스란히 보존 돼 있어 놀라움을 더한다. 이는 건조하고 염분이 많은 안데스 산맥 지역 특성 때문에 보존이 잘 된 것이다.

 사람이 아닌 원숭이나 강아지의 미라도 있어 더욱 흥미롭다. 안데스 인들은 미라를 숭배해 선조들을 미라로 만들어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심지어 11월을 미라의 달로 정해 미라를 바깥구경도 시키고 미라끼리의 만남도 주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철, 문자, 수레바퀴가 없으면서도 불가사의 하게 대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잉카는 페루의 각 지역들을 정복, 1300년경 정치, 경제 ,언어, 및 종교적인 통일을 이룩해 탄생된 국가다. 태양신을 최고의 신으로 모시게 했으며 잉카의 언어인 케추아이어를 가르쳐 잉카 제국의 통치권에 편입시켰다.

▲금동관

 잉카가 제대로 된 부족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9번째로 잉카의 왕좌를 물려받은 파치쿠택(1438-1471)시기였다. 당시 제국은 4,000Km에 달하는 안데스 영토를 지배했으며, 인구는 600만 명에 달했다. 씨족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4개의 도시로 분할 통치 되었으나 632년 스페인 군사 180명에 의해 일 년 만에 급작스럽게 멸망했다.

 철을 발굴하지 못했던 그들은 활과 곤봉으로 힘겹게 맞서 싸웠지만 스페인의 철 무기를 대항하기는 역부족이었으며 당시 전염병까지 돌아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잉카어로 쓰여진 책이 2권 밖에 전해지지 않는데다 스페인 어로 집필된 잉카에 관한 책들도 침략 후 50년 이후에나 집필된 것이 많아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밝혀 진 것이 없는 상태다.

 잉카의 유물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의 건축 방식이다. 12각형 돌을 사용해 건축물을 지었는데 당시 어떻게 돌을 가공했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그 규모도 어마어마해 정말 외계인들이 방문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스페인 침략 후 잉카인들이 만든 제단 위에 스페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당을 지었는데 1950년 경 지진이 났을 당시 성당은 무너졌지만 제단은 고스란히 남았다는 일화에서도 그들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우수한지를 실감 할 수 있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잉카인들이 뇌수술을 집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두개골 두 구가 전시 되고 있어 그들의 띄어난 의술 또한 짐작하게 한다. 그 밖에 잉카인들이 문자 대신 사용했던 티투라는 결승 문자도 전시중인데, 한번 묶으면 1이라는 숫자를, 두 번 묶으면 2라는 숫자를 의미했으며 티투로 왕에게 수량을 보고했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잉카의 도시 마추픽추에서 발견된 유물들도 전시중이다. 현재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마추픽추는 발굴이 진행되기 전에는 이 도시가 왕족 혹은 신들이 살던 도시라고 추정되었으나 망토를 고정 시키는 핀 등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발견 되면서 마추픽추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잉카 유물 전에는 10만 명이 다녀가 10만 번째 관람객의 위한 이벤트가 진행 됐으며 20만 번째 관람객에게는 잉카를 직접 다녀올 수 있는 항공권이 지급된다.

-잉카 전을 기획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

박물관에서는 지금 세계문명 시리즈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페르시아 전과 이집트 전을 을 이미 했고 잉카 전을 하는 중인데 앞으로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국민들에게 세계 문명중 하나인 고대 문명이 보편성이 있고 다양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잉카전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유물은 어떤 것인가?

아무래도 미라다. 보통은 쭉 펴 누워 있는 미라를 본 적이 많을 텐데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미라는 쭈그리고 않아 있는 미라다.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태아가 태어날 때 모습 같기도 하다. ‘죽을 때는 인간이 태어난 때로 돌아간다’ 라는 삶의 철학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국립중앙 박물관을 뮤지엄 파크로 조성한다는 계획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곧 박물관 주변에 위치한 용산 미군 기지가 나가게 된다. 주변에 몇 개 박물관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나가려면 아직은 10년 정도가 걸리고 새로 건물을 짓는데도 시간이 걸리니 현재 인근에 위치한 용산 가족 공원과 함께 박물관 공원이 돼 보고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먼저 거듭나려고 한다. 문화 놀이터 같은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를 뮤지엄 콤플렉스의 원년의 해로 삼고 있다.

-지난해에는 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가 치러졌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나?

뮤지엄 파크 원년의 해라는 타이틀을 걸고 박물관 주변에 편안한 쉼터를 조성할 것이다.  박물관 특별전 5월에 그리스 전, 가을에는 고려 불화전, 겨울에는 실크로드 문명전 등 큰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과 문화의 세계화가 이뤄지려면 어떤 방법이 있나?

외국의 것을 가져오고 우리 것을 내보내야 한다. 우리 박물관에는 한국 유물들이 많아서 세계의 유물을 보여주는 특별전을 계속 기획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 것을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도 전시를 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오는 6~7월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쥐 박물관에서 한국 특별전을 갖는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헝가리 동구권에 가서도 전시를 할 계획이다

-평소 책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최근에 여러 책을 읽었는데 ‘넛지’ 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변화를 추구할 때 강압적으로 하기 보다는 은근하고도 자발적이게 서로 이어 나가면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의미가 있는 책이다. 

-앞으로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완 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뮤지엄 파크를 위해 여러 시설을 조성하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한데 부족한 실정이다. 또 여전히 개인이나 민중이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많이 있다. 기업들이 기부 협찬을 한다든지 해서 기증 기부가 잘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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