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가로등과 도시이미지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가로등과 도시이미지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05.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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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바르셀로나 레이알 광장은 내가 상상했던 유럽의 광장 그 자체였다. 네모반듯한 형태에 중앙에 분수가 있고 주변은 건물로 둘러싸여 비었으나 적당히 막힌..이와 유사한 광장이 바르셀로나에는 몇 개 더 있다고 하던데 관광객들에게 이 광장이 가장 인기있는 이유는 스페인의 대표건축가 가우디의 초기작품이 있어서 일 것이다.

1878년 바르셀로나 시에서 실시한 공공사업, 가로등 디자인 공모전에서 가우디는 당당히 우승을 하며 그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그의 “산책로와 광장을 위한 가로등”은 대리석 받침대에 주철로 기둥을 세우고 여기에 조명기구 6개가 연결되는 구조로 그의 제안서에는 설계도면 뿐 아니라 제작을 위한 정보 및 유지관리방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제작되고 설치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우선 그의 디자인대로 만들기 위하여 시는 예산의 3배를 들여야 해서 당초 그가 기대했던 대로 바르셀로나 시 전역에 설치하지 못하고 레이알 광장에 설치한 2개가 끝이었다. 그가 전구 대신 가스 사용을 고집하였으므로 시는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배선을 별도로 해야 했으며 매일 밤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일일이 6개의 조명기구를 점등해야 했으므로 관리주체인 시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우디는 더 이상 시와의 프로젝트는 안했다고 하는데 그 때로 돌아가 물어보면 고집덩어리 건축가에게 시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 같다.

그는 구불거리지 않는, 고급스럽게 우아하고 단순한 형태의 샨데리에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며 폴은 단순하고 견고하게 하고 장식은 제한적으로 집중해서 설치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나 현재 서 있는 실물을 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가로등의 꼭대기는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바르셀로나를 표현하기 위해 두 마리의 뱀이 휘감아 떠 받치고 있는 날개 달린 투구로 장식하였고, 폴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붉은 색의 방패로 장식하고 있다. 즉, 꼭대기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조각품같이 보여 가로등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조명을 포함하는 공공예술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에나 길이 있고 그 길을 밝히는 가로등은 이제 그 지역의 중요한 야간경관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야간경관이라는 개념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아마도 나트륨등이라고 불리는 주황색 가로등에서 흰색 광원으로 교체되면서가 아닐까한다. 주황색 빛 아래에서는 간과되었던 도시의 모습이 비로소 하나하나 드러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이미 80%이상 진행된 엘이디로의 교체사업은 사실상 도시의 야간경관에 대한 더 큰 변화를 예고한다.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조명설계는 
예산문제로 실물에 '갸우뚱'

 

사실상 도로를 비추는 모든 조명을 가로등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적절하지 않다. 램프가 공급하는 빛의 양과 질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도로의 쓰임새 별로 다른 빛을 제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도로는 차량이 다니는 차로와 사람이 다니는 보행로로 구분되며 당연히 이 둘은 다른 빛환경을 요구한다. 차로를 위한 조명을 가로등 그리고 보행로를 위한 조명을 보도등이라고 칭하며 이들을 계획하는데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하는 점도 다르다. 이동 속도가 빠른 차량을 위한 도로는 균제도 - 밝기가 고른 정도-와 운전자의 식가에 영향을 주는 노면휘도가 중요하며 보행로는 도로면의 조도와 상대방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연직면조도가 중요하다. 차로의 균제도 확보를 위하여 가로등주의 높이는 높아지며 가로등을 설치하는 간격도 멀어진다. 따라서 광량은 보도등보다 훨씬 많아지며 빛퍼짐도 넓어진다. 보도등은 그보다는 낮은 위치에 달아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 가로등과 보도등의 빛환경 차이는 야간 차량 운전자들에게 안전운전의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빛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가로등과 보도등은 매우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다. 저렇게 비슷하게 생긴 조명기구가 과연 다른 특성을 가진 빛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왜 달라질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짐작컨대 경제적인 효율성 때문이 아닐까

도로조명의 요건에 보면 조명시설이 도로 및 그 주변의 경관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빛의 질은 물론이고 그 생김새가 도시 경관의 이미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대부분의 도로조명시설이 경관이라고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그저 안전, 기능만을 생각하고 만들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같은 모습의 가로등을 보는 것도 불편하지만,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가로등 위에 갈매기나 특정한 특산물을 얹어 놓는 것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작년말 국립고궁박물관, 경복궁을 비롯해 종로구 일대에 350여 개가 설치한 사각유리등은 디자인에 있어서 조명기구의 비율이나 달아맨 형식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우나 좋은 시도라고 본다.

가우디의 가로등처럼 작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성을 담은 공공재로서의 가로등, 보행등 디자인 공모가 우리는 어려운 것인지 궁금하다. 세종대로가 광화문 광장으로 변신한 마당에 가로등은 왜 그대로인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