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마력 속에 푹 빠진 욕심쟁이, 박애리를 만나다
국악의 마력 속에 푹 빠진 욕심쟁이, 박애리를 만나다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2.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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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20년 후에도 초심으로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남산 한옥마을에 들어선 한 여인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기념사진촬영을 제안하기도 했다. 쌀쌀하지만 햇살이 눈부셨던 지난 1월 22일, 국악인 박애리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때론 활짝 웃어보였다가도 금방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소리는 내 운명

어린 시절 유독 몸이 작아 부모님의 애를 태우던 박애리는 9살이 되던 해 엄마의 손을 꼭잡고 국악원을 찾았다. “그 때는 소리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던 때였어요. 국악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으니까요. 막둥이라 그런지 유독 엄마를 잘 따랐고, 엄마가 가는 것이면 어디든지 따라 갔어요. 국악원을 다니면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소극적이었던 저는 가야금 줄도 제대로 뜯지 못하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무언가에 이끌리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어요. 그 때는 왜 눈물이 났었는지 잘 몰랐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아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거든요.”

소극적이고 몸집도 작았지만 욕심만큼은 컸던 그 소녀는 운명처럼 만나게 된 소리 공부를 시작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그녀는 23살이라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물론 이른 나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말이다. 입단 1년 후, 그녀는 주연을 맡았다.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아요. 사실 들어가기 전에는 걱정이 더 많았거든요. 마냥 꿈에 부풀어 있을 수만은 없기도 했지만요. 입단 후 더 큰 꿈을 꾸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배역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입단하고 1년 후 주인공을 맡게됐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많아서 더 열심히 연습했어요.”

우려의 목소리는 오히려 그녀에게 ‘약’으로 작용했다. 본격적으로 공연 연습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소리의 재미에 더 푹 빠져들었다고. “그냥 연습하는 것과 공연을 전제로 연습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나요. 선배들을 보며 배우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하고요.”

소리꾼 역시 무대에 서는 배우가 아닌가. 그녀는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더 예쁘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도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한류 드라마 열풍의 수혜자(?)

박애리는 한류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을 부른 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국립극장 문화예술진흥회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판소리 수업을 담당했던 그녀에게 지인이 드라마 주제곡을 녹음할 어린이들의 섭외를 부탁했고, 녹음 과정까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악보를 받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보니까 음의 키가 조금 높더라고요. 그래서 한 키를 낮춰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데, 담당자가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녹음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본지 기자에게도 한 구절을 들려주는데, 그것을 듣고 있자니 대장금의 주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했다. 그녀는 녹음 작업 이후 드라마 ‘대장금’이 한류 드라마로 우뚝 서게 되면서 해외 공연, 각종 행사 등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고 했다.

그 이후 SG워너비의 ‘아리랑’이라는 곡의 피처링 작업도 참여했다. 소리만 고집하는 일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외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작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판소리에 대한 틀이 깨질까봐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저는 대중이 우리의 음악인 국악과 친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자주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특히 지금의 학생들은 더 그렇거든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한 학생이 ‘SG워너비 아리랑이라는 곡 앞 부분에 피처링 된 게 판소리인가요?’ 라는 질문을 올려놓은 것을 봤어요.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그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알고, 국악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생일대의 위기 그리고 행복

9살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국립창극단 입단부터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기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온 듯 보이는 그녀에게도 슬럼프는 존재했다.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듯 꽤나 긴 시간을 슬럼프로 힘들게 보낸 그녀. 대학교 3학년이었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변성기였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시간을 보내고 더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됐어요. 판소리라는 장르는 하나의 캐릭터로, 하나의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잖아요.”

병원에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녀가 한 것이라곤 고통을 온 몸을 흡수하는 것 뿐이었다. 가끔 목소리가 나오는 날이면 사람들을 피해 혼자 소리를 지르며 연습하곤 했다. “하루라도 소리연습을 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어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선생님 한 분을 만났는데, 제게 무리할 필요 없다면서 쉬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때부터 소리연습을 쉴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고지식하게 연습한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많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 그녀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과 배역이 있지 않을까.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르왕’의 ‘바리공주’역을 택했다. 일반 공주였다면 그냥 예쁜 옷을 입고, 웃는 것만 잘해도 되겠지만 그녀가 맡은 역할은 다름아닌 바리공주 역이었다. 

“바리공주는 옷은 누더기를 걸칠지언정 뼈속부터 기품있는 공주에요. 바리공주가 된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넘어야 할 산이자 커다란 과제였죠. 리얼한 연기를 하려고 공부 참 많이했죠.(웃음) 해외 공연을 갔었는데, 8천여명의 관객들로부터 꽃세례를 받은 적도 있어요. 그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쉴 때는 쉬고, 일할 땐 일하고

몸이, 목소리가 악기인 그녀에게는 건강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녀만의 건강관리법에 대해 물었더니 의외로 평범한 답을 주는 게 아닌가.

“우선 잘 먹어요. 아무거나 가리는 음식은 없어요. 고향이 바닷가 쪽이라서 해산물, 특히 홍어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고요. 한참 많이 먹을 때는 하루에 다섯 끼도 먹고 그랬죠.(웃음) 다음은 걷기,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보다 조용히 걷기운동을 즐기는 편이에요. 시간이 날 때는 수목원을 거닐며 나무 냄새도 맡고, 심호흡을 하곤 하는데요.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고 좋아져요.”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고 싶을 때 독서를 한다는 그녀는 잠언집을 즐겨 읽는다고 했다. “무대에 서는 직업을 가지다보니 저도 모르게 배역에 욕심이 생길 때가 있어요. 한편으로는 모든 게 다 덧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그 때마다 잠언집을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곤 하죠. 한시나 중국사 관련 책들도 즐겨 읽는 편이에요. 판소리를 하며 그냥 넘어갔던 내용들을 알게되면 다음에 그 대목을 노래할 때 훨씬 더 잘할 수 있거든요.” 배움도 중요하지만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애리는 2월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졸업을 기념해 갖는 공연이자 그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위해 겸사겸사 갖는 공연으로, 기획부터 공연 진행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다. “제가 한옥을 좋아해요. 한옥 사랑채에 가면 늘 이야기꽃이 피어나잖아요. 이번 공연은 저만의 사랑채로 관객들을 초대해 소리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공연이에요.”

공연 테마는 그리움이라고 했다. 안타까운 그리움, 설레는 그리움, 기대하는 그리움 등 그리움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공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리움은 셀레는 그리움이라고 덧붙였다. 옛소리부터 전라도 육자배기까지 러닝타임 90분을 알차게 채우려고 고민이 많은 눈치였다.

욕심쟁이니까 다 잘하고 싶어요!

박애리는 판소리에 매력이 아니라 마력이 있다고 했다. “주변에 보면 판소리를 들어보지도 않은 채 잘 모른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 사람들에게 먼저 들어보라고 말해요. 직접 무대를 보며 듣는 것과 오디오를 통해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저는 판소리에 마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것인데, 당연히 우리 정서와 잘 통하지 않겠어요? 공연장 와서 직접 듣게 된다면 분명 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소리꾼도 모자라 국악전도사 역할까지 하는 그녀는 우리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욕심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롤 모델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고했다. “한 명만 꼽는다면요?”라고 재차 물었더니 한 사람도 포기하기 어렵다며 빙긋이 웃어보였다.

“우선 한 분은 안숙선 선생님이요. 판소리의 전통을 꿋꿋하게 이어가는 분이기도 하죠. 다른 한 분은 김성녀 선생님입니다. 그 분은 마당놀이부터 연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죠. 특히 ‘벽속의 요정’을 보고 많이 배우고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막연히 인간문화재가 되고 싶었다는 박애리. 그녀에게 꿈을 물었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초심 그대로 무대에 서는 배우이고 싶어요.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요. 만족하는 사람은 벼랑 끝에 서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네요. 무대에 서는 동안까지는 멈추지 않고 최고를 향해 달려가야겠죠.”

인생의 희노애락을 알아가면서 판소리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겠다는 박애리. 무대에서 빛날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정지선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