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대자연의 원초성에 투영된 인간 삶의 실존적 의미
[성기숙의 문화읽기]대자연의 원초성에 투영된 인간 삶의 실존적 의미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24.04.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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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정기공연, 김성용 안무의 〈정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어둠의 저편』에서 묘사하듯, “신체는 맥박의 리듬에 맞추어 도처에서 점멸(點滅)하고, 열을 발산하며 꿈틀거린다”. 국립현대무용단 정기공연(2024.4.11.~14,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오른 김성용 안무의 <정글> 첫 장면에 대한 인상은 하루키가 쏟아낸 문장과 동의어로 겹쳐진다.

우리가 알 듯, 대자연의 정글은 원시성과 야성, 그리고 ’날 것‘의 이미지를 함축한다. 여기에 반해 김성용이 안무한 무용작품 <정글>은 대자연의 원초성과 도시문명의 상징인 빌딩 숲을 유랑하는 인간 삶의 실존적 의미를 되묻는다. 작품을 둘러싼 ‘안과 밖’ 그리고 ‘겉과 속’을 곱씹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시각의 문화론적 관점에서 내밀한 탐색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의식과 감각의 일깨움, 그리고 실존

텅 빈 무대를 배경으로 천정에 거대한 원형의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고, 그 틈새를 비추는 조명은 정글에 갇힌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고스란히 비춘다. 17명의 무용수들이 텅 빈 무대를 활보한다. 몸과 몸은 상호 스치고 엉키고 부딪히기를 반복하면서 산산히 부서지고 또 때론 응집된다.

독무, 2인무, 3인무 혹은 군무로 꾸며진 다채로운 구성은 무질서 속 질서, 무계획의 계획의 발로다. 그런 속에서 무대를 활보하는 무용수들은 상호 밀착된 교감으로 미적 완결성을 더해간다. 몸짓이 빚어내는 입체적 조형성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한층 배가한다.

놀랍게도, <정글>의 무용수들은 샘솟는 에너지로 충만돼 있다. 개체성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가 하면, 군무 특유의 연대 혹은 집단성으로 섬뜩한 기운을 안겨준다. 침묵과 고요가 흐르는 정중동의 몸짓은 명상을 연상케 한다. 존재의 소멸로 허허롭게 떠있는 무대는 순간 무(無) 혹은 공(空)의 이미지로 채워진다.

인접 예술장르와의 협업은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일조했다. 이정윤의 조명은 균형과 불균형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의 틈새를 가로질러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대자연의 정글에서 금방 튕겨나온 것 같은 무용수들의 의상(디자이너 배경술)은 작품 <정글>이 표상하는 원시성과 야성의 미감을 한층 극대화한다. 이에 걸맞게 무용수들이 쏟아내는 둔탁하고 질박한 이른바 ‘날 것’의 움직임은 시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촘촘히 그리고 밀도 있게 주제성의 구현에 충실히 복무한다.

김성용 예술감독은 작품 <정글>에서 작년 9월 취임 일성으로 밝힌 아시아 현대무용의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도 잊지 않는다. 아시아권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린다는 취지다. 일본의 사운드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인 마리히코 하라가 쓴 곡은 공연 내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빛의 농도에 따라 정글의 모습이 변모하듯 음악 또한 강약과 완급으로 적절히 조율되면서 정서적 충동을 자극한다.

이른바,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이라는 개념의 탄생도 반갑다. <정글>은 안무자 김성용이 개발한 비정형적 움직임 리서치 ‘프로세스 인잇’에 기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프로세스 인잇’을 통해 무용수들은 각자 내면에 감춰진 의식과 감각을 일깨운다. 또 상호 간의 반응을 탐색하며 그 과정에서 움직임의 변화와 확장을 모색한다. ‘프로세스 잇인’이란, 완성이 아닌,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통해 무용수 개개인이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자발성과 능동성의 소산이라 하겠다.

움직임의 창조성에 기반한 관객과의 밀착된 교감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성용 안무의 <정글>은 존 마틴의 현대무용 이론체계에 한층 가까이 다가 서 있는 셈이다. 미국의 저명한 현대무용 이론가인 존 마틴은 현대무용에 대해, “20세기 초 연극의 기능을 흡수하여 새로운 극장예술로서 특이한 미적 특징을 인간신체에 대한 현대인의 새로운 자각을 근거로 하여 공연자와 관객이 감정의 소통을 이루는 예술방식”이라 정의 내렸다.

안무자 김성용은 ‘무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말’이라 규정한다. 그러면서 ‘가장 진실한 표현도구로서의 무용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말로 할 수 없는 말’ 즉, 무언어 예술인 무용에서 진실된 표현도구로서의 ‘몸의 말’을 찾는 그의 오랜 화두는 이번 작품에서 의미롭게 성취된 듯 싶다. 작품 <정글>은 무용이 몸의 예술이자 움직임이 유일한 표현도구라는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독창적인 움직임 어법으로 풀어낸 <정글>은 순수예술로서의 무용의 존재론적 가치를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된다.

이번 작업에서 김성용은 기존의 움직임 어법을 넘어 새로운 창조성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가 고안한 독창적이고 개성 넘치는 움직임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피가 주효했다. 기존의 정형화된 몸짓에서 벗어나 비정형 움직임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분명 모험임에 틀림없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대학 무용교육에 편승된 현대무용은 미국 마사그레이엄의 이른바 ‘수축과 이완’(contraction and release) 매소드가 하나의 전범으로 통했다. 김성용 역시 그 범주에서 현대무용 테크닉을 익히고 체득했으나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탄탄한 배움으로 체화된 정형화된 테크닉을 폐기하고 새로운 체계로서 비정형 움직임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한편, 상아탑 중심의 기득권 엘리트주의가 초래한 묘한 알력과 위계 혹은 억압적 분위기는 그의 탈주를 한층 부추겼다. 현실의 부조리는 그에게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게 했다. 이성과 감성이 응축된 독창적 어법의 비정형 움직임은 미국식 현대무용의 답습 내지 맹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날 번뇌와 성찰의 시간이 빚어낸 결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예술감독의 안무로 올려진 '정글'의 한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_황인모)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예술감독의 안무로 올려진 '정글'의 한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_황인모)

작품 <정글>에는 서사성의 초극과 장식성의 제거 위에 창작의 자율성이 맘껏 구현된다. 움직임의 창조성을 화두로 한, ‘본질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가치롭다. 작품에는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 나아가 미(美)·추(醜)가 공존한다. 대자연의 원초성에 투영된 인간 삶의 실존적 의미를 끈질지게 탐문한 <정글>은 김성용의 야심작으로 손색이 없다. 집요한 안무 근성과 치열한 창작정신이 돋보이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라 하겠다.     

국립현대무용단, 신(新) 한류 열풍의 주역 

  김성용이 안무한 <정글>에 구현된 몸짓의 기원은 근대 모던댄스로 귀결된다. 이 땅에 모던댄스가 유입된 것은 20세기 초반 무렵이다. 1926년 3월 21일 경성공회당에서 개최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신무용 공연이 한국의 모던댄스의 기점이 된다. 당시 공연은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반라(半裸) 차림에 이국풍의 음악에 맞춘 이시이 바쿠의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은 근대 ‘새로운 것(新)’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상하게 생긴 배를 타고 온’, 이른바 양풍(洋風)의 문화적 충격은 최승희, 조택원의 여린 감성을 일깨웠다. 양풍의 움직임에 심취한 두 사람은 주저없이 현해탄을 건너갔고, 이시이 바쿠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그들은 세계적 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춤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떨쳤다. 한마디로  한류 열풍의 선두주자였다.

재론하건대, 이 땅에 모던댄스가 유입된 지 1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20세기 초 모던댄스를 체득한 최승희, 조택원은 이 땅의 무용문화가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도록 추동했다. 해방이후 박외선은 이화여대 무용과 창설(1963년)에 산파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무용의 지형변화를 주도한 선구자로 통한다. 미국 유학파 육완순은 마사그레이엄 식(式) 현대무용의 씨앗을 뿌리며 ‘동종교배’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한편, 1980년대 프랑스 유학파 남정호에 의한 유럽 현대무용의 유입과 확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춤아카데미즘 세대의 왕성한 활동을 발판으로 한국의 현대무용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세계 무용계의 주변에서 점차 중심으로 이동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무용은 공적(公的) 제도의 혜택에서는 늘 방치된 채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변곡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 무용계의 오랜 염원이던 국립현대무용단(이사장 김화숙)이 창단되었다. 반세기 만의 숙원이 이뤄졌다고 당시 무용계는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홍승엽 초대 예술감독에 이어 안애순, 안성수, 남정호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아 2023년 김성용이 제5대 예술감독에 올랐다.

김성용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발탁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선, 세대론적으로 볼때 그는 한국현대무용사에서 제4세대에 속한다. 일제강점기 최승희·조택원에서 해방이후 박외선·육완순 세대를 거쳐 1990년대 춤아카데미즘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무용 황금기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김성용은 20세에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최연소 수상하면서 미래 주역으로 떠올랐다. 국내외 유수의 극장에서 약 100여 편의 안무작을 선보이며 저력을 인정받았다.

결정적으론, 2017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그리고 2023년 국립현대무용단 제5대 예술감독에 선임되어 화제를 모았다. 최연소 예술감독이자 순수 국내파라는 점에서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작품 <정글>로 우려는 한낱 기우였고, 기대는 더욱 세차게 미래를 웅비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상승된다.

최근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2024 파리올림픽을 기념해 오는 7월 23~24일 파리 13구 극장에서 <정글>이 공연된다는 전언이다. 모던댄스의 발원지이자 문화선진국으로 인식되는 유럽무대에서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토종 안무가가 만든 현대무용 <정글>이 관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90여 년 전 국권을 상실한 유랑자 처지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무용가들이 쏟아낸 몸짓에서 ‘동양적인 신비로움’을 발견한 그들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의 현대무용은 그간 문화적 제국주의의 그늘아래 포위된 채 얼마간은 자유롭지 못했다.

순수 국내파인 김성용 예술감독이 이끄는 국립현대무용단이 모던댄스의 본고장 유럽무대에서 한국 현대무용의 수준 높은 예술성으로 문화강국의 위상을 빛내길 기대한다. 일찍이 신무용가 최승희, 조택원이 세계무대를 활보하며 한류 열풍을 주도했듯이 말이다. 그들이 신(新)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되기를 성원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