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성불할 수 없는 몸, 미술로 품다 - 호암미술관의 불교와 여성 전시를 보고
[특별기고] 성불할 수 없는 몸, 미술로 품다 - 호암미술관의 불교와 여성 전시를 보고
  • 윤범모 동국대 명예 석좌교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
  • 승인 2024.05.0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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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이색적인 전시를 보았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그것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얼마나 좋은 표현인가. 어떻게 보면 서정시집 같은 제목이지만 전시 주제는 불교와 여성이다. 젠더의 시각에서 불교미술을 살펴보겠다는 것. 깜찍한 발상의 전시다. 그렇다면 불교는 여성을 어떻게 보았는가.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 일본민예관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 일본민예관

[법화경]에 의하면, 여성은 다섯 가지의 장애 때문에 성불(成佛)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용왕의 딸은 남자의 몸으로 바꾸어 성불할 수 있었다. 남자의 몸이라야 성불할 수 있다는 것. 현존 <감지금니 묘법연화경>(1345년)의 경우, 발원자 김씨 부인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면서 사경(寫經) 불사를 진행했다. 장곡사 <금동 약사여래 좌상>(1346년)의 여성 발원문 역시 내생에는 꼭 남자로 태어나기를 염원했다.

또 아미타 불상 발원문(1302년)의 여성은 “중국으로 가 바른 믿음이 있는 집에서 남자로 태어나며 국왕이나 고관이 아니라 동자가 되어 출가하기를 맹세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여성 차별을 반영한 서원이 아닌가 한다. 불경이 성립되는 고대 인도사회는 가부장제도였기에 차별이 심했을 것이다.

그래도 [삼국유사] 같은 문헌은 신라시대 여성들의 역할을 부각시킨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억불숭유의 조선왕조시대는 여성의 출가는 물론 사찰 출입까지 막으려 했다. 아니, 유생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라면서 여성을 하대했다. 남존여비의 유교 사회를 반영한 이야기다. 뭐, 암탉이 운다고. 그래서?

▲금동 불감과 금동석가여래삼존좌상, 수종사
▲금동 불감과 금동석가여래삼존좌상, 수종사

입체적인 공간 구성의 시도는 어땠을까

[열반경]에 나오는 일화다. 붓다는 유녀(遊女) 암바빨리의 공양을 받았다. 붓다는 굳이 여성이라 하여 차별하지 않았다. 인도 고대 사상은 ‘여성은 죄인이다’라는 말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은 평등 정신을 강조했다. “사람이 귀하고 천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그래서 붓다는 남녀노소와 계급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더불어 공동체 사회를 만들었다. 다만 출가생활의 특수성 때문에 비구에게는 250조를, 비구니에게는 348조라는 계를 주었다. 

이번 호암미술관의 전시는 다양한 불교미술품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불상, 불화, 사경, 자수, 도자기 등 90여 점을 세계 도처에서 모았다. 출품작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도 많다. <궁중 숭불도(宮中 崇佛圖)>(조선 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는 궁궐 안에 내불당을 두었음을 증거한다. 그야말로 외유내불(外儒內佛)의 시대임을 알리는 그림이다. 법당은 청기와 지붕 아래의 5칸 건물의 규모다. 거기 삼존불상과 비구니의 의식장면도 보인다.

내불당은 여성의 신앙 공간이다. 왕후는 그렇지만 후궁의 경우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 경우가 많다. 서울 동대문 부근의 청룡사는 비구니 사찰로서 왕실 여성과 인연이 많다. 예컨대 단종의 영월 유배 이후 정순왕후는 궁에서 쫓겨나 정업원(청룡사)에서 처절한 나날을 보냈다. 이번 전시에 청룡사 같은 특별 코너를 두어 사찰과 여성의 생활을 집중 조명했다면, 전시 효과는 배가되었을 것이다. 나열식 진열보다 입체적인 공간 구성의 시도는 어땠을까. 

▲인로보살도, 영국박물관
▲인로보살도, 영국박물관

열린 공간 다채로운 채색화 경험, 시각 효과 높였을 것

조선 왕조의 대표적 불교 후원자는 문정왕후를 들 수 있다. 나이 어린 명종(16세기)의 모후로서 수렴청정한 문정왕후는 불교미술의 진흥에 빛나는 역할을 했다. 그는 400점의 불화를 제작하여 전국 사찰에 나누어 봉안하게 했다. 현재 채색 <석가여래 삼존도> 등 6점이 남아있다. <약사여래 삼존도>(조선 156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문정왕후가 회암사 중건 당시 400점의 불화를 봉안한 바, 그 가운데 한 점이다.

이 불사 이후 문정왕후는 곧 이승을 떠났다. 그러자 왕조실록의 사관은 문제의 폭언(?)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라는 [서경(書經)]을 인용하면서 비판했다. 수렴청정한 왕후를 암탉이라고? 이 그림은 금선(金線)의 묘사여서 독특하다. 이자실과 연관성을 점치게 한다. 이자실은 왕실 발원 <관음삼십이응신도(응신(應身圖)>(1550년)의 화가다. 이 불화는 인종비 인성왕후가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했으며, 월출산 도갑사에 봉안했다.

16세기 불화의 대표작급이다(이번 전시에 출품하지 않음.) 아무튼 불화 제작 등 불교적 조형활동에 왕비를 비롯 후궁이나 상궁 등 왕실 여성의 후원은 적극적이었다. 동시대의 일류 화원이나 화승의 불화 제작은 불교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다. 특히 불화의 활용 공간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린 사찰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한다. 원색의 불화 혹은 채색화의 일반 대중화의 현장으로서 적극 역할했다. 열린 공간에서의 다채로운 채색화 경험, 이는 시각적 효과를 높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극소수의 양반 사대부끼리 소통되던 수묵 문인화의 경우와는 위상을 달리했다.

▲석가출가도,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석가출가도, 쾰른동아시아미술관

다양한 이야기 한 화면 펼치는 구성법 눈길 

이번 전시는 탄생도를 비롯하여 불화 속 여성의 존재를 짚었다. <석가 탄생도>(조선 15세기, 일본 本岳寺 소장)는 무우수(無憂樹) 아래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는 싯달타를 묘사하고 있다. 적절한 구획 아래 다양한 이야기를 한 화면에 펼치는 화면 구성법은 눈길을 끈다. 거기다 화려한 채색의 향연을 보게한다. 구름까지 알록달록 원색으로 표현했다. 바로 채운(彩雲)이다. 더불어 자연스러운 인물 표현은 이 불화의 수준을 말해준다.

<석가 출가도>(조선 15세기,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소장) 역시 우수한 불화로 출가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출가 고행의 길을 선택한 태자. 출가를 상징하듯 왕실의 주인 없는 애마와 비통에 빠진 태자비와 시녀들, 실감나는 장면이다. <팔상도>(1725,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는 붓다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도해한 작품이다. 각 장면마다 사각형의 구획을 두어 설명을 부기한 것은 친절한 해설 같다.

<시왕도>(중국 남송,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는 명부 세계의 심판관 아래 벌 받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형틀 쓰고 옥졸에게 끌려가는 어머니를 어린 아이가 옷자락을 붙들면서 헤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애절하다. <시왕도(제10 五道轉輪王)>(조선 19세기, 리움미술관 소장)은 망자 사후 3년째의 날 심판하는 오도전륜왕 아래 옥졸과 죄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무릎 꿇고 있는 죄인 가운데 젖가슴까지 들어낸 여성의 모습도 보여 흥미롭다.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 호곤지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 호곤지

전시 백미는 고려불화, 세계 회화사서 보기 어려운 최고 수준 채색 기법과 품격 지녀

이번 전시의 백미는 고려불화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수월관음보살도>는 자비스런 관음의 자태와 귀여운 선재동자로 잘 알려진 도상이다. 고려불화는 세계 어느 회화사에서도 보기 어려운 최고 수준의 채색 기법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섬려(纖麗)하다고 집약할 수 있는 고려 불화, 한국회화사의 백미를 증거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한꺼번에 여러 점의 고려불화를 배관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리라. 물론 최상급의 작품은 해외 특히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어 아쉽게 하는 부분이다. 하기야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미술사학계에서는 고려 불화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의 특별전 개최 이후 관심 갖게 되었고 국내 반입의 열망을 높이게 되었다.

<송자(送子)관음보살도>(중국 명대, 16세기 후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는 아이를 안고 있는 관음보살로서 순산과 다남 등 모성을 강조한 그림이다. 중국 신화 속의 동물을 타고 있는 후덕한 모습의 여성형 관음과 예쁜 옷차림의 선재동자가 함께 있다. 모성의 가치를 높인 사례의 그림이다. 관음은 모성의 상징과 같이 여성적 분위기로 표현되었다.

<감로도>(1580년, 개인소장)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독특한 구성의 불화다. 특히 억울하게 죽은 망자를 위로하기 위한 힐링 아트의 역할도 있다. 삼단 구성에서 하단부분은 눈길을 끄는데 당대 사회 풍속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일하고 놀고 혹은 전쟁이나 죽는 모습까지 다양한 장면을 담았다. 이번 호암 전시는 하단부의 풍속 장면이 출중한 감로도가 아니어서 아쉬웠다. 감로도는 망자의 생존 모습과 더불어 영혼까지 표현한 경우도 있다. 조선 후기의 일반 생활 풍속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감로. 달콤한 이슬을 요구하는 사회는 그만큼 살기 어려웠다는 반증이다. 거기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감로도의 유행은 시사하는 바 많다. 나는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에서 5.18을 염두에 두고 전시 제목을 ‘달콤한 이슬’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불화를 통하여 우리는 한국 회화사의 주류는 역시 채색화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품격 높은 채색 구사는 원색 선호의 민족임을 알린다. 이 같은 채색 문화는 사찰의 벽화에도 반영되었고, 통도사의 경우처럼 불교와 무관한 이른바 민화 소재의 작품도 상당수 남게 했다. 까치 호랑이나 별주부전 같은 소재의 벽화를 종이에 그려 민간에서 유통시켰다면, 오늘날 이른바 민화가 아닌가. 그러니까 민화의 상당수는 사찰의 화승(畵僧) 작품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민화라는 용어의 폐기와 더불어 채색 길상화(吉祥畵)의 새로운 개념 정리를 기대하게 한다. 채색 불화는 한국인의 색채의식을 헤아리는데 중요한 자료다.

▲금동 불상군
▲금동 불상군

보기 어려운 희귀 작품 다수. 특히 해외 빌려온 걸작 많아 

이번 호암미술관 전시는 평소 보기 어려운 희귀 작품을 다수 진열했다. 특히 해외에서 빌려온 걸작도 많아 안복을 누리게 한 전시다. 물론 보험과 운송료 등 거금을 들였고, 작품 대여 섭외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개인소장의 <금동 관음보살입상>(백제 7세기)은 매도가격으로 150억 원을 불러 놀라게 한 바 있다. 1907년 부여의 절터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희귀한 사례에다 ‘백제 미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 불상은 국내 처음으로 공개되어 전시 의의를 높였다. 

불교와 여성이라는 주제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례는 타라(Tara)보살이다. 보살의 경우 배우자 이름을 알 수 있는 경우는 관음보살로 바로 타라(多羅)다. 나는 티베트나 몽골을 여행하면서 타라를 만날 수 있어 감동받기도 했다. 타라! 관음보살의 눈물로 생긴 연못에 연꽃이 피었다. 바로 그 연꽃 속에서 태어난 이가 타라다. (이번 호암미술관의 전시 제목을 상징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닌가!) 관음보살의 눈물에서 나온 타라. 특히 녹색 타라 그림은 인상적이다. 자비의 상징. 타라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여실하게 표현했고, 어떤 경우는 관능적이기도 하다. 관음의 여성화, 타라의 존재는 불교와 여성이라는 주제와 딱 맞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타라보살의 존재를 이번 호암 전시에서 누락시킨 것은 정말 아쉽다.

▲유마불이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유마불이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불교와 여성. 이와 같은 주제의 미술 전시는 주목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물론 여기 진열품은 대개 뮤지엄 소장품이다. 불교미술품이라고 표현하지만 원래는 종교적 봉안물이었다. 신앙의 대상으로 사찰에 있어야 존상이 미술관 진열장 안에 있다는 것은 가치 전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시 기획자나 관객은 원위치에서의 기능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하기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드는 물음, 불교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한국 불교를 ‘치마 불교’ 혹은 기복불교라고 폄하하는 표현도 없지 않지만, 왜 한국의 사찰에서는 여성 불자를 ‘보살님’이라고 호칭할까. 그들은 과연 보살인가. 여자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 불사에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여성들. 성불로 가는 과정의 한 갈래였던가. 젠더의 입장에서 여성과 불교의 상관관계를 헤아리게 한 이번 전시는 무척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