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강북문화재단 서강석 대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사람 움직이는 재정·시스템 변화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강북문화재단 서강석 대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사람 움직이는 재정·시스템 변화 필요”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5.09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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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은 매개자 역할, 소위 ‘마당’의 역할 수행해야”
고향 남원에서 어릴 적부터 예술과 가깝게 지내
“모든 문화예술이 시민들에게 일상이 되고, 균형 있게 향유될 수 있어야”
역사서 집필, 그림책 관련 서적 공저로 참여한 ‘그림책 전도사’
코로나 시절 하남 공연 전석 매진, 네이버 TV 3위 기록
“따뜻하면서도 ‘잘 하는 사람’ 되고 싶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김연신 기자] 깎아지른 듯한 북한산의 치밀한 산세를 배경으로 하는 강북구는 반겨주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가오리역에서 약 2분 정도 걷다 보면 이른 봄의 풋풋한 산내음, 낮게 깔린 하늘이 맞아주는 곳에 강북문화재단이 위치해 있다.

강북문화재단 서강석 대표는 면접을 보던 날,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마자 들이마셨던 그 공기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문화예술 불모지’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강북구지만, 서 대표가 강북구에 갖는 자부심에는 전부 이유가 있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녹지를 가지고 있는 강북구는 4.19민주 묘지, 봉황각 등 역사 자원도 풍부하다. 강북문화재단은 이러한 특징을 고려해 ‘강북다움’의 지역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서강석 강북문화재단 대표
▲서강석 강북문화재단 대표

서 대표는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일이 참 즐겁다고 말하는 그는, 직원 사랑도 유별나다. 

강북문화재단은 작년 임금인상에서 총액상한제를 넘어서는 비율인 9.5%를 인상했다. 하남문화재단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기간직·무기계약직 직원 6명 전원을 일반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은 서 대표가 평생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다. 지난 1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예술경영 부문 수상으로 참석한 시상식에는 재단 직원들이 시상을 축하하는 현수막까지 준비해와 눈길을 끌었다.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서강석 대표의 경영 방식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중요한 예술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도 온라인 문화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전국 공연장 기준 네이버 TV 구독자 수 3위를 달성하는 등, 서강석 대표는 군포문화센터, 군포문화재단, 하남문화재단을 거치며 타기관에서 모범으로 삼아 벤치마킹을 할 정도의 성공사례를 만들어왔다. 

강북문화재단 역시 기존 인원 13명에서 20명으로 인원이 증원되는 등, 새단장을 거치며 빠른 속도로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날에도 내부 공사가 진행중인데다가, 새로 부임하게 된 음향감독과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한 분위기였다. 바쁜 기색이 역력했지만, 서 대표의 눈빛은 설렘과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강북 문화재단 건물 내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다.
▲강북 문화재단 건물 내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다.

-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예술경영 부문에서 수상했다. 시상식 날 “아이디어 많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대표 때문에 항상 고생하는 직원들과 이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다”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이 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실은 40년 사회생활 중 내 이름 앞으로 된 상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군대에 있을 때나 학교를 다닐 때는 몇 차례 상을 받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부터는 상을 받을 기회가 생기면 고사하곤 했다. 대신 인사고과에도 영향을 미치곤 하니, 직원들 앞으로 공로를 돌려 상을 챙겨주면 그렇게 좋아하더라. 그러다 보니 재단이나 직원들은 기관표창이나 국무총리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한데, 정작 내 이름이 적혀있는 개인 표창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내 이름 앞으로 된 상을 받는다는 게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해서 처음에는 습관처럼 거절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를 추천해주신 김승국 선생께서, “개인이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강북과 강북문화재단이 받는다고 생각하세요”하시더라. 내가 또 그 분 말씀은 잘 듣기에, 그 말에 “예, 알겠습니다” 하고 받게 됐다. (웃음) 

막상 수상하고 보니, 주변에서 “큰 상 받았다”라며 다들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하며 많은 축하의 말들을 전했다. 나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직원들에게도 큰 자랑이었던 것 같다. 또, 시상식 당일에는 아내와 딸이 찾아와 축하해줬는데, 가족들이 특히 기뻐했다. 상을 받으면서 기뻐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보람이 컸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수상 이후의 근황이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깨는 더 무겁다. 수상을 계기로 지역문화진흥에 더욱 더 정진하고자 노력했다. 일벌레 기질이 있어 평소에도 노동시간이 꽤 긴 편인데, 노동시간이 좀 더 많아졌다고 하면 되려나. (웃음)

- 재단 직원들이 시상을 축하하는 현수막까지 준비해와 눈길을 끌었다. 평소 직원 사랑이 각별했던 것 같다.

요즘 말로 ‘깜놀’ 했다. 고마운 마음이 아주 컸다. 와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마음을 담아 이렇게 이벤트를 해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 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임금을 9.5% 인상했다. 임금 총액상한제에 어긋나지만,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도, 다른 부분에서 잘하자’라는 생각이었다. 또 이건 평생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인데, 하남에 있을 때 기간직과 무기계약직이었던 직원 6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나에게는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

근로자에게는 임금이나 노동시간, 복지도 중요하지만 근로환경과 분위기가 1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좋은 근로환경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한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다’가 리더로서 나의 신념이다. 내가 먼저 존중하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게 되는 법이다. 

다만, 나랑 일하면 일은 정말 많이 하게 된다.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웃음) 그래도 후배들은 늘 “고생은 했지만 재밌게 일했다”라고 말해오곤 한다. 

▲수상 당시, 재단 직원들이 들고온 현수막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는 서강석 대표와 직원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수상 당시, 재단 직원들이 들고온 현수막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는 서강석 대표와 직원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이다.

- 20년 넘게 예술경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예술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듣고 싶다.

고향이 남원인데 광한루 건너편, 현재 국악원이 있는 자리에 집이 있었다. 북과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집 근처에 큰 정자가 있었는데, 거기서 장구 치며 춤추고 소리하는 걸 자주 구경했다. 이런 것들과 늘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학에서는 사학을 전공했다. 사회로 나가서는 시민사회단체 운동을 했던 적도 있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 동안은 ‘안양노동교육 연구실’을 운영했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법률상담소였는데, 수익 창출이 되지 않던 만큼 야간에는 수학 강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사학과를 전공했는데 왜 수학 강사를 하냐는 말에는 우스갯소리로 “사학을 뒤집으면 수학이 된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웃음) 20대, 30대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일타강사’였나?

그랬다.(웃음) 그러다가 2004년에는 군포문화센터 관장직 제안을 받았다. 사실 당시에는 오래 일할 생각은 아니었다. 

재임 당시 150석 소극장을 설립했는데, 유료 관람 기준으로 1년간 1만 4천명의 관람객 수를 기록한 바 있다. 하남문화재단의 경우 극장이 두 개인데도 유료관람객 수가 1년에 2만 명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과다. 평생학습과 문화예술 교육은 수강생이 4천명 정도 됐는데, 인기가 얼마나 좋았냐면 아침 9시가 등록 접수 시간이었는데 전날 12시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릴 정도였다. 나도 새벽에 점퍼를 걸치고 나가 주민인척 대열에 합류해본 적도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잠행한 셈인데, 인터넷 접수 도입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이게 내 천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자원봉사자들이 ‘미소 전도사상’을 만들어서 줄 만큼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문화예술을 접했던 영향도 있어서 그런지, 일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인터뷰 중 보람찼던 일화를 설명하며 환하게 웃는 서강석 대표.
▲인터뷰 중 보람찼던 일화를 설명하며 환하게 웃는 서강석 대표.

- 군포예술회관 관장과 하남문화재단 대표를 거쳐 강북문화재단 대표직을 맡고 있다.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를 것 같다.

군포 시민들의 문화생활만족도는 전체 지자체들 중 무려 6위를 기록했다. 군포는 문화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도시다. 

하남은 지자체와 재단이 동행 관계에 있었다. 재단을 산하기관이 아닌 협력기관으로 대우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당시 하남시장으로 재임하던 김상호 시장은 한 해 동안 공연을 보러 무려 8번을 방문했다. 원래 정치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인터미션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정치인들이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동안 얼굴도장을 찍고 공연장을 떠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김상호 시장은 1년에 8번의 공연을 모두 끝까지 볼 정도로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셨다. 

강북 같은 경우는, 자연, 역사, 문화, 인적 자산은 정말 풍부하다. 예술인 지표로는 7위로, 상대적으로 많은 예술인들이 강북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가장 많은 녹지를 가지고 있다. 4.19민주 묘지, 봉황각도 있는 등 역사 자원도 풍부하다. 이러한 점을 살려서 ‘강북다움’의 지역문화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 다음은 재정문제고, 마지막은 시스템이라고 본다. 

- 지금껏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행사는 어떤 것이었는지.

하남에서 있었던 공연이다. 훌륭한 공연은 연주자, 기획자, 관객의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기획자가 ‘코로나 상황에서 공연을 기획하는 이유’를 묻자 “코로나 상황에서 시민들이 4계절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공연 주제를 ‘사계’로 정했다. 비발디의 사계와 피아졸라의 사계는 분위기가 아예 다르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시민들의 아쉬움이 공연을 통해 풀렸으면 좋겠다”라고 답하더라. 

관객들도 완벽했다. 항상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소리가 나올까봐 우려하는데,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바이올린 연주를 맡았던 김다미 서울대 교수도 감격스러워 했다. 4악장이 끝날 때 사운드 잔향이 울리는데, 관객들이 숨죽이며 기다리다가 그 마지막 소리가 극장을 다 울리면서 끝나고 나서야 박수를 쳤다. 그야말로 최고의 공연이었다. 

보통 공연이 끝나면, 관객의 표정에서 공연의 점수를 읽을 수 있다. 이날은 공연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공연의 여운에 대화도 하지 않고 가만히 미소만 띄우고 있는 것이었다. 큰 만족감을 느꼈다. 

- 평소 유독 애정을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가 있는가.

나는 문화예술 전공자가 아닌데, 그 점이 장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재단은 공연에 기반을 두는데, 나는 특별하게 어느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있다. 모든 문화예술이 시민들에게 일상이 되고, 균형 있게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 사학과를 졸업, 명량대첩을 다룬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서, 『명량,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를 집필한 바 있다. 페이스북 소개 문구에는 "역사로 꿈꾸고 문화로 빛나자"라는 문장이 걸려 있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임진왜란 때 동래가 하루만에 함락당했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에서 천 명이 6만 명의 일본군을 상대로 무려 3박 4일을 버텼다. 이러한 위대한 사건에 대해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고향이 남원인 만큼,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던 것 같다.

20년동안 명량에 대해 공부를 했다. 명량은 ‘있을 수 없는 승리’다. 13척으로 병사 4천 명이 133척과 직접 싸운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제대로 알리고자 강의를 많이 했는데, 강의를 들은 출판사 사장이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해서 출간하게 된 책이 고맙게도 5쇄까지 인쇄됐다.

▲『명량,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 2018, 서강석 글·그림, 상상의집 출판
▲『명량,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 2018, 서강석 글·그림, 상상의집 출판

- 역사서 뿐만 아니라, 그림책을 다루는 책 집필에 공저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또한 현재 강북문화재단에서는 《소리없는 그림책 展》이 진행 중이다.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별명이 ‘그전’이다. 그림책 전도사의 줄임말이다. (웃음) 그림책으로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고 있다. 그림책만큼 문화예술, 문화예술교육에 좋은 분야가 없다. 나이나 국가 남녀노소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다. 

- 하남문화재단 대표였던 당시, 문화예술계가 울상이던 코로나 기간이었음에도 온라인 문화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전국 공연장 기준 네이버 TV 구독자 수 3위를 달성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하남에서는 3년간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공연, 전시 축제 등을 전과 같이 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관에서 축제를 취소하는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온라인으로 전환해서라도 전부 진행했다. 

코로나 당시 온라인 공연으로 네이버 TV 기준 3위를 기록했다. 온라인 최다 관람객은 무려 8만 명이었다. 

전시 같은 경우에는 공공기관 전시실은 문을 못 열지만 민간은 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연간 2천 만 명이 방문하던 스타필드 하남과 협업을 했다. 재단 측에서 2주 단위로 전시 컨텐츠를 제공하고, 스타필드는 내부에 작은 미술관을 만들고 홍보를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타필드는 연중무휴였던 만큼 2주 단위로 끊임 없이 작품이 전시됐고, 무엇보다 참여 작가들이 너무 좋아했다. 내부에 22미터짜리 타워스크린도 있었는데, 거기에 작품이 걸리니 작가들이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보람찼다. 작가들에게 전시 페이를 주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경쟁률이 높았고, 갤러리와 연결되거나 그림이 팔리기도 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바람직한 전시 방안이자, 지역과 기업체가 성공적으로 협업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임기동안 코로나에 대응하다가 끝났지만, 여러모로 보람도 많이 느꼈다.

▲하남 스타필드 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지민선 작가의 범기명도 ⓒ스타필드하남
▲하남 스타필드 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지민선 작가의 범기명도 ⓒ스타필드하남

- 2022년 강북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취임, 강북구의 문화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강북구가 ‘문화예술 불모지’라고 불리우는 만큼 어려웠던 점이 있을 것 같다.

자연, 역사, 인적 자산은 충분한데 재정적 자원이 적다는 것이다. 문화보다 생활이 우선이라 문화복지는 후순위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민들이 문화적 혜택에 목말라있다. 예술인들로 마찬가지로, 공고만 내면 경쟁률이 엄청나다. 목마름이 오랫동안 지속됐던 상황이다. 이것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을 어떻게 조직할건지가 큰 관건이다. 

다행히 구청의 지원과 협력, 구의회의 지지에 재단은 의욕이 넘친다.

- 현재 강북문화재단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작년에는 재단의 존재 자체가 미약했기 때문에, 첫 번째로는 활동을 잘 수행해서 지역사회에서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하고자 했다. 

두 번째로는 지역문화진흥에 ‘도약기’를 만들려고 한다.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강북다움의 지역문화생태계를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대공연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단기 목표다. 정말 좋은 공연기획자는 ‘이 지역에 맞게끔 어떤 걸 올릴 건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지역문화예술위원회가 설립됐다. 대게 위원회가 그렇듯,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그 안에 실무위원회를 또 만들었다. ‘실질적으로 일하는 위원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면 앞으로도 변화가 생길 거라고 본다. 

실무위원회 활동 말고도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예로, 한 달에 한 번씩,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아침에 예술가들과 함께 조찬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재단은 이렇게 매개자 역할, 소위 ‘마당’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재단이 직접 경영하는 사업이 많은데, 민간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방식이 예술인들의 자체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24 강북연극제 공연 현장
▲2024 강북연극제 공연 현장

-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정부와 재단이 개선해야할 점은 무엇인가.

제도부터 바뀌어야한다고 본다. 사람이 가게끔 하는 재정,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은 결국 사람으로 움직이는 산업인데, 예술인 활동이 증명된 인적자원이 수도권과 부산에 몰려있다. 지역에 인적자원이 분산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우선 문화예술 관련 법이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 “지원할 수 있다”라고 애매모호하게 기술되어있는데, “지원 해야 한다”로 바꿔 지역 문화예술 산업에 대한 적극 지원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본다.

공무원 시스템에도 허점이 많다. 문화예술 산업 내에서 사업을 행정, 집행하는 것은 결국 공무원인데,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다. 전문보직제 도입으로 순환보직제를 보완하고, 문화예술 전문 교육을 수료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산업은 업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기반이 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가.

원래는 ‘이순신학교’를 설립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웃음) 지금은 ‘죽기 전에 책 10권내기’가 개인적인 목표다. 또, 민간문화재단으로 ‘버스킹 재단’을 만들고 싶다. 임윤찬은 모두가 볼 수 없지만, 버스킹은 누구나 볼 수 있다. 버스킹 문화는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인 셈이다. 버스킹 문화를 활성화하는데 앞장서 문화민주주의 실현에 이바지 하고 싶다. 이뤄진다면 너무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다.

- 어떤 예술경영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나는 평소 “사람이 좋다. 직원들 잘 챙긴다. 막걸리 좋아한다.” 이렇게 소문이 나 있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는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인정 받는 것도 좋아해서, 따뜻하면서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