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이경은의 ‘올더월즈(ALL THE WORLD`S)’와 스트리트댄서들
[이근수의 무용평론] 이경은의 ‘올더월즈(ALL THE WORLD`S)’와 스트리트댄서들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5.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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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올더월즈(ALL THE WORLD‘S)’는 리케이댄스(이경은)의 2024년 신작이다. 본래의 제목인 'All the World is Dancing'을 줄인 말이다. 온 세상이 춤이니 세상사람 모두 춤꾼이고 우리가 사는 곳 어디나 춤 무대가 된다는 것이 작품의 모티프고 2024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제목의 어원을 ‘온 세상이 무대(All the World is a Stage)’라고 표현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사람의 일생을 7단계로 나누고 삶이 펼쳐지는 인간세계를 연극의 무대로, 사람들 모두를 무대에서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 보았다. ‘올더월즈’(5.10~12, 대학로극장 쿼드)는 학습기, 사춘기, 입신기(군인), 출세기(판사), 노화기와 소멸기로 구분된 셰익스피어의 7단계 삶의 과정을 춤추기(dancing)란 하나의 현상으로 집약해놓았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10명 무용수가 무대 프론트에 늘어서 있다. 상수에서 하수까지 한 줄로 길게 늘어선 그들의 시선은 제각각 다른 곳을 응시한다. 서 있는 뒤 무대 바닥에서 샘물이 솟아오르듯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연못이 형성된다. 탄생의 모습이고 유아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듯이 한 줄을 이루며 우에서 좌로 이동해간다.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나가던 원형은 사각형으로 바뀌고 다시 마름모꼴로, 이윽고 물결치는 모양으로 변하는 등 진화를 계속한다. 바닥의 색깔도 계속 변한다. 좌우편으로 갈라져 무대 주변에 무용수들이 자리 잡았다. 브레이크댄서들이 차례로 무대 가운데로 등장해서 개성적인 춤 새를 보여준다. 둘러앉은 무용수들은 앞에 나선 그들의 춤 새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며 춤꾼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한다. 호기심과 의아함과 부러움이 교차한다고 할까, 머리를 바닥에 대면 그들도 머리를 떨어뜨리고 몸을 비틀면 함께 비튼다. 몸은 떨어져 있되 생각은 하나인 것처럼 그들은 학습하고 성장한다. 앉았던 무용수들이 일어나 짝을 지어 춤추기 시작한다. 사춘기에 들어선 그들이 사랑을 알게 되는 단계인 듯하다. ‘BOK’(2022)에서 흥겨운 무대를 연출했던 현대무용수들과 ‘브레이킹’(2021)에서 협업했던 스트리트댄서 들이 뒤섞여 움직인다.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춤은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기도 하고 로봇처럼 절도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술 취한 듯 흐트러진 모습도 보인다. 이경은에겐 두 장르의 구별이 무의미해 보인다. 온 세상이 춤이란 메시지와 브레이크댄서들의 자유분방한 이미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고 싶은 기획 의도가 엿보인다. 

온 세상이 춤이란 메시지와 브레이크댄스의 자유분방한 이미지

시간은 흐르고 무대 환경이 바뀐다. 백 스테이지 벽면에 영상이 펼쳐진다. 바닥과 벽이 맛 닿는 모서리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점이다. 그 모호한 지점에 무용수들이 몰리고 실재하는 무용수와 스크린 속 무용수들 간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1998년 문예회관(현재의 아르코 대극장)에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던 ‘호세 몽탈보’의 ‘파라다이스(Paradise)’가 연상되는 초현실적인 영상기술이다. 바닥과 양면의 벽, 스크린으로 이어지는 멀티버스 무대에 환상적인 조명이 더해지며 무대와 사람의 경계조차 사라져버렸다. 무당벌레의 화려한 등가죽처럼 검은 배경에 찍히는 하얀 점들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공간과 시간의 경계는 사라지고 사람은 점이 되어 흩어져간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도 이렇게 올 것이다.  

이경은은 “자유롭고 싶을 때 춤을 춘다.”라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춤의 자유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라고도 말한다. ‘브레이킹’에서 만났던 스트리트댄서 들의 자유분방함이 ‘자유 그 자체인 춤’을 만들고 싶은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으로 그녀는 기대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배우이고 모든 곳이 무대이듯 스트리트댄서와 현대 무용수가 같은 무대에 설 수는 있지만, 장르 간 경계의 사라짐이 곧 자유로운 무대를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브레이킹’에서의 자유로움과 ‘BOK’에서의 흥겨움이 하나로 통합된 모습을 ‘올더월즈’의 다음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정교한 안무와 연출(조은진)로 ’온 세상이 춤‘이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김장연의 영상과 류백희의 조명을 통해 관객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남겨주었다는 것은 이경은 춤의 또 하나의 진보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