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무’와 동행해온 예술… 목조건축,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다 ②
[기획] ‘나무’와 동행해온 예술… 목조건축,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다 ②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5.29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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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전국 지자체 최초로 5층 목조건축물 짓는다
전세계서 다시 주목받는 목조건축
‘공공건축물’내 목재이용과 관련된 법제화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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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삶의 터전, 숲과 나무

우리 선조들은 오래 전부터 주거 공간에서도 나무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 동아시아의 건축은 전통적으로 목재를 주된 재료로 삼아 공간을 구축해 왔으며 그 역사는 적어도 5천년 이상 시간의 단절이 없이 지속됐다. 이는 유기적 조형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 자연관과도 연결된다.

▲한옥에서 보는 차경. 푸르른 녹음이 창 밖으로 우거진 풍경이 들어온다.
▲한옥에서 보는 차경. 푸르른 녹음이 창 밖으로 우거진 풍경이 들어온다.

천득염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석좌교수는 “정자(亭子)와 같은 목조 건축물은 차경의 원리에 주목해, 건축 계획을 할 때에도 인위적인 기교를 쓰지 않고 자연적인 미를 나타내도록 했다”라며, “기둥을 다듬을 때도 자연적인 형상에 따라서 다듬게 되므로 때에 따라서는 기둥하단 일부에 원목의 자연적인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사용한 경우가 정교하게 잘 지어진 건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재료의 가공과 자연의 상태로 된 부재를 사용한 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조형의 근본으로 한 것임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한다.

고 주남철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명예교수는 “우리 민족은 식재를 함에 있어서도 늘 푸른 나무들을 심지 않고 철 따라 움트고 잎이 무성하고 낙엽지면 눈꽃이 만발하는 활엽수들을 심는다. 이것은 사계절이 분명하여 계절의 흐름에 따라 수경과 경관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러운 정원을 꾸미려고 하는 조형의식의 발로다”라고 말했다. 나무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조형인 셈이다.

근대에 접어들어서도 나무와 동행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 있어왔다. 1950년대, 뒤늦게 한국에 전문 분야로서 도입된 ‘조경’에서도 나무는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지난달, 식목일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개막, 전시장과 미술관 마당을 싱그러운 녹색빛으로 물들였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적인 조경(造景)의 개념을 정착시킨 1세대 조경가인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해 조경 예술이 ‘꽃과 나무로 땅에 써내려가는 시’와 같은 지속가능한 예술임을 현시했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영선 조경가는 마찬가지로 우리 고유한 차경의 원리와 정자 문화를 강조했다.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한 계단식의 뒷뜰이나, '어디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차경의 원리에 주목한 정자 등 정원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온 전문가들도 우리 전통 조경에 놀라고는 한다”는 것이다.

▲정영선 조경가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선유도 공원
▲정영선 조경가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선유도 공원

건축재료로서의 목재

한동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목재는 비록 근대에 들어서 철, 콘크리트, 유리 등 다양한 신재료의 등장으로 과거처럼 건축구조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최근 세계 각국에서 대두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와 연결돼 녹색 환경, 친환경, 그린환경, 지속가능, 생태, 저탄소 등으로 불리는 건축과 자연환경의 결합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목재는 철이나 콘크리트보다 훨씬 강한 고성능 건축 자재다. 목재의 비강도는 콘크리트의 225배, 철의 4.4배이며, 압축강도는 콘크리트의 9.5배, 철의 2.1배에 이른다. 1m³당 약 1t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탄소통조림’이라 불리우는 목재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건축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산림을 통해 탄소 중립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장윤성 박사는 “목재의 사용량이 증가하면 목조 건축물의 탄소 저장 효과가 증가한다. 단열이나, 구조 성능 등에서 동일 기능을 가진 콘크리트와 목재로 같은 건물을 지었다고 가정한다면, 목재 건축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콘크리트 건축물의 1/2배까지 감소한다”라고 설명한다.

조습능(燥濕能)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김외정 강원대학교 산림환경과학대학 연구교수의 말에 따르면, 목재는 주성분인 셀룰로오스가 물과 친화성이 크기 때문에 생명체가 숨 쉬는 것처럼 주변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이고 또 배출한다. 구조재와 마감재가 목재인 목조주택은 실내 공기보다 수분을 함유할 수 있는 능력이 15배 정도 크다. 

목재는 수많은 세포 다발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세포는 공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외부 열 전달도 훨씬 작다. 벽돌은 목재보다 6배, 유리창은 8배, 콘크리트 15배, 철재 390배, 알루미늄 1700배의 열전달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목재표면에 결로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으며, 생기더라도 제습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목재 스스로 잘 흡수한다.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조남호 건축사에 따르면 목구조는 다른 자재를 사용한 건축물보다 공정이 간단하고 목수가 일괄적으로 자재를 손질하기에 경제적이기도 하다. 선 속성의 목재가 가공을 거치면 콘크리트와 같이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아울러, 예술의 영역에 있던 ‘옻칠’이 벽체 마감 등에 이용되며 주거공간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칠기 등의 옻칠 공예에 쓰이는 천연도료인 옻나무 칠액 (漆液)에는 방부제이자 살충제로서의 기능 말고도, 항암, 간해독 등의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옻나무의 주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s)’은 시판 중인 항암제(Tetraplatin)에 비해 항암효과가 3.4배가량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으며, 마찬가지로 칠액을 이루는 성분인 ‘플라보노이드(Flavonoids)’의 경우 항암효과와 간 보호 효과, 숙취 해소 등 다양한 약리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스페인 남부도시 세비야에 위치한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인 메트로폴 파라솔
▲스페인 남부도시 세비야에 위치한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인 메트로폴 파라솔

목재친화도시, 세계적 움직임

해외에서는 일찍이 이러한 목재의 순기능에 주목해 목재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김외정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건축 재료는 언젠가는 고갈될 유한자원이지만, 목재는 지속 생산 가능한 순환성 자원이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은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과 저탄소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어 유망한 탄소중립 산업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다. 

EU는 2021년 화석자원 기반에서 산림 기반으로 전환하도록 입법안을 개선했으며, EU 국가들은 물론 시공 주택의 90%가 목조주택인 미국, 캐나다, EU 주요국 등에서 법적 구속력 있는 목조건축 촉진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2009년부터 ‘지속가능한 도시 계획’을 시행중인 프랑스는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바닥면적 1㎡당 최소 0.2㎥의 목재를 사용하는 의무쿼터제를 시행해오다가, 2022년부터는 신축하는 공공건축물의 50% 이상을 목재 또는 지속이 가능한 재료로 조성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역시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에서 인증된 목재이용에 대한 녹색건축인증 가점제도를 운용하면서 간접적으로 건축물에 대한 목재이용을 촉진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는 2009년부터 공공건축물의 신축·증축 시 목조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목재우선법(Wood First Act)을 시행하고 있다.

목조주택 비율이 50%에 달하는 일본도 2010년 ‘공공건축물 등의 목재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 모든 저층 공공건축물을 목조로 전환하도록 했다. 일본은 1만8,000여 명의 올림픽·패럴림픽 선수단이 묵는 도쿄올림픽 선수촌 빌리지가 일본 63개 지자체에서 기부 받은 4만여 개 목재로 지어졌을 정도로 목조건축이 활성화되어 있다.

▲Tokyo 2020 Olympic Village Plaza

한국 목조건축의 현위치는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목조건축은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주거양식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을 거치며 목재자원이 고갈되고, 인구의 도시 집중에 따라 엄청난 양의 주택수요가 발생하면서 목재를 대체하는 시멘트가 주요 건축재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규모 주거단지의 급속한 공급을 위한 건축재료의 변화는 당연한 추세로, ‘아파트’라는 고층 집단 주거양식의 확산으로 목재가 주요 건축재료였던 전통은 사라지게 된다.

현대에 들어서도 곳곳에 남아있는 한옥들이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목재를 건축물의 주된 재료로 삼아왔음을 말해주고 있지만, 벌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건축법 상의 규제로 국내에서 지상 5층 이상 목조건축물을 건립한 사례는 드물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건축’이 오늘날 건축 분야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여러차례 대두되면서 정부와 국내 건축업계 역시 목구조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목재의 지속가능한 법률’에 따라 목재이용 종합계획을 5년 주기로 수립하여 국산 목재이용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한옥등자산법)’을 제정해, 주요 구조가 기둥, 보 및 한식 지붕틀로 된 목구조 건축물인 한옥과 현대적 재료와 기술로 건축한 현대식 한옥은 기술지원 보조금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공공건축물 중 목조를 일정 비율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법률도 검토 단계에 있다.

2020년에는 목조건축의 이점에 주목해 ‘건축물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목조건축물의 높이와 연면적을 각각 18m 이하, 6000m² 이하로 제한하던 규제를 폐지했다. 또한, 기존 목구조 건축물 구조재가 1시간 내화구조에서(4층까지만 가능)에서 2시간 내화구조로 인정되면서, 목조건축물은 최대 지상 12층 또는 높이 50m까지 축조가 가능해져 우리나라도 목조빌딩 시대를 열어갈 수 있게 됐다.

지난 9일, 서울시 종로구(구청장 정문헌)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지상 5층 규모의 목조건축물을 짓는 ‘효제동 목조건축 시범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목재친화도시를 구현하고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기 위함이다. 구는 지난해에도 종로구 신문로에 12층 규모의 목조건축물 건립 복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밖에도 ‘민간·공공 목조건축 절차 관련 가이드라인’ 개발, ‘종로구 목조건축 전문 자문단’ 구성, ‘하반기 전문가 토론회’ 개최 등을 토대로 목조건축 활성화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산림청 역시 국산목재 이용 촉진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공공건축물의 목구조화와 목재친화도시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국립자연휴양림, 국유림관리소 등 소속기관 청사를 목조로 신축하고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한 목재특화거리, 목재도시 등 정부·공공기관·지자체를 대상으로 공공 목조건축물의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올해 완공을 목표로 국내 최고층인 7층 목구조로 ‘산림복지종합교육센터’를 조성 중이며, 내년부터 연간 공공 건축물의 20%를 목조건축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지어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종합연구동. ⓒ박영채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지어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종합연구동. ⓒ박영채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길

목조건축의 규모 제한이 완화되면서 우리나라에도 고층과 적층 목조건축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외정 교수는 “우리나라 건축계에 주어진 NDC 2030(2030년까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 32.8%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산림청, 국토부, 교육부 등 각 정부 부처에서 목조 공공건축물 발주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산목재 가공사업 기반을 확충하고 관련 건축 법령을 탄력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면 우리나라에도 탄소중립 실현을 견인하는 목조건축 붐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손동원 국립산림과학원 목재이용연구과장 역시 “보다 실효성있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외사례처럼 ‘공공건축물’내 목재이용과 관련된 법제화를 적극 추진하고 부처간의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목재이용과 목재산업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손동원 연구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1960~1970년대 산림녹화 시기에 국민이 함께 심었던 나무들이 비로소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성공적인 산림녹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입목축적은 142㎥/ha로 OECD 평균인 121㎥/ha보다 높다. 그로 인해 국내 목재산업 규모도 42조 규모로 성장했지만, 목재 자급률은 16% 수준에 머물고 있어 산림자원의 선순환과 국산 목재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공공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말처럼, 오랜 시간 숭배의 대상으로서, 삶의 터전으로서, 예술품으로서, 주거 공간으로서 그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 곁에 머물러온 나무. 이제는 함께 걸어온 오랜 동행길의 중턱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목재문화의 전통을 꽃피워 푸르른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