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예민한 자들이 전하는 위로와 치유…국립창극단 <만신: 페이퍼 샤먼>
[현장스케치] 예민한 자들이 전하는 위로와 치유…국립창극단 <만신: 페이퍼 샤먼>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5.30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은선 단장, 부임 후 첫 창작 신작
전통 판소리부터 무가(巫歌), 이국적 토속음악 더해진 ‘신(新) 굿판’
6.26~30,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한국의 무속문화와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국립창극단의 신작 <만신: 페이퍼 샤먼>이 내달 26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국립창극단 <만신: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박경민 단원, 박칼린 연출, 유은선 예술감독 겸 단장, 유태평양 작창보, 김우정 단원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만신: 페이퍼 샤먼>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박경민 단원, 박칼린 연출, 유은선 예술감독 겸 단장, 유태평양 작창보, 김우정 단원 ⓒ국립극장

<만신 : 페이퍼 샤먼>은 영험한 힘을 지닌 주인공 ‘실’을 통해 만신(萬神ㆍ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의 특별한 삶과 그들의 소명의식을 이야기한다. 한국 무녀뿐 아니라 5개 대륙의 샤먼이 등장하는 큰 서사를 갖췄다. 창극은 여러 명의 소리꾼이 창(唱)으로 이야기를 엮는 한국 고유의 음악극이다. 1막에서는 남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되기까지를, 2막에서는 만신이 된 ‘실’이 오대륙 샤먼과 함께하는 여정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각 대륙의 비극과 고통을 다양한 형태의 굿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공연 개막에 앞서, 지난 29일 오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만신: 페이퍼샤먼’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날 자리에는 유은선 예술감독 겸 단장과 박칼린 연출, 국립창극단 유태평양 작창보, 김우정, 박경민 단원이 함께했다.

유은선 단장은 “지난해 4월에 부임해 이제 1년을 막 넘겼다. 작년부터 국립창극단이 해야 할 작품을 많이 고민했고, 첫 번째로 우리 전통적인 이야기를 창극에 담아보고자 했다”라며 “‘페이퍼 샤먼’은 신작으로 올리는 첫 작품이다. 이를 시작으로, 창극의 다양한 실험적인 요소들을 더 정착시키고 우리 자체의 이야기가 더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연출과 극본, 음악감독을 겸하는 박칼린은 미국에서 첼로, 한국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하고 故 박동진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운 바 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며 집이나 주변에서 굿을 자연스럽게 접하기도 했다. 박칼린은 “(박동진) 스승님께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전부 익히지 않았으면 밖에 나가 판소리를 배웠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아직도 소리를 배웠다고 말하기 매우 조심스럽다. 국악은 0.0001% 정도 공부했다”라며 “‘페이퍼 샤먼’은 분명히 한국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무속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한 예민한 인간이 태어나서 힘을 발견해나가고 그 업을 받드는 과정을 그린다. 나아가 어떻게 사람들과 자연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보탬이 될지 고민하는 과정, 소박한 기도와 밤으로 수많은 넋을 달래는 과정을 그린다”라고 작품의 의도를 전했다. 

▲국립창극단 <만신: 페이퍼 샤먼> 연습 현장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만신: 페이퍼 샤먼> 연습 현장 ⓒ국립극장

대명창 안숙선이 작창,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 유태평양은 작창보를 맡았다. 판소리‧민요‧민속악을 근간으로 새롭게 작창한 소리를 중심에 두고, 무가(巫歌)와 여러 문화권의 토속음악을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안 명창은 전반적인 작창 방향을 잡고, 유태평양은 이 작품의 연출이자 음악감독인 박칼린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소리를 구체화했다. 판소리 본연의 장단·음계 등에 충실하면서도 이야기에 담긴 상황과 정서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다양한 부침새를 활용했다. 또한 우리 전통 선율에 아프리카 전통음악 등 이국적인 리듬을 녹여내 보다 참신한 소리를 짜는 데 주력했다.

국립창극단 단원이기도 한 유태평양은 안숙선 선생을 도와 작창에 처음으로 참여한다. 유태평양은 “첫 공식적인 작품이고 좋은 프로덕션과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에서 할 수 있어 영광이다. 더군다나 안숙선 선생님 밑에서 우리 국악의 장르를 함께 도와서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듣는 관객은 한국적인 느낌을 받지만, 그 안에서 나라별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음악들”이라고 작품을 소개하며 “오대륙의 음악적인 특색이 전부 달라, 처음엔 각기 다른 이 음악들이 통일성을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업을 해보니, 우리의 전통음악과 다른 나라의 전통음악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 떨어졌다. 어떤 특별한 장치가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전체가 하나의 새로운 국악처럼 이질감이 없어 나라별 특색이 묻힐까 걱정이 될 정도”라고 전했다. 

굿에 담긴 한국적인 미학을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 무대는 언덕‧개울‧나무 등의 자연적 요소로 이뤄진다. 영상‧조명‧의상‧소품 등을 활용해 북유럽 숲부터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다양하게 변화하는 공간을 표현할 예정이다. 

▲국립창극단 <만신 : 페이퍼 샤먼> 무대모형 ©박동우
▲국립창극단 <만신 : 페이퍼 샤먼> 무대모형 ©박동우

‘페이퍼 샤먼’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종이를 활용한 무대도 주목할 만하다. 굿에서 사용되는 무구(巫具)의 일부를 종이로 만들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박칼린 연출은 “작품을 처음 창작할 때부터 ‘종이’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종이는 글씨를 쓸 수도, 역사를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무에서 오고, 태우면 사라지기도 한다”라며 “변질되고 빨리 없어지는 이 예민한 속성이 샤먼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무대에 종이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고 싶었으나, 예산 문제로 양껏 구현하지 못해 아쉽다. 다음에 재연 무대를 올릴 기회가 된다면, 종이로 만든 의상을 찢으면서 안무를 하는 등 다양한 표현을 해보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번 신작은 만신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무가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극 중에서 ‘실’과 신어머니가 부르는 무가는 이해경 만신에게 받은 원전 텍스트와 무속을 연구하는 이용식 전남대 교수의 연구 자료 등을 기반으로 한다. 삼신(아기를 점지하는 신)에게 비는 굿, 액을 막는 굿, 내림굿, 씻김굿 등 여러 종류의 무가를 무대화해 선보인다. 

'페이퍼 샤먼'에는 신예부터 중견까지 국립창극단 전 단원이 총출동한다. 강신무 ‘실’ 역에는 김우정과 박경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치유사의 숲에서 막을 여는 북유럽 샤먼 ‘이렌’ 역의 김금미를 비롯해 각 대륙의 샤먼, DMZ 동물 등 시공간을 넘나드는 색다른 캐릭터로 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