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악한 공주’의 재림, 국립극단 <햄릿>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악한 공주’의 재림, 국립극단 <햄릿>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5.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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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9,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악한 공주의 재림, 증오에 찬 문제작,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 <햄릿>이 마침내 무대로 돌아온다. 국립극단은 오는 7월 5일부터 29일까지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의 <햄릿>(각색 정진새, 윤색·연출 부새롬)을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다. 

▲국립극단 <햄릿>(2024) 홍보 이미지
▲국립극단 <햄릿>(2024) 홍보 이미지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에서 공개됐던 <햄릿>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극의 전개와 압도적인 미장센, 광기로 치부할 만큼 파격적인 연기로 평단의 호평에 승선하며 끊임없이 관객의 재공연 요청을 받아왔다. 화면을 넘어 드디어 관객 앞에 서는 <햄릿>은 17세기 원작이 쓰인 당시 사회 관습과 통념을 완전히 벗어내고 현대적인 얼굴로 분했다.

연출가 부새롬과 각색가 정진새는 원작이 가진 위상과 가치에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발단으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햄릿>을 탄생시켰다. 420여 년 전의 이야기는 정교한 심리묘사와 과감한 시대성의 반영, 창의적인 극작과 연출로 현 한국 연극계를 견인하는 두 예술가의 손과 머릿속에서 집요하게 해체되어 오늘날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정진새 각색가는 “단지 원작이 대단하다는 이유로 이해가 되지 않는 연극을 수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연극 본연의 매력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동시대의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여부를 기준으로 원작 숭배자와 타협 없이 마음껏 각색을 진행했다”라고 밝혔다.

‘햄릿’의 성별 변화 역시 흥미롭다. 원작이 탄생한 당시 ‘당연히’ 남성이었던 왕위계승자 햄릿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성별은 변했지만 햄릿 공주는 여전히 ‘당연한’ 왕위계승자이자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이다. 햄릿의 상대역인 ‘오필리어’는 남성으로 바뀌었고 ‘길덴스턴’, ‘호레이쇼’, ‘마셀러스’ 등 햄릿 측근 인물들에도 적절히 여성을 배치했다. 성별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잊게 하는 배우들의 농도 짙은 연기는 성별을 떠나 단지 한 인간으로서 인물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작품은 선과 악의 구분지도 제거했다. 햄릿의 대척점에 서 있는 ‘클로디어스’를 포함해 작중 인물들이 행하는 선택과 결단을 완전히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 없도록 각 인물의 행동마다 적절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좇아가는데 나름의 명분과 사리를 부여한 극화는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림으로써, 극장을 떠나는 관객의 발걸음에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눌어붙도록 한다.

여성 햄릿을 내세운 데 대해 부 연출은 “햄릿이 여성이어도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왕권을 갖고 싶고, 복수하고 싶고, 남성과 같은 이유들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나중에 이 각색본으로 누군가 다시 공연한다고 했을 때, 햄릿을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관계없다. 그것이 나와 각색가가 의도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국립극단 <햄릿>(2024) 홍보 이미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이봉련이 ‘햄릿’ 공주를 맡아 복수의 칼을 겨눈다. 135분에 달하는 공연 시간 동안 은밀하고도 광기 어린 연기로 감정을 쏟아붓는 그의 연기는 익숙하면서도 완벽히 새로운 ‘햄릿’의 탄생을 알린다. ‘사느냐, 죽느냐’ 휘몰아치는 폭풍우가 지나가고 파국의 결말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긴 꿈에서 깨어난 듯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햄릿을 추방하고, 오필리어를 미쳐 죽게 만들며, 레어티즈의 복수심을 유발해 작품의 플롯을 비극적 결말로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의 ‘폴로니어스’는 배우 김용준이 연기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심적으로 매우 괴로워하던 햄릿을 고립시킨 가장 큰 원인이자 자신의 죽음으로 햄릿에게 클로디어스를 죽일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는 왕비 ‘거트루드’ 역은 배우 성여진이 맡았다. 이외에도 류원준(오필리어 역), 안창현(레어티즈 역), 신정원(오즈릭 역), 김유민(호레이쇼 역), 김별(마셀러스 역), 김정화(버나도 역), 이승헌(로젠크란츠 역), 허이레(길덴스텐 역), 노기용(레날도 역) 등이 출연한다.

한편, <햄릿>은 내달 7일부터 국립극단과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국립극단 유료회원이라면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서 6월 5일부터 앞선 예매가 가능하다.

 7월 19일부터 21일까지는 한국수어통역과 음성해설, 한글자막, 이동지원 등을 지원하는 접근성 회차를 운영한다. 7월 14일 공연 종료 후에는 정진새 각색가, 부새롬 연출가, 박상봉 무대디자이너, 이봉련 배우가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서울 공연 종료 후에는 세종예술의전당(8월 9일~10일), 대구 수성아트피아(8월 16일~17일)에서 지역공연을 이어간다.(문의 1644-2003/3만원~6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