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국악진흥법 제정에 즈음하여⓵ 국악진흥법, 누대에 집성된 이성  
[성기숙의 문화읽기]국악진흥법 제정에 즈음하여⓵ 국악진흥법, 누대에 집성된 이성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4.06.0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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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진흥법 제정은 시대적 요청의 산물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로마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던 키케로(기원전 106~기원전 43)는 저서 『법률론』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법에서 출발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최상의 법에서 참다운 법의 원천이 형성된다”고 간파했다. 르네상스 시기 신(神)으로부터 탈주한 인문주의자들은 인간 이성의 합리성을 재발견한 감흥과 찬탄으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조적인 학문 풍토를 벗어났다. 이러한 흐름은 법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학문과 예술 전 분야로 확산되었다(한동일, 『법으로 읽는 유럽사』, 글항아리, 2020).

르네상스기 종교에 함몰된 ‘중세의 그림자’는 마침내 사리지고, 문학과 예술이 화려하게 만개된 저변에는 이처럼 법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국악발전을 위해  제도 및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임은 불문가지다. 제도 및 정책은 곧 법의 제정에서 출발한다. 그간 국악 및 국악문화산업 분야는 독자적인 법이 부재한 가운데 문화재보호법(1962), 문화예술진흥법(1972)에 의존해 왔다. 때문에 국악 및 국악문화산업 분야의 발전은 더디게 진행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9조에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찍이 문화국가를 표방했음에도 그동안 국악진흥을 위한 독자적인 개별법이 없었기에 늘 아쉬움이 컸다. 그런 가운데, 2023년 6월 30일 국악진흥법(임오경 민주당 국회의원 대표발의)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악진흥법이 제정됨으로써 국악의 보전·계승 및 창작지원, 국악문화산업의 진흥, 국제교류 및 해외진출 활성화 등 국악발전과 진흥을 위한 법적 지원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키케로의 언급처럼 비로소 법에서 출발하는 제도 및 정책 구현이라는 ‘현명한’ 모색이 가능해진 셈이다. 

국악진흥법, 그 경계 넘어

국악진흥법 제1조(목적)에 명시되어 있듯이, 전통공연예술 분야는 “국악을 보전·계승하고 이를 육성·진흥하며 국악문화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조 1항에서 정의하고 있는 바, “국악이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 활동인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 등과 이를 재해석·재창작한 공연예술을 말한다”.

주지하듯, 國樂(국악)은 말 그대로 ‘나라의 음악’을 의미하며, 전통음악·한국음악·우리음악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악진흥법은 그 명칭에서 보듯 국악을 상위개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하위에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를 두고 있다. 국악진흥법에 명시된 국악이란,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 등을 포함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전통공연예술’이라 부르는 용어와 중첩된다.

현재 학계 혹은 예술현장에서는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 등을 통털어 ‘전통공연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고 있다. 국악진흥법은 제정의 당위성 및 효용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용어 및 개념상 실효성에 다소 의문이 남는다. 때문에 향후 국악진흥법과 같은 맥락에서 무용진흥법, 연극진흥법 등 장르별로 독자적인 개별법이 제정될 경우, 중복성으로 인한 약간의 혼란도 예상된다. 관련하여 지난 2007년 문화관광부 전통예술과에서 전통공연예술진흥법 제정을 위해 TF가 구성되어 입법추진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으나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국악진흥법 제정에 즈음하여 그 경계 넘어로 시선을 확장하여 최근에 제정된 전통문화의 진흥 및 육성과 관련된 여타의 법령 또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지역문화진흥법(2022),성균관·향교·서원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성균관법 2023), 전통문화산업진흥법(2023), 국가유산기본법(2023) 등이 그것이다.

우선,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 및 문화국가 실현을 위해 제정되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지원하는 법령이기 때문에 국악진흥법과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지역문화진흥법 제14조~17조에 따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주도의 전국 ‘대한민국문화도시 조성사업’을 통한 지역 고유의 특색 있는 문화자원 및 향토성에 토대한 전통공연예술의 전승 및 창조적 계승을 통한 가치 창출은 단연 주목된다.

다음으로, 성균관법은 성균관·향교·서원이 가진 유형·무형의 문화를 체계적으로 계승·발전하고, 지역공동체 회복을 통한 민족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성균관·향교·서원을 중심으로 전승된 유·무형 유산을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게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시하고 있다. 성균관법은 시행령이 발효되었지만, 향후 성균관·향교·서원 발전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에 방점이 있다.

한편, 전통문화산업진흥법도 관심가져야 할 법령이다. 전통문화산업의 지원 및 육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전통문화산업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통하여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 “전통문화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산으로 보존하고 개발할 가치가 있는 전통무용·전통음악·전통미술 등의 전통예술과 한복 등 의생활, 식생활, 한지, 전통놀이 등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실생활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통문화산업이란, 전통문화상품의 기획·개발·유통·소비 등과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하는 산업을 말한다. 문체부는 오는 9월 전통문화산업진흥법의 발효를 앞두고 시행령 제정을 통해 전통문화의 가치를 확산하고, 각 분야별 분절적으로 육성중인 전통문화산업을 종합적으로 진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책 수립을 구상하고 있다. 

국가유산기본법과 국악진흥법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바로 국가유산청과 관련된 법이라 할 수 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기존 문화재청에서 국가유산청으로 조직이 개편되어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 있다. ‘문화재’(文化財)라는 개념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인 ‘유산’(遺産, heritage) 개념이 적용된 결과다. 국가유산은 크게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구분된다. 무형유산은 전통예술, 기술, 의식주 생활관습, 민간신앙, 의식 등을 포함한다. 한편 기존의 국가무형문화재는 국가무형유산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다루는 범위 또한 확대되었다.

무엇보다 국가유산 체계에서의 정책 방향의 전환이 주목된다. 기존 문화재청 시절 보존·규제 중심의 정책은 활용정책으로 전환되어 국가유산을 매개로하는 콘텐츠나 상품개발 제작 등 국가유산 산업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국가유산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 업무를 전담하는 국가유산산업육성팀 신설 및 K-헤리티지 시스템 구축을 통해 미래가치 품은 유산을 보존하며, 나아가 비지정 무형유산도 아우른다는 방침이다.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무형유산의 정의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며, 공동체 집단과 역사·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된 무형의 문화적 유산 중 다음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⓵ 전통적인 공연·예술 ⓸ 전통 구전 및 표현 ⓻ 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국악진흥법에서 다루고 있는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 분야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이상에서 보듯, 국가유산청의 무형유산 관련 정책은 국악을 보전·계승 및 육성·진흥하고 국악문화산업을 활성화 한다는데 초점을 둔 국악진흥법 제정 목적 및 그 내용과 상당부분 부합된다. 국악진흥법 제4조(다른 법률과의 관계)에는 “국악 진흥 및 국악문화산업의 활성화에 관하여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라고 되어 있다.

국악진흥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여타 법령에 대한 심층 검토와 더불어 문체부 산하 유관기관과 국가유산청의 무형유산 정책과의 역할 분담, 지원범위 등에 대한 효율적 방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나아가 국악진흥법의 경계 혹은 그 주변에 포진한 여타 법령과의 연계를 통한 시너지 및 가치 확산 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法 : 누대에 집성된 이성, 생동하는 힘

우리나라의 법 제도는 대륙법(즉 유럽법) 계통으로 귀결된다. 대륙법은 옛 로마법 정신에 기초한다. 유럽의 법도 시대 흐름에 따라 수 차례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로마제국의 왕정 폐지 후 공화정이 수립되는 기원전 510년경, 종교와 그리스도교적 윤리에 법률적 성격이 부여된 중세시대, 종교와 법이 분리되는 역사적 사건인 아메리카대륙의 발견(1492년) 등 몇 차례 뚜렷한 분기점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계의 중심은 더 이상 신(神)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이성이라는 자각을 갖게 되었다. 인문주의의 부활은 법과 종교에 대한 새로운 눈뜸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법은 ‘누대(累代)에 집성된 이성’(에드먼드 버크), 혹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생동하는 힘’(루돌프 폰 예링)으로 인식되었다.

알다시피, 법은 문화의 일부이며 역사적 산물이다. 앞서 언급된 지역문화진흥법(2022), 성균관·향교·서원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2023), 전통문화산업진흥법(2023), 국가유산기본법(2023) 그리고 국악진흥법(2023)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대적 요청에 따른 역사적 산물이라 하겠다.

즉 다시 말해, 최근에 제정된 지역문화와 국악 및 전통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일렬의 법들은 대한민국이 처한 오늘의 시대상황과 문화예술계의 거대담론이 투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당위론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저출산 위기 속 인구소멸,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역붕괴 위기,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따른 지역문화 격차 해소, 전통문화의 보전 전승 및 현대화·산업화·세계화, 한류의 콘텐츠화 및 K-컬쳐의 세계적 확산, 문화원형과 인문정신의 가치 창출 필요성 등을 곱씹게 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法’(법 법)이라는 한자는 ‘水’(물 수) 변에 ‘간다는 것’을 뜻하는 ‘去’(갈거)가 합해진 것이다. 여기엔 “물과 같이 흐르는 것처럼 올바른 세상의 도리”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법이라는 글자의 유래와 상징에 물은 단연 돋보인다. 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공정·공평의 의미로 읽힌다.

또한 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며, 이는 곧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고정·불변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새로 제정된 국악진흥법은 완벽하다고 볼 수 없으며, 부분적으로 아쉬운 대목도 없지 않다. 법(法)이라는 어원에서 간파되듯이, 국악진흥법은 급변하는 예술환경에 따라 머지않은 미래 ‘개정’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와도 상통한다.

주지하듯, 국악진흥법은 민족의 혼과 얼, 정신이 담긴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의 보전·전승 및 육성·진흥을 위한 교두보라 할 수 있다. 국악진흥법이 제정됨으로써 한국의 전통공연예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국악계의 오랜 노력과 헌신이 일궈낸 값진 쾌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여기’, 국악진흥법이 출발 선상에 서 있다는 점이다. 국악진흥법이 이른바, ‘누대에 집성된 이성’ 혹은 ‘생동하는 힘’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선은 적극적인 관심이 요청된다. 문체부는 오는 7월 26일 국악진흥법의 시행을 앞두고 그 하위법령으로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과 국악진흥기본계획 수립을 마련하고 있다. 보다 실효성 있는 국악진흥법이 되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의 노력과 더불어 전통공연예술계 전문가들의 세심한 관심과 의견 개진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