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호암 이병철과 國唱(국창) 조상현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호암 이병철과 國唱(국창) 조상현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 승인 2024.06.19 1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24년 5월 23일, 조상현 선생님을 뵈었다. 국창(國唱)과 함께 2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국창은 여러 얘기를 했다. 호암 이병철(1910.2.12.~1987.11.19)의 만난 얘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서소문에 있는 TBC-TV에 녹화하러 갔을 때, 스튜디오에 웬 점잖은 노인이 앉아있었다. 아무도 그를 통제하지 않아서 다소 이상히 여겼다.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생전 이병철 회장이 조상현 명창의 소리를 특히 좋아했던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1970년 첫 방송, 1972년 방송대상 수상 

1970년 10월 12일 밤 8시 45분, TBC 동양방송의 <TBC향연>이 첫 전파를 탔다. <TBC향연>의 타이틀은 기억하는가? 커다란 향로에서 향불이 계속 올라온다. 영화제작사 신필름(신상옥)의 타이틀과 비슷하다. 당시 저질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편성했다. 처음에는 국악과 함께 만담, 옛 가요도 함께 편성했다. 민간방송으로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엔 고복수, 황금심과 같은 가수도 출연했으나, 점차 ’국악과 고전무용 전문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호암은 국악애호가였다. 민간방송에서 국악을 골든 시간대에서 방송하기 시작했고, 광고가 붙지 않는 관계로 심야시간대에 방송하기도 했지만, 호암은 동양방송의 품격있는 대표 프로그램을 <TBC향연>으로 생각했다. 1972년 10월 2일, 제9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TBC향연>은 우수상을 받았다. 텔레비전 국악 프로그램으로서 최고의 영예였다. 

<TBC향연>엔 단골출연자가 많았다. 판소리는 김소희, 박동진, 조상현, 안향연, 춤(고전무용)은 김백봉, 최현, 임미자 무용단, 여기에 이은관의 배뱅이굿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초창기에는 박초월 명창과 함께 '김광식 국악단'이 출연을 했으나, 아쉽게도 김광식의 타계와 함께 ’김광식 국악단‘은 와해 되었다. 

호암이 사랑한 신쾌동 거문고산조와 정남희 가야금산조 

이병철이 가장 좋아한 거문고산조와 가야금산조는 무엇이었을까? 이병철은 백낙준의 거문고산조도 알고 있는 사림인데, TBC향연에 다수 출연한 신쾌동 거문고산조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야금산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늘 정남희의 가야금산조가 가슴에 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담당 프로듀서에게 ‘정남희 산조’를 구해달라고 했다. 담당피디는 정남희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정남희가 나주 출신이고, 월북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결국 정남희 산조의 음원은 구하지 못했다. 

창(唱)이란 일반명사를 ’판소리‘라는 고유명사로 바꾼 조상현 명창

TBC향연은 국악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국악의 대중화’를 이룬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창(唱)이란 명칭으로 통했던 ‘판소리’가 동호인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에 두 명의 판소리 스타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남자는 조상현, 여자는 안향연. 1976년 6월 15일, TBC-TV <TBC향연>은 어떠했나? 당시 중앙일보를 옮겨보자. “문공부주최 전국대사습(옛날 국창을 뽑는행사)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한 명창 조상현씨의 판소리로 꾸며진다. 조씨는 이 시간에 판소리 열두마당중 유일하게 중국소설에서 따온 적벽가를 부른다.”(중앙일보, 1976.06.15.) 

얼마 전 문화유산진흥원이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72년 발족)이 있다. 1980년 말, 선정릉이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무형문화재전수회관이 생겼다. 여기에 여섯 개의 단체가 입주했는데, 초기 이런 움직임의 핵심이 된 김천흥(1909~2007)이 이끄는 대악회를 비롯해, 판소리 봉산탈춤 강령탈춤, 북청사자놀음, 꼭두각시놀음보존회 등 6개 단체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판소리는 일반인들이 배운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는데, 무형문화재전수회관의 판소리강습이 이런 선입견을 없애는 역할을 했다. 바로 이곳에서 조상현명창을 만난 애호가들이 많을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조상현명창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고, 그 분에게 판소리를 배운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영광이었겠는가!

조상현명창이 당시 판소리의 보급에 얼마만큼 열정을 쏟았는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985년 3월, 서울대학교에 ‘판소리회’라는 동아리가 생겼다. 국악교육과 학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나도 거기 가입했다. ‘서울대 판소리회’(서클) 창단하는 날, 조상현 명창을 모시려 했다. 명창께서 응해주셨지만, 그 날 ‘명창께서 정말 오실까?’ 모두 궁금했다. 그런데 와 주셨다. 지금도 서울대 학생회관 건물에 있는 동아리방에, 투 버튼의 슈츠를 멋지게 입고 와 축사를 해주셨던 명창을 잊지 못한다.

몇 해 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창신제’라는 이름으로 한 기업의 직장인들 백명이 판소리(사철가)를 해서 뉴스에 나오기까지 한 일이 있다. 명창은 만 10년을 이 회사원에게 판소리를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상현명창은 이렇듯 특별히 ‘판소리 동호인’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의 저변확대’에 어떤 명창보다 힘을 기울인 ‘우리시대의 진정한 국창(國唱)’이다. 판소리가 이 나라의 소리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려면, 그만큼 판소리를 부르고 즐길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걸 몸소 실천한 분이다.

하루라도 소리를 하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

조상현 국창과의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여쭈었다.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김구선생이 남긴 말을 가져와서 이렇게 바꿨다. “하루라도 소리를 하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 날마다 소리를 연마했던 조상현명창과 틈나면 소리를 들었던 이병철회장! 그 시절의 <TBC향연>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