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발레리나’(The Ballerina,5.31-6.1,토월극장)는 올해 40주년을 맞는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의 창단기념공연 세 번째 작품이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한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에 선정되어 하남, 고양, 군포 등 6개 지방을 순회한 후 올해 대한민국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으로 서울에서 초연무대를 선보였다. 70분 공연의 절반을 무용수들의 일상적인 연습실 풍경과 공연 리허설,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무용수들을 조명하는데 할애한다. 나머지 시간은 전체 프로그램에 액자식으로 삽입된 실제 공연 네 작품이다. 공연무대와 분장실, 출연자대기실을 한 무대에 수평으로 배열하여 현장감을 높이면서 발레의 속 살을 보여준 재미있는 무대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연습실 모습 그대로가 오픈된 무대다. 좌우와 중앙에 바(barre)가 있고 뒤쪽에 출입문 두 개와 커다란 돔형의 창문 세 개가 뚫려 있다. 소지품 가방을 어깨에 멘 무용수들이 연습복 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정해진 각자의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몸풀기를 시작한다. 발레 마스터(이현준)가 들어오면 가벼운 인사를 교환하고 연습이 시작된다. 스텝, 점프, 회전 등 발레 기본동작부터 시작해서 아라베스크(Arabesque), 콤브레(Combre), 알롱제(Alonse) 등 고난도 동작까지를 차례로 훑은 뒤 배역 연습에 들어간다. 갈라 공연의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계획된 ‘파가니니 랩소디’ 연습 중 클래식 튀튀를 입고 춤추는 군무에 이어 파드되 부분이 이어진다. 솔로로 빠르게 돌기를 연습하던 주역 무용수(홍향기/한상이)가 발목을 접질리면서 쓰러지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발레 마스터를 비롯한 출연자 모두가 고심하는 사이 한 무용수(한상이/홍향기)가 역할을 자원하고 나선다. 가장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서 맨 늦게 나가기로 소문난 신예 발레리나다. “제가 그 역할 대신하면 안 될까요?” “네가 어떻게…. 순서를 다 알고 있니?” 발레 마스터가 놀라서 묻는다. “네, 늘 지켜보면서 제 다름대로 순서도 익혀놓았어요.” 파트너와의 2인무를 지켜보던 마스터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역시 너구나. 가장 열심히 연습하더니…”. 연습 중에 발생하는 무용수들의 돌연한 부상을 대처하는 응급처방이 이렇게 제시된다. 주역 무용수의 부상은 신입 무용수에겐 절호의 기회다. 소리 없이 연습에 매진하던 신입 무용수가 내일의 본 공연에서 주역의 자리에 설 것이다. 커튼 밖에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에피소드가 몇 차례 펼쳐진 후 갈라 공연의 해설이 시작된다.
해설은 발레공연의 일부-해설자의 스타성과 품위
해설은 문훈숙의 몫이다. 오늘의 공연을 구성하는 네오클래식 작품 네 개를 소개한다. 클래식(고전주의)과 네오클래식(신고전주의)의 차이, 발레와 한국무용과의 몸 쓰기 차이들이 실연을 곁들여 차분하게 설명된다. “네오클래식의 특징은 클래식발레의 테크닉을 살리면서 모던발레의 자유로운 표현성을 받아들인 춤 형식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로맨틱발레와 러시아중심의 클래식발레를 거친 후의 형식이며 컨템퍼러리발레로 나아가기 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를 포기하는 대신 인간의 심리와 생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추상 발레로 흐르게 되고 음악의 해석 쪽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제 유병헌이 안무한 네오클래식 네 작품을 실제로 볼 차례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해석한 ‘파가니니 랩소디’와 ‘맥도웰의 피아노콘서트 파드되’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네오클래식 형식과 한국의 정서를 결합하고 한국적인 발레 움직임을 지평권의 국악크로스음악에 녹여낸 창작 발레인 ‘코리아 이모션 정(情)’ 9개 장면 중에서 ‘미리내길’과 ‘비연’ 두 작품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공연을 마친 무용수들이 다시 연습실로 돌아온다. 하루의 공연, 때로는 1분의 출연을 위해 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내며 발가락이 뭉개지도록 피루엣을 반복한다. 그리고 늘 질문한다. ‘발레? 왜?’ ‘관객들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가장 적절한 해답일 것이다.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마흔 살 생일에 되짚어보는 유니버설발레의 창단 모토다. 발레리나의 일상과 발레작품 탄생의 뒷이야기란 신선한 소재로, 스타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해설자를 통해 해설이 공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춤동작에 대사를 삽입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온 ‘더 발레리나’는 멀게만 느껴지던 발레를 친근한 이웃처럼 느끼게 해준 세심한 연출이 돋보인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