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Interview] 고동연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경험 나누는 전시… 생태예술 모순 경계해”
[Culture-Interview] 고동연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경험 나누는 전시… 생태예술 모순 경계해”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6.20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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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트리엔날레,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
여성 예술감독으로서 전위적 기획 자부심 느껴
여성미술 주요 쟁점은 주로 미술계 외부에서 생산
‘장소성’은 까다롭고도 조심스러운 개념…다채로운 강원도 열린 시각으로 봐야
개미굴 등 인간중심주의에서 소외되는 자연세계가 큰 통찰 준다
예술은 장르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로서 심도 있는 미술사 연구서 계속 쓰고자 해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국내 최초 3년 주기 시각예술행사인 강원트리엔날레에 여성 예술감독이 위촉됐다. 미술평론가이자 이화여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인 고동연 예술감독이다. 전위적인 작가와 심도 있는 소재를 다루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는, 주로 남성 기획자가 전위적인 이슈를 다뤄오던 미술계의 관행을 뒤집고자 한다. 

▲고동연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고동연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고 신임 감독은 지난 3월 위촉식에서 “강원트리엔날레는 다른 문화 프로그램과 다르게 정확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국제 미술을 선보이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에코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전시에 여성과 생태 뿐만 아니라 ‘기술’을 연결했다. 전통적인 젠더 구분을 넘어서 여성 예술을 과학 기술 등 기존에 ‘남성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던 진취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기 위함이다. 

전시의 주제는 ‘개미굴’에서 영감을 받았다. 협력을 중시하는 수평적 커뮤니티이자, 인간중심주의에서 소외된 자연세계, 온난화 시대에 공기를 순환시키는 존재인 개미굴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소재다. 이번 트리엔날레의 제목도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이고, 부제는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이다.

이러한 창의적인 소재는 인문학자로서 평소 고 감독이 갖던 호기심과 끈질긴 통찰에서 기인했다. 그는 학부 시절 장식미술과 의상학을 전공했던 보기 드문 ‘실기 출신’으로, 미술사와 문화사 공부가 너무 즐거웠던 나머지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지난 4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고동연 감독의 눈빛에는 연구자이자 기획자로서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있었다. 연구 분야에 대해 묻는 질문에 눈을 빛내며 설명하는 그는 “결국 공부라는게 그냥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한다.

예술 감독으로서 그의 목표는 전시의 과정을 소박하게 일기 형태로 남긴 서문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의 기획 전반에는 생태예술에 쉽고 가볍게 다가가고자 하는 그의 오랜 고민이 묻어나 있다.

▲2024 강원트리엔날레 포스터
▲2024 강원트리엔날레 포스터

- 지난 3월 말에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올해 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소감과 각오를 듣고 싶다.

실은 기뻤던 건 하루고, 걱정이 많이 됐다. ‘과연 이처럼 거대한 미술 행사가 지역에 필요한가’라는 고민부터 시작해서 ‘생태예술전이라고 하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행사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 많은 걱정이 앞섰다. 

동시에 미술인으로서 다양한 미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지녀왔다. 의무감과 함께 각오를 다지고 있다.

- 비평가, 기획자, 연구자로서 활동해오며 장소와 기억, 전후미술 등 인문학적 담론을 중심으로 예술을 탐구해왔다. 그간의 활동 내용을 고려했을 때, 강원국제트리엔날레의 테마인 ‘생태예술’과도 연관이 깊을 것 같다.

인문학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약 5년 전부터, 그리고 미술 현장에서는 최근에 접어들어 인류세 예술이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이론이 많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유행을 떠나서 인문학에서 인간과 환경,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자연스레 계속되어 왔다.

인문학은 인간을 알기 위한 학문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내외부적인 혹은 인간이 처한 복합적인 환경의 가변성에 주목하는 학문이다. 그것을 가지고 이후 무엇을 할지는 도덕·철학· 문학 등의 각 인문학 분야가 지닌 쟁점에 따라 달리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은 인문학의 기초를 이루는 ‘인간 존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문학자, 아니 인간이 평생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 셈이다.

그런데 요사이 ‘생태예술’에 대한 담론을 보면 이 단어가 특별한 단어는 아닌데 더 추상적으로 들리고, 담론들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어렵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가볍게, 편하게, 일상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포스터를 보면, 땅 밑 개미의 시점에서 관찰한 게임 화면과 같이 보인다. 게임의 시선처럼 덜 무거운 느낌의 생태예술을 보여주고자 했다. 

▲매리 매팅리, 북극 음식의 숲, 2018, IBC 상자, 화분, 호스, 가변 크기.
▲매리 매팅리, 북극 음식의 숲, 2018, IBC 상자, 화분, 호스, 가변 크기.

- 환경예술, 대지예술이 지닌 모순성이 있다고 들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대지예술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때부터 미술사가들이 언급해온 내용이다. 대부분의 예술이 기존의 예술이나 예술계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듯이 대지예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말, 달에 인류가 첫 발을 내딛었으며 초기 인공위성이 개발되었고 사이버네틱스나 정보통신이 시작되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얻는 편리함을 대중들이 널리 느끼게 되었고 영상이나 이미지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의 주요 과학기술업체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무기나 각종 파괴적인 약품을 팔아서 이득을 취하는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과학기술의 이율배반적인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문명에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전지구적으로 퍼져나갔다. 젊은 예술가들은 기득권적 사회구조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미술관의 권위를 타도하고자 미술관 밖에서 전시를 가졌다. 이들이 현재 미술사적으로 ‘대지예술가’ 혹은 ‘환경예술가’의 선구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집단이다.

그런데 대지예술이 자연 속에서 예술 작업을 하거나 자연을 활용한 작업을 끌어들이면서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번에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예술’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최대한 적합한 작가들을 섭외해 뭔가 새것을 짓고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이나 전시 후에 나눠주는 것이 가능한 작업을 선정하고자 노력했다. 실제 삶 속에서 생태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작가를 포함시키고자 했다.

예를 들자면, 참여작가 중 정승혜 작가의 경우 현재 전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직접 농사도 짓고 있다. 삶과 예술이 일치되는 상태에 있는 작가다. 입구에 전시될 폴란드의 타티아나 볼스카 (Tatiana Wolska) 작가의 작업이나 파빌리온에 전시될 허태원의 화분 작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시를 통해서 감상하게 하는 일종의 ‘생태예술’ 투어리즘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이 아니다. 폐품, 폐목, 버려진 화분, 빌린 화분으로 작업을 만들고 전시가 끝나면 해체하는 방식을 취한다. 메리 매팅리(Mary Mattingly)나 보스코 소디(Bosco Sodi)의 작업의 경우 기성품을 활용해서 작업하고, 흙이나 씨, 풀 등의 자연물을 나눠주면서 전시가 끝난 후 최대한 부산물을 남기지 않는 작업이다. 부서진 나무로 작업을 만들고, 다시 부수는 일종의 환원적인 과정을 거쳐서 철거되기 때문에 작업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기존의 ‘대지예술’과 요새 말하는 ‘생태예술’의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젠더와 여성미술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해왔다. 요즘 여성 미술의 새로운 쟁점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새로운 쟁점은 미술계 내부에서 파생된다기보다는 미술계 외부에서 생산된다고 본다. 여성 지위에 대한 다양한 사건들, 여성 차별에 대한 공감대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여성미술계로 다시 유입되어서 작가와 관객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자면, 미투 이후 여성의 성적 자유나 여성의 지위 등에 관심이 늘어났고, 여성운동이 활성화되면서 구체적인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물론 최근 민희진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저돌적이고 정치화된 이미지의 페미니스트와 ‘개저씨’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극대화된 젠더의 갈등 양상이 보인다. 여성주의나 젠더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상황을 왜곡시키고 여성미술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태원, 금천 정원, 2011, 7월-10월, 가영이네 옥상, 금천구, 서울
▲허태원, 금천 정원, 2011, 7월-10월, 가영이네 옥상, 금천구, 서울

- 이번 전시 증 ‘에코페미니즘’을 주제로 여성+생태+기술을 연결한 특별전이 준비되어 있는데, 생태예술과 여성의 관계성이 궁금하다. 

올해 국제트리엔날레는 생태예술을 양자역학 이론과 같이 상당히 느낌상 무겁고 실존주의적이기까지 한 물질이론이나 물질주의 철학의 관점이 아니라 가볍게, 새롭게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여성주의와 생태예술에 주목한 섹션이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젠더 구분을 넘어서 여성 예술을 수동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에 한정하는 대신 과학 기술 등 기존에 ‘남성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던 진취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추세다. 생태·자연과 기술을 분리된 것이나 반대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나, 남성을 개척자의 이미지로 보고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시키는 편견을 뒤집는 셈이다. 그러한 추세를 반영하고 싶었다. 

참여 작가인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는 여성은 아니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자연주의, 생태주의 작가이지만 화석연료, 대체연료, 에너지, 기술과학을 이용한 예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가라서, 기술과 젠더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남녀의 구분을 나누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 장소와 기억, 전후미술 등 인문학적 담론을 중심으로 예술을 탐구해왔다. 전시가 열리는 지역이 ‘강원특별자치도’라는 사실에도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트리엔날레 기획 단계에서도 ‘강원특별자치도’라는 지역의 지역문화와 장소성을 고려했을 것 같다. 

‘장소성’이라는 것이 여간 어렵고 까다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기획을 하면서 여실히 느꼈다. 일반적으로 ‘강원도’하면 자연 경관이라던가 전쟁의 기억, 국경선, 폐광 등 고정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데, 밖에서 보는 강원도와 안에서 보는 강원도가 또 다르고, 춘천, 평창, 원주, 홍천 등 지역별로 또 전부 다르다는 것을 요새 실감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속초, 양양, 평창은 언어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짧은 시간 외부에서 보기에도 그렇다. 양양 같은 경우에는 글로벌한 느낌도 있고 서핑과 같은 젊은 층 문화를 중심으로 바다의 색감이 반영되는 전시, 작업이 많다면 평창은 내륙이기 때문에 숲이나 산의 이미지와 더 가깝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작가 선정을 하기 시작한 지 2개월 되었는데 로컬리티와 글로컬리티의 문제를 한정된 시각이 아니라 열린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점, 그리고 지역성을 외부에서 그 지역에 투입되어서 볼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것을 깨닫고 있다.

- 이번 트리엔날레에 참여하는 주요 작가들로는 누가 있는가. 여성 예술감독이 선임되었기도 하고, 참여 작가 중에서도 여성 작가의 비중이 높아 보인다.

주요 작가로는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 요안나 라이코프스카(Joanna Raikowska),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 보스코 소디(Bosco Sodi), 매리 메팅리(Mary Mattingly),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 국내 작가로는 정연두, 정정엽, 유비호, 이수경, 강원도 작가로는 정승혜, 조은미, 한석경, 함혜경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전시 선정작가는 약 50팀에 57명 정도 되고, 강원 작가 공모에서 선정된 68인의 작가들의 메타버스 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그 중에서 여성 작가가 절반 정도 된다. 참여 작가의 48퍼센트정도가 해외 작가이고 강원도(출신이나 거주지 기준) 작가는 12퍼센트 정도다. 보통 국제 미술 행사를 주로 남성들이 예술감독을 맡는 일이 많은데 여성 예술감독으로서 국제적인 작가를 섭외해서 보다 전위적인 작가와 심도 있는 소재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여성은 흔히 미술교육이나 미술계 살림과 연관되고 남성 기획자나 예술가가 전위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처럼 되어 있는 관행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고동연 예술감독

- 비엔날레가 이미 많은데, 강원도는 비교적으로 안 알려진 지자체라 작가 섭외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한국에 비엔날레가 많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강원도라는 특이한 자연 환경을 어떻게 부각시킬까, 그러면서도 기존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와 같은 행사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주제전’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설치, 영상, 사진의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안배했다.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이슈, 즉 생태예술을 형태주의가 아니라 태도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다양한 작업, 특히 여성작가의 작업과 심포지엄도 기획했다. 이러한 주제전의 관점에서 작가들에게 어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작가 섭외보다 어떻게 관객의 발길을 이끌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강원도, 특히 전시가 열리는 평창의 경우 평균 연령대가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지역 예술인 말로는 부대행사를 해도 다들 좀 삶에 지쳐 계시거나 그래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에 따뜻한 스킨십을 늘리는 것을 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이번에 지역 주민의 화분을 전시 기간 중에 빌려서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허태원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일상적인 방법이 ‘화분’이다. 경로당 등을 방문해 그 지역 주민들에게 화분을 빌리려고 한다. 아직 사무실이 춘천에 있는데 7월부터는 평창에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지역주민과의 스킨십을 늘려가고 싶다.

- 생태예술과 지역주의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태주의와 지역주의뿐만 아니라 글로벌주의와 관광주의 등 전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인간의 역사를 품고 문화와 맞닿아 있다. 예를 들자면, 국경 지역의 흙은 자연이지만 전쟁과 같은 인류 비극의 역사적 기억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흙이라는 모티브는 때로는 초월적인 재료가 아니라 국제 정치, 경제 상황까지 품고 있는 상당히 인간사와 밀접한 물질이다. 따라서 생태예술은 지역 간의 분쟁이나 역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매우 깊게 연결되어 있다.

- 이번 국제트리엔날레는 ‘개미굴’로부터 영감을 얻어 기획됐다. 개미굴이 가진 상징성과 이번 전시에 도입하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개미굴’에 관심이 많았다. 개미굴은 교육적으로, 역사적으로, 서브컬쳐로서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서 다변적인 의미를 가진다. 1960년대 미국에 ‘개미굴’이라는 건축가 집단도 있는데, 칸막이 없이 공간을 공유하는 수평적 커뮤니티를 화두에 올려서 유명해졌다. 

공고가 났을 때에는 최재천 교수님의 개미굴에 관한 책을 읽고 평소 미술이나 문화계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던 개미굴이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뻤었다. 부연하자면, 전통 생태학에서 개미는 다윈 때부터 흥미로운 존재였다. 협력을 통해 집단을 이루고, 부지런히 굴을 파서 온난화 시대에 공기를 순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곤충세계에도 이타심이 있는가’라는 논쟁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개미를 통해 알게 관심을 갖게 된 땅 밑의 세상이 새로웠고, 인간중심주의에서 소외되는 자연세계가 큰 통찰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준비가 잉태되는 공간이 땅 밑 지하공간이다. 땅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개미굴의 구조가 흥미로웠고, 생태예술의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일상적인 주제로 환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을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로, 부제는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로 짓게 됐다.

▲요안나 라이코브스카, 리조폴리스(Rhizopolis, 뿌리 도시), 2021, 설치와 동영상, 가변 크기.
▲요안나 라이코브스카, 리조폴리스(Rhizopolis, 뿌리 도시), 2021, 설치와 동영상, 가변 크기.

- 학부 시절, 장식미술과 의상학을 전공한 실기 출신 이론가다. 미술 이론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의상학을 전공할 당시에는 ‘여자 사장’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 관련 수업뿐만 아니라 코디네이터나 패션 비즈니스와 관련된 수업도 많이 들었다. 의상학과 수업 중에서는 백화점 디스플레이와 같은 수업도 많이 들었고, 기획을 직접 해 볼 기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옷보다는 음악, 트렌드, 조명 등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 문화사 쪽으로 더 알고 싶어 졌다. 일종의 산업 분야의 디자이너가 창작자로 시작해서 연구·분석의 분야로 간 셈이다.

1990년대 초였는데, 당시 사회와 문화를 읽는 눈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고, 의상 자체보다는 사회적 트렌드를 읽고 싶어서 문화연구 관련 서적을 많이 탐독했다. 그 시기가 미술사가로서의 경로를 선택하는 것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다. 석사 논문의 주제는 바우하우스였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는 미술과 문학, 음악 등이 함께 어우러진 주제를 많이 다뤘다. 굉장히 다른 분야들 같지만, 문화사적 측면에서 미술을 바라보자면 전부 깊게 연관된다. 

사실 원래는 영화 비평을 하고 싶었는데, 인문학자이신 어머니께서 미술사를 공부하라고 설득하셨다. 어머니가 영문학 전공자이셔서 분석하는 것과 관찰한 바를 말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셨고, 영화도 좋아하셨기에 그런 점들이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학문적인 측면에서 공부를 더 하고, 다시 산업 쪽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유학도 가고 해보니 미술사가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당시에는 문화 이론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미술사가 배우고자 하는 것과 제일 가깝기도 했다.

- 전후미술사와 함께 영화이론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동안 썼던 책들은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현대 사회는 영상 이미지로 가득 차 있고, 영화는 상대하는 대중의 크기가 미술에 비해 훨씬 크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화를 해석하기 어렵다. 

그리고 예술이 장르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미술 작가들을 보면 미술관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영화, 음악을 통해 받는 영향이 훨씬 큰 경우가 많다. 원래 미술을 공부하게 된 계기도 ‘미술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문화를 해석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다양한 예술 분야를 포괄해서 연구도 하고 비평도 쓰고 기획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썼던 책에서 다룬 주제를 설명하자면, 미국에서 발간된 포스트메모리(Postmemory)를 주제로 한 책에서는 영상매체를 함께 다뤘다. DMZ라는 공간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나, 사람들이 소비하는 방식 등 문화 이론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담았다. 1960년대 팝아트와 미국 사회를 다룬 책인 『팝아트와 1960년대 미국사회』는 첫 번째 챕터에서 음식 사업, 두 번째 챕터에서 도시 문화, 세 번째 챕터에서 공상과학 영화를 다뤘다. 

공저로 참여, 영국에서 올 하반기에 발간 예정인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 Context』 역시 586세대의 팝송, 정은영 선생의 창극, 탈북자 미술 등 문화사적으로 다변화된 사회의 면모를 다룬다.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는 고동연 예술감독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는 고동연 예술감독

- 관객들이 이번 국제트리엔날레를 어떻게 보고 즐겼으면 하는가. 가이드를 준다면.

이번 전시에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작업이 많다. 버려진 폐목 등을 활용한 설치작업이나, 씨앗을 키우는 전시, 지역 주민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전시 등이 있다. 허태원 작가의 지역 주민의 화분을 빌려서 전시하는 관객 참여적인 작업의 경우 전시에 사용된 화분들은 전시가 끝나면 지역 주민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된다. 포스코 소디가 만든 흙으로 만든 공도 지역 주민에게 나눠줄 예정이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기후변화에 따라서 경작지가 달라진 씨앗과 농작물을 키우는 매리 매팅리의 작업도 전시가 끝나면 지역민에게 나눠줄 것이다. 최대한 지역사회에 물리적으로 환원하고 관객들에게 흙, 씨앗과 연관된 역사, 이야기, 즉 ‘경험을 나눈다’는 관점에서 전시를 진행하고자 한다. 관객들도 생태를 단순히 자연을 재현한 미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경험을 공유한다는 입장에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 앞으로의 목표나 확장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연구자로서는 미술사의 심도 있는 연구서를 계속 쓰고 싶다. 비평이나 기획으로부터 만들어진 경험을 보다 깊은 호흡을 가지고 심도 있게 발전시키고 싶다. 덧붙여서 이번 국제트리엔날레 예술 감독으로서 전시의 과정을 소박하게 일기 형태로 남긴 서문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전시 서문을 과도한 이론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고 ‘어떻게 하면 낭비하지 않는 생태예술전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서 ‘생태예술전과 거대국제미술제와 같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 실현가능한지’의 고민을 녹여보고 싶다. 기획자라기보다는 이론가이자 문화해석자로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보기에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석해내는지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