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 뿔 난 까닭은...
문인들 뿔 난 까닭은...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2.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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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꿈· 역사의 꿈을 꺽지 말라

 2월 21일 종영된 KBS 주말 역사드라마 ‘名家’는 짧은 방영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운을 남겼다. 9대 진사를 이으며, 300년 간 부를 지켜왔던 경주 최부자 집 이야기를 모델로 한 드라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기업들과 소수 부자들을 향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남의 곤궁을 이용해 재물을 취득하지 말라(흉년에 땅을 사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사방 100리 안에 일자리 없는 이들이 없게 하라)’는 최 부자의 가르침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재산을 경매에 붙여 취득함을 당연한 재테크로 여기는 요즘 사람들에게나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사람 잘라내기를 능사로 여기는 요즘 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특히 21일 마지막 회에서 음모와 공작으로 옥에 갇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 ‘최국선’을 회유하는 경주 부윤의 모습은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된 한국작가회의 지원에 대한 정부 문화예술위원회의 요구 조건을 연상케 해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경주 최부자의 시초를 이룬 최국선은 흉년에 구휼 죽을 쑤어 주변 백성들을 먹이며, 소작농들의 곡수를 반으로 줄여주는 등 적선을 베풀어 인심을 얻는다. 또한 이웃들의 힘을 얻어 황무지를 개간해 소작농들이 먹고 살게 하는 등 경영의 묘를 보여준다. 이에 중앙정부(조정 대신 호조판서 최원형)는 경주 부윤을 시켜 최국선의 뜻을 꺾으려 한다.

최국선의 윤리경영이 오히려 민심을 동요시켜 다른 지주들의 이익을 위협하며,  반정부 사상을 일으켜 엄중한 사회질서와 법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경주 부윤은 최국선을 찾아 가 더 이상 땅을 개간하지 않으며, 흉년이라 하더라도 곡수를 줄여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회유한다. 최국선은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자기 목숨이 날아가는 것 보다 백성들의 꿈이 날아가는 것이 더 두렵다는 이유다.
 
 최근 한국작가회의는 정기총회를 열어 정부 문화예술위원회가 작가회의에 3400만원을 지원해 주되, 향후 불법시위에 참여할 경우 보조금 반환을 비롯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를 요구한 일을 집중 성토했다. 작가회의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기로 하는 한편 정부의  지침이 철회될 때 까지 ‘저항적 글쓰기’를 이어 갈 것을 결의했다. 문인들이 뿔이 난 것이다.

 자고로 관료 · 정치인들이 잘못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했을 때, 사회가 부패했을 때 반정부 저항 사상은 싹 튼다. 그런 세상에서 백성들은 불법폭력시위에 기대어 억울함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조선시대 임꺽정이나 홍경래 같은 이들이 백성들 가슴에 의적으로 남은 것도 그 같은 이유다.

일제시대 독립군이나 독립을 요구한 모든 시위도 다 불법이었으며, 폭도들의 짓으로 취급받았다. 그것은 그때 나라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회가 썩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물론 그때의 그 나라는 아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경험이 있으며, 세계 속에 당당한 자주 시민의 나라가 되어야 할 꿈도 있는 나라다. 그런 대한민국 정부가 무엇이 두려워 나라 안 지성들의 모임인 작가회의를 지원하는데 그리 유치한 조건을 내건단 말인가? 

 작가들은 자기들의 뜻이 꺽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필시 이 나라 국민과 역사의 꿈이 꺽이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이 정부의 조건을 거부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정부(문화예술위원회)는 당장 작가회의에 내건 유치한 조건 따위를 집어 치워야 한다. 그들이 고와서가 아니다. 이 나라 국민과 역사의 꿈을 꺽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권대섭 대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