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행위미술가들②-유지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으로의 이행’ 외치는 ‘예술행동가’
[한국의 행위미술가들②-유지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으로의 이행’ 외치는 ‘예술행동가’
  • 이혁발 예술연구소 육감도 
  • 승인 2024.07.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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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는 몸짓이 아니라 발언이다.”(2009) “행동하는 발언이다.”(2019) -유지환-

행위로 보여주는 이 시대의 초상화, 익명화된 우리 자각시키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대인은 하나의 상품, 물질로 취급되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전락해 있다. 배금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외되고 개성, 주체성이 상실되고 인간성이 매말라가고 있다.

▲유지환, '샐러리맨 김씨', 하슬라아트월드, 2006
▲유지환, '샐러리맨 김씨', 하슬라아트월드, 2006

유지환은 행위미술로 소외되고 익명화된 현대인의 초상화를 잘 그려냈다. <씨발세탁소>(1997) 작품은 현대인의 초상을 잘 그려낸 시대의 걸작이다. 빽빽하게 걸려 있는 옷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개성 잃어버린 껍질 같은 현대인의 삶을 표상한다. 한쪽 러닝머신에는 한 행위자가 계속 달렸다. 쳇바퀴처럼 쉼 없이 달려야만 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20분 만에 한 숟가락 떠먹는 느린 밥 먹기 행위는 밥 먹기(돈 벌기) 힘든 상황을 멋지게 비유한 것이었다. 또한, 이 느림은 자본주의의 탐욕의 속도를 거부하는 저항의 몸짓이기도 하다.

<셀러리맨 김씨>(하슬라아트월드, 2006)에선 높은 허공에 매달려 빠르게 허공을 달린다. 자본주의 틀 안에서 쳇바퀴 도는 다람쥐 같은 월급쟁이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준 작품이었다.

▲유지환 외 30여명, '행위프로젝트 WHITE MOB',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서울 홍익대까지 이동, 2010
▲유지환 외 30여명, '행위프로젝트 WHITE MOB',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서울 홍익대까지 이동, 2010

<행위 프로젝트 WHITE MOB>(2010, 2011)는 자본주의 속 현대인의 적나라한 군중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유지환은 얼굴에 분칠하고, 선글라스에 흰색 양복과 흰색 가방을 들었다. 뒤따르는 이들은 선글라스나 가면을 쓰거나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가방이나 쇼핑백을 들고 인천에서부터 지하철로 홍익대 앞까지 이동하는 거리퍼포먼스였다.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대중 속에 이름 모를 나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타인이 만든 틀에 억압당하는지도 모르며, 스스로 그 틀 안에 들어가서 몰개성화, 익명화된 존재로 표정도 잃어버리고 허우적대고 있다. 유지환은 이 우리들의 모습/초상을 행위미술로 그려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익명의 존재’임을 자각하자며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으로 욕망하며 자아를 상실하는 우리들의 초상
라캉의 관점처럼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인 양 착각’하며 사는 대중들, 아니 너와 나, 우리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규정지어주는 틀 안에서, 이후엔 남들이 하는 대로 판단하거나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들’ 속에서 자신의 주체적 존재를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욕망하지 못하고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우리는 본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함을 상실하며 살고 있다. 본래의 자아를 상실하고 타인의 시선에 갇힌 규격화되고 몰개성적이며 ‘나’의 모습이지만 ‘나’가 아닌 무수한 익명의 ‘나’로 존재하고 있다.

▲유지환, 'Neo Last Supper_ 현대인_최후의 만찬', 오산문화재단, 2016
▲유지환, 'Neo Last Supper_ 현대인_최후의 만찬', 오산문화재단, 2016

<Neo Last Supper_ 현대인_최후의 만찬> 작품은 자본주의 시대의 ‘최후의 만찬’ 그림이다. 단 12명의 제자나 예수가 모두 유지환 본인이다. 가운데 돈을 향해 질주하는 나이고 너인 우리의 적나라한 초상화이다.

인체 프린팅에 사용된 약 천여 장의 A4용지는 복제, 분열, 반복, 증식, 규격화, 기계화, 표준화되고 구획 지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이상의 시 <오감도>의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보면 결국 불안하고 분열된 자아가 되어 혼돈의 절정, 극단(최후의 만찬=막다른 골목)상황으로 질주하게 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래의 나, 주체적 존재로 이행하기
이러한 혼돈의 시대, <another unit>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는듯한 작품이다. A4 종이 수십 장에 프린팅한 자기 전신(두 개)을 연결하고 그 끝에 흰색 풍선 더미를 달았다. 이것을 들고 다니다 마지막에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작가는 이 작업이 “익명성”과 “복제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분절되고 파편화되는 시대, 자아를 잃고 제품화된 물질 같은 현대인에게 풍선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은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날갯짓을 희망하는 것이다.

▲유지환, 'another unit', 부산항 자갈치시장 부두, 2010
▲유지환, 'another unit', 부산항 자갈치시장 부두, 2010

예술가들은 언제나 이 억압의 틀에 저항해왔다. 전위적인 행위미술가들은 저항정신과 자유 정신이 몸에 밴 이들이다. 유지환의 “행위예술은 자유를 향한 발언이다.”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유지환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고백하며, “나다움”을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달려가겠다고 했다. 덧붙여 “인간이라는 존재는 매일, 매 순간, 스스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2019)라고 말함으로 나를 찾는 작업이 희망적임을 보여줬다.

타인의 욕망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수시로 ‘판단중지’하며 항시 깨어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그 자신’이게끔 하는 ‘본디 자기’를 찾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유롭고 주체적인 실재(진정한 존재/있음)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것이다.

설치미술적 요소와 회화작품 같은 극적 효과
유지환 행위작업의 특성 중 하나는 설치미술적 기반을 두고 여러 행위자와 함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씨발세탁소>(1997)의 500벌의 걸려 있는 옷은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설치작품이었다. 길이 35m, 높이 5m, 폭 6m나 하는 폐선을 인천에서 서울 예술의전당 야외마당까지 가져와 설치해놓고 행위를 하였던 <누구나 떠드는 미래>(1999)는 커다란 설치물에서의 행위가 주는 힘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유지환 외 6명, 'STEEL & DREAM', 포항스틸아트페스티발, 2018
▲유지환 외 6명, 'STEEL & DREAM', 포항스틸아트페스티발, 2018

원통으로 된 철 13개를 면도 크림을 발라가며 일직선으로 높이 세웠던 작품 <불안정한 것에 대하여>(2022)도 멋진 설치작품이었다. 추모비이며 평화기원탑이었다.
 유지환은 “나의 작품은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과정을 만드는 행위다.”라고 했다. 이 개념이 잘 발현된 작품이 드럼통 50개를 활용한 <STEEL & DREAM>(2018)이다. 이 작품은 설치미술적 요소와 회화적 느낌이 합치된 작품이었다. 그래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인도하는 자유>나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떠올리게 한다.

▲유지환 외 6명, 'red pool', 서울예술재단, 2015
▲유지환 외 6명, 'red pool', 서울예술재단, 2015

수영장에서 펼쳐진 <red pool>(2015)은 긴장감이 있는 애정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하고,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이런 조형적, 시각적 이미지를 위해 밀가루나 연막탄 등을 사용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극적 효과를 더한다. 이것은 유지환의 조형적 감각, 미감이 잘 발달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