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마님이 된 하녀', 한 시간 동안 웃음과 즐거움 선사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마님이 된 하녀', 한 시간 동안 웃음과 즐거움 선사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모차르트평전"저자
  • 승인 2024.07.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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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코믹 포인트 200% 살려낸 홍민정의 연출 탁월
페르골레지 작품의 역사적 의미 강조하지 않아 아쉬움 
- 제20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작은 오페라’의 ‘커다란 성공’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모차르트 평전'저자.

지난 6월 30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관객들의 웃음꽃이 만발했다.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1733)는 3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말 희극으로 거듭났고, 오늘날의 관객에게도 어필하는 싱싱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원래 오페라 세리아 <오만한 죄수>의 막간에 공연된 소극으로, 하녀 세르피나가 귀족인 주인 우베르토를 유혹하고, 속이고, 협박하여 결혼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하녀가 주인을, 그것도 여자가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내용에 당시 관객들은 배꼽을 잡았고, 페르골레지의 발랄한 음악도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산카를로 극장을 중심으로 오페라가 활기를 띄고 있던 당시 나폴리에서 이 막간극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원작의 코믹 포인트를 200% 살려낸 홍민정의 연출은 탁월했다. 단순히 대사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3명의 등장인물이 나름의 방식으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연극적 재미를 더했다. 세르피나가 우베르토를 침묵시킬 때 ‘쉿, 쉿’ 하는 동작과 대사를 관객이 함께 하도록 하고, 우베르토가 객석을 오가며 감정을 호소하여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좁혔다. 베스포네가 “세르피나와 우베르토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묻고 대다수 관객이 “세르피나!”라고 대답하자 “이길 사람 편을 들겠다”며 세르피나를 돕기로 하는 장면은 기발했다. 

연극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효과음을 과감하게 사용했을 뿐 아니라 우베르토가 ‘멘붕’에 빠졌을 때 바흐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세르피나와 우베르토의 운명적 관계를 암시할 때 베토벤 <운명> 교향곡, 베스포네가 난폭한 템페스타 대위로 변신할 때 비발디 여름의 3악장을 음악적 패러디로 활용하여 웃음을 더했다. 우베르토가 새르피나를 가리켜 “꽃뱀같다”고 한 대사도 정곡을 찔렀다. ‘세르피나’(Serpina)의 어원이 ‘뱀’이란 걸 연출자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오페라팩토리의 '마님이 된 하녀'의 한 장면.(사진=오페라팩토리)
▲오페라팩토리의 '마님이 된 하녀'의 한 장면.(사진=오페라팩토리)

물론, 페르골레지의 흥겨운 음악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세르피나 김예은, 우베르토 장철준, 베스포네 한진만은 열정적인 노래와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출연자들에게 신들린 듯한 에너지를 주어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서너번 공연하고 잊어버리기엔 아까운 무대였다. 좋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학전의 <지하철 1호선>처럼 장기 공연해도 손색이 없을 빼어난 프로덕션이었다.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피아노의 안희정과 엘렉톤의 백순재가 반주를 맡아서 맹활약했다.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는 자유소극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음악적으로 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예산이 뒷받침된다면 원작의 악기편성을 그대로 살리는 게 아무래도 낫지 않았을까? 제1바이올린 3, 제2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스 각 1, 테오르보 1, 하프시코드 1, 도합 10명 안팎의 작은 악단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오페라 아닌가.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다면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를 노출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오페라팩토리의 '마님이 된 하녀'의 한 장면.(사진=오페라팩토리)
▲오페라팩토리의 '마님이 된 하녀'의 한 장면.(사진=오페라팩토리)

브로셔에 작곡자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의 이름이 없는 건 뜻밖이었다. 그는 2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 음악가로, 바이올린의 명인이자 코믹 오페라의 대가였다. 귀족 가문의 마리아 스피넬리와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애통해 하며 슬픔의 성모>(Stabat Mater)를 작곡한 뒤 세상을 떠났다. 페르골레지의 지명도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이름을 감출 게 아니라, 그가 모차르트에 필적하는 천재였고 그의 유머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마님이 된 하녀>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마님이 된 하녀>는 오페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작품은 시민 사회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코믹 오페라)의 효시로 음악사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페르골레지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난 1752년, 이탈리아의 ‘부퐁’(Bouffon) 극단이 이 작품을 파리에서 공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근엄한 음악에 길들여 있던 프랑스 귀족들은 이 작품이 매우 거슬렸다. 여자 하인이 귀족인 주인에게 따박따박 대드는 것도 불쾌했고, 시정잡배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쉽고 단순한 아리아도 천박해 보였다. 프랑스 음악계를 지배하던 륄리와 라모의 추종자들은 이 오페라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자, 루소를 비롯한 백과사전파 사상가들은 이에 맞서 권위주의적인 프랑스 오페라를 비판하며 페르골레지의 희극 오페라를 옹호했다. 유명한 ‘부퐁 논쟁’이다. 

▲오페라팩토리의 '마님이 된 하녀'의 한 장면.(사진=오페라팩토리)
▲오페라팩토리의 '마님이 된 하녀'의 한 장면.(사진=오페라팩토리)

얼핏 보면 프랑스 오페라와 이탈리아 오페라의 우열을 가리는 음악 논쟁이지만, 사실은 프랑스 구체제를 옹호하는 보수파와 이를 비판하는 진보파가 벌인 정치 싸움이었다. 양 진영이 결투까지 벌이며 뜨겁게 가열된 논쟁은 1754년 부퐁 극단이 추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겉으로는 보수파의 승리였지만, 소탈하고 자연스런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중들이 호감을 갖게 됐으므로 진보파의 승리로 볼 여지가 컸다. ‘부퐁 논쟁’은 1789년 대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의 한 계단이 됐다.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세상을 예고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의 씨앗이 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마님이 된 하녀>의 역사적 중요성을 홍보 과정에서 충분히 강조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부퐁 논쟁’의 맥락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며 오페라를 공연하는 ‘격자식 구성’ -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방식 - 으로 개작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1786년 오페라 대결을 묘사하며 모차르트의 <극장지배인>과 살리에리의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를 나란히 공연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다시 무대에 올릴 기회가 오면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 

한 시간 가까이 유쾌한 웃음과 음악적 즐거움을 선사해 주신 오페라팩토리(예술감독 박경태)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