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국악진흥법 제정에 즈음하여⓷ 혁신의 내재화, K-국악의 도약을 꿈꾸며
[성기숙의 문화읽기]국악진흥법 제정에 즈음하여⓷ 혁신의 내재화, K-국악의 도약을 꿈꾸며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4.07.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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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진흥정책 구현을 위한 컨트롤타워 필요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민족이나 국가의 고유성을 내재한 전통은 시대를 관통하여 전해지는 일종의 ‘발명품’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공연예술이라 지칭하는 것들은, 멀게는 고대 삼국시대 발원되어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관통하여 ‘오늘·여기’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듯이 장구한 세월의 시간이 집적된 결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장구한 세월 자연발생적 혹은 엄격한 형식주의 토대 위에 발전해온 국악(여기서는 국악진흥법 제2조 ‘정의’에 의거,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를 포함한 개념으로 쓰임)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 더 명료하게는 1960년대 초반 법(문화재보호법) 의 제정을 통한 공적(公的) 제도의 견인 속에서 한층 넓은 진화의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었다. 

지난해 국악을 진흥·육성하기 위한 법제화 노력의 결실로 국악진흥법이 탄생되었다. 이에 그 후속조치로 국악진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제정되어 오는 7월 26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최근 지자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음이 감지된다. 개별 조례 제정을 통해 국악의 진흥·육성 및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수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악진흥법이라는 발명품을 마주한 ‘오늘·여기’ 정책적 성과를 위한 효율적 행정조직은 어떠해야 하는가? 보다 실효성 있는 법 시행을 위한 국악진흥기본계획 수립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국악 및 국악문화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현 시점에서 전통공연예술계의 공공과 민간영역에서의 반성과 성찰 나아가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局 신설, 컨트롤타워 필요

현재 국악 및 전통공연예술 관련 업무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의 예술정책관 지휘아래 공연전통예술과에서 총괄하고 있다. 공연전통예술과는 현 정부의 새로운 예술정책 구현 등 폭주하는 업무량으로 한계에 도달해 있는 듯 보인다. 부처 내의 기존 고유 업무를 비롯 소속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도 떠맡고 있기 때문에 업무량은 더 한층 증폭될 수 밖에 없다.

문체부 소속기관 중 국악진흥법 시행에 따른 업무 중 보존·계승은 국립국악원, 창작지원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국제교류 및 해외진출은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맡는다는 계획이다. 국악의 보존·계승을 위한 정책은 국립국악원 외에 국가유산청과 그 산하의 국립무형유산원, 국가유산진흥원(전 한국문화재재단), 무형문화재전수관 등에서도 수행하고 있다. 또 창작지원 및 해외진출 지원 역시 예술경영지원센터를 비롯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의 기관이 언급된다.

이렇듯 국악의 보존·계승, 창작과 해외진출 및 국악문화산업 관련 업무는 여기 저기 산재해 있거나 중복된 형국을 보인다. 따라서 기관별 업무의 중복성과 연계성을 면밀히 파악한 후  상호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시너지 창출을 모색해야 한다.

전향적 발상도 요청된다. 예컨대, 국악진흥법 시행에 따른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기관 통폐합 및 조직 재정비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이와 관련 최근 조직 재정비를 통해 새로 출범한 문체부 국제문화홍보정책실은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 2월 관계기관 협의 및 입법예고를 거쳐 국제문화교류와 해외 한국문화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문화홍보원을 문체부 조직으로 편입하고 국제문화홍보정책실로 확대·개편했다. K-컬처의 세계 확산 흐름에서 글로벌 문화중추국가를 표방한 가운데 해외시장을 겨냥한 정책적 판단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바야흐로 국악진흥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정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우선 분절적으로 흩어져 있는 관련 업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가령 전통문화예술국(가칭) 신설을 통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은 어떤가? 국악진흥법 시행에 따른 국가유산청과의 업무 중복성 및 각 지자체의 정책 구현을 위한 국악행정 지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문체부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별도의 국(局) 신설 주장은 더욱 설득력 있다. 

국악진흥을 위한 창의적 정책 수립

국악진흥법 제5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년마다 국악 진흥 및 국악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악진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과 더불어 실효성 있는 국악진흥기본계획 수립은 필수적 과제이다.

오늘날 우리는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그리고 탈산업사회로의 진입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산성 증가로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및 생산인력 감소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특히 급속한 인구 소멸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성을 더해준다.

국악계 역시 이러한 위기에 노출돼 있다. 국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지방의 국악과·무용과는 폐과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서울 이외 지역 대학의 국악과·무용과는 대부분 폐과되어 전공자가 없는 상황이다. 학령인구의 저하, 인구의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교육인재 및 국악인들의 지역 유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악 및 국악문화산업 발전을 통한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지방 소재 국공립단체 및 공공극장의 경우, 지역 고유의 문화원형 및 향토성 지닌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전국 각 지역에 산재한 유형유산(사찰, 서원, 향교 등 전통한옥공간) + 지역의 향토적 무형유산(전통음악·무용·연희) 등 전통공연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을 모색한다. 전통건축양식으로 건립된 국악전용공연장 확충을 통해 지역 랜드마크화를 유도하여 관광자원화를 추진한다. 국립국악원 지방 분원(강릉·서산) 건립부터 시도해보면 어떨까?

각 권역별 향토적 고유성을 지닌 특화된 전통예술교육을 통한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전통의 보존·계승을 꽤하고, 나아가 작품의 창·제작을 통해 콘텐츠화를 모색하여 자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줘야한다. 전통예술을 통한 자본 창출로 정주여건을 향상시켜 국악인의 지역 유출을 막고 나아가 외부로부터의 인구유입을 견인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한편, 최근 K-컬처의 세계 확산은 하나의 트렌드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예술한류의 인기와 더불어 국내 문화예술, 산업현장에서도 세계무대 진출을 위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K-콘텐츠 플랫폼 및 예술한류 확산의 전진기지로 재외 한국문화원·세종학당 등을 활용하고 국악 전문서의 영문번역 출판 및 보급 확대를 통한 보다 내실있는 세계화를 모색한다.

교육을 통한 국악의 대중화 및 저변확대도 빼놓을 수 없다. 초중등 학교교육에서 국악비율을 높이고 국민의 삶 속 국악의 일상화를 추진하여 향유기회를 증진시킨다. 아울러 국가의 공식 의례 및 행사 때 국악프로그램 우위 편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예술환경에 걸맞는 창의적인 국악정책의 발굴 및 수립도 급선무다. 가령 AI, 메타버스를 활용한 국악콘텐츠 창·제작을 통한 외연 확장 및 저변확대를 위한 정책도 긴요하다. 그밖에 국악의 역사·인문자원 발굴 확대 및 기록출판을 통한 정신문화적 가치 창출, 무형유산 전승자 및 전통예술인들에 대한 저작권 보호 방안도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혁신의 내재화, 건강한 풍토 조성

주지하듯, 2023년 국악진흥법이 민주당 임오경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악계의 오랜 염원인 국악진흥법이 제정되기까지 민속악계의 여러 뜻있는 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컸다. 특히 인간문화재 이영희·신영희 선생을 비롯 임웅수 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등이 앞장선 것으로 알려진다.

국악진흥법에 따른 올해 정부예산으로 약 230억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모두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기에 진중한 집행이 요청된다. 국악진흥법의 제정으로 전통공연예술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도래한 셈이다. 한편, 국악진흥법 시행에 따른 국가의 지원에 앞서 국악계 및 전통공연예술계의 반성과 성찰 나아가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공공영역에서의 혁신과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국악진흥법에서 지원기관으로 명시된 공공기관은 직무의 전문성과 더불어 공적(公的) 의식이 요구된다. 예컨대, 국립국악원의 경우 관료주의적 행정시스템의 범위 안에 놓여져 있지만 소속 예술단체를 거느리고 있다는 기관의 특성상 독자적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국립국악원 기획의 ‘일이관지’ 또는 ‘조선춤방’ 등에서 확인되듯 평준 하향화된 업무역량과 옅은 전문성 그리고 공적 의식의 결핍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것이 단지 업무담당자의 무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칫 한국의 근현대 춤의 역사를 왜곡·굴절시키는 치명적 무기로 작동된다는 점에서 엄중함을 상기시킨다. 기관의 전문성은 곧 인적자원의 전문성과 직결된다. 따라서 국악진흥법 시행에 즈음하여 국립국악원은 자체 역량강화를 통한 조직의 내실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그밖에 국악발전을 위한 개선점을 열거하자면, △ 무형유산 보유자 불공정 선정 및 사유화로 인한 폐단 개선 △ 무형유산의 종목지정 전환 및 ‘맞춤형’ 전승지원 체계 구축 △ 국악계 내부의 정악-민속악 상호간 대립과 갈등 해소 △ 협회 및 단체 운영의 공정성·투명성·합리성 확보 △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는 전통공연예술콩쿠르의 쇄신 △ 주례사적 평론 지양 및 창작-비평 상호 건강한 긴장관계 조성 △ 혈연·지연·학연에 따른 이권카르텔 타파 등이 거론된다. 오랜 세월 누적된 국악계의 부조리를 일소하고 건강한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K-국악의 도약, 문화강국을 꿈꾸며

잠시 시계를 10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세기 초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정책이 반추된다. 뉴딜정책의 성공적 추진의 원동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반부패 정책이고, 두 번째는 국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있었다. 국악진흥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 곱씹어야 할 교훈이라 여겨진다. 여기서 반부패 정책은 곧 적폐 청산이고, 이로 인한 합리적이고 건강한 풍토 위에서 국악이 꽃피울 수 있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하겠다. 

최근 한국국악협회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사장 선거 문제로 초래된 법적 쟁송을 비롯 무리한 정관 개정 시도로 인한 잡음, 협회의 독단적 운영과 해외공연의 불합리한 추진, 정부보조금의 불공정 집행 등 비정상적인 행태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국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정부보조금 문제는 치명적 불신을 낳고 있다(「국악타임즈」, 2024년 6월 18일자/6월 24일자/6월 25일자 참조).

이러한 연유로, 국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악계 스스로 체질개선 및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악진흥법 시행에 따른 국가의 예산 지원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다. 국악계에 잔존하는 불합리한 관행이 청산되지 않은 채 국악진흥법이 시행될 경우, 자칫 기득권자의 놀이터가 되거나 소위 업자들의 잔치마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악계의 자성(自省)과 더불어 정책당국 역시 합리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건강한 토양 위에 국악진흥법이 시행될 때 본 법률이 목적한 바, 국악(전통공연예술) 및 국악문화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국악진흥법 시행에 따른 K-국악의 도약으로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존재론적 위상이 한층 견고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