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무형문화재 지정은 언제?” 사장될 위기 속 소외된 전통공예 분야…장인들의 목소리 ①
[기획] “무형문화재 지정은 언제?” 사장될 위기 속 소외된 전통공예 분야…장인들의 목소리 ①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7.0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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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없다? ‘몰라서 못 찾는’ 전통 공예…교육・홍보 확대 필요
현 시스템 종목 간 위계 형성해…분열 야기하기도
심사위원 대다수가 학계 소속…정작 공예인은 없는 아이러니

‘장인’의 오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던 상인 계급 뒤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장인들이 있었다. 기존 서구 사회에서 장인들이 예술가와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면, 르네상스 시대 장인은 예술가, 상인들과 함께 최전방에서 문화예술의 부흥을 이끌어 나가는 주역이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을 통해 미술 공예 운동의 수공예 부흥 정신을 계승하던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장인과 예술가 사이의 장벽을 높이는 계급 구분 없이 새로운 장인 길드를 만들고자 했다. 바우하우스의 원칙 상 예술가와 장인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그렇게 공예의 지위 향상과 순수미술과 동등한 처우를 목표하던 바우하우스가 추구하던 미래는 실현 되었을까. 

▲송용운 명인이 제작한 죽간 (창포풍류)
▲송용운 명인이 제작한 죽간 (창포풍류)

지난해 12월 21부터 시행된 문화예술진흥법상 제1장 총칙 제2조(정의)에 따르면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및 뮤지컬 등 지적, 정신적, 심미적 감상과 의미의 소통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인상(印象), 견문, 경험 등을 바탕으로 수행한 창의적 표현활동과 그 결과물”로 정의된다. 여기서 공예는 “응용미술을 포함한다”는 미술의 범주 내에 슬그머니 끼여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고등학교 미술 과목 교과서에서 서양 미술은 목차의 대부분을 할애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나, 우리 정체성을 보여주는 전통공예는 그에 비하면 찾아보기가 힘들다. 요즈음 젊은 세대가 전통공예품을 실생활에서 사용할 실용품보다는 박물관에나 전시될 법한 옛 역사의 잔유물이나 고리타분한 것으로 인식하거나, 관심조차 없는 것에는 교육이 미비한 탓도 있을 것이다. 전통공예가 매력이 없어서 찾지 않는게 아닌, ‘몰라서 못 찾는’ 셈이다. 

현재 공예 업계에서는 현대인들이 전통공예를 배우기 위한 매개체가 없고, 인재를 육성해 나갈 사회적 기반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국가차원에서의 지원이 부족한 탓에 관심 밖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 전통과 역사는 장인들의 목소리를 빌려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세대가 거듭될 수록 전통공예가 설 자리는 점점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등채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등채

잇기 힘들어 잊힌다

국가유산청에서 전승취약종목 보호 및 공예분야 전승자 작품 구입 및 활용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 나가기 힘들 정도로 장인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전수생, 이수자, 전수조교, 보유자(명예보유자)등의 계층구조로 되어 있는 전승 구조 내에서 전수생에서 이수자가 되기까지 평균적으로 3년 이상이 소요되고, 이수자에서 전수조교까지는 약 15년, 보유자가 되기까지는 20년이 소요된다. 이수자 단계에서는 작품 판매가 용이하지 않은데 생계를 유지할 지원금도 따로 주어지지 않는 데다가, 전승 조교가 되는 것은 흔히 ‘바늘 구멍’에 비유될 만큼 경쟁이 치열하기에 부업으로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 나가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4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하늘의 별 따기’인 보유자 단계에 이른다고 해도 지원금액은 재료비를 충당하기도 힘든 수준이라 수요가 적은 전통공야 분야에서는 전승활동을 포기하는 사례도 빈발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지원사업 역시 수요가 있는 현대공예를 우선순위에 두는 추세라, 비인기 분야 공예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 장인들의 주장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칠화장(漆畵匠) 청목(靑木) 김환경 선생은 ’칠화’를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인정받기까지 자그마치 십 년이 걸렸다. 그는 그 과정을 회상하며 “십 년의 투쟁”이라고 말한다. 칠화 같은 경우에는 고구려의 ‘수렵도’나 신라의 ‘천라도장니’ 등 1,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김 칠화장은 60년간 오로지 ‘칠화’ 하나만 바라보며 칠화 인생을 걸어온 장인으로서 우리 칠화 문화의 저변 확대와 기술 전승에 힘써왔다. 그럼에도 지원을 하면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탈락 통보를 받고, 다시 지원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는 “이 정도는 약과”라며, “20년, 30년 걸려도 끝내 지정되지 못하는 종목들도 있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갑옷 (두정갑)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갑옷 (두정갑)

무형문화재 지정 종목들도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제도적 혜택조차 일체 받지 못하는 소외 분야들이 자멸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 역시 큰 문제다. 조선시대 『경국대전』 공전공장조(工典工匠條)에 따르면, 수도 근방에는 130분야의 장인 2,841명을 ‘경공장’으로 지정, 지방에는 27개 분야 3,461명을 ‘외공장’으로 지정해 정부해서 관할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지정되었던 대부분의 분야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지 못한 소외분야들은 전승취약종목은 물론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등록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록화 작업 등 전통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제도상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한 명의 명인에 의해 간신히 맥이 유지되고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전통공예분야의 보호육성을 위한 새로운 변곡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무형 민족유산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자멸하거나 단절되어 버릴 것이라는 진단은 수년 째 유령처럼 떠돌며 공예인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실감하고 있는 미지정 종목・소외 분야 장인들을 만나 녹록치 못한 우리 전통공예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목 간 위계 형성하는 시스템

지난 4월 1일,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측에 무형문화재 미지정 종목 장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통한 실태 파악 및 장인 등록, 조달청 공개입찰 참여 등을 위한 전통분야 대상 고유번호 발급 등을 건의했다. 이 회장이 이렇게 건의한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반영되지는 않고 있다.

올해로 79세를 맞이한 이칠용 회장은 공예 분야에 50년 이상 몸담으며, 집필한 저서만 80권이 넘어간다. 쉬는 날에는 헌 책을 사러 다니고, 그 흔한 노래방에 한 번 밖에 안 가봤다는 그는, 평생에 가까운 시간동안 소외되고 있는 공예인들을 대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전념해오고 있다.

지난 5일, 취재를 위해 찾은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사무실, 빼곡하게 쌓여 있는 칠기로 채워져 있는 책장 사이에서 그간 공예인들이 겪어온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이 두텁게 쌓인 서류들을 꺼내 온 그는 “국가유산청(前 문화재청)은 이름만 바꿀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문제점부터 직면해야 한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취재를 위해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칠용 회장의 모습이다.
▲취재를 위해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칠용 회장의 모습이다.

이칠용 회장은 “무형문화재 제도가 오히려 전통공예 분야를 망쳤다”며, 전통공예 업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현행 제도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무형문화제 제도가 계층구조의 형태를 띠고 일종의 ‘인증’ 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 장인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면 한 세월을 바치고도 밥줄이 끊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통공예 분야에서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형국이니, 공예인들은 자연스레 무형문화재 지정에만 목을 매게 된다. 

이러한 계층구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의 부작용으로, 팀 단위로 작업해야 하는 종목의 장인들 사이에서도 경쟁구도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팀 단위로 작업해야 하는 종목은 ‘단체종목’으로 지정된다.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3조에 따르면, “보유자 개인 뿐만 아니라 해당 무형문화재의 기능 또는 예능의 성질상 개인이 실현할 수 없거나 보유자로 인정할 만한 자가 다수인 경우, 무형문화재의 기능 또는 예능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단체 역시 전승자로 인정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럼에도 종종 단체 종목으로 지정되어야 할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미비한 상태로 개인 종목으로 지정하는 ‘절름발이식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칠용 회장의 지적이다. 실제로 ‘명주짜기’의 경우 1988년 개인종목으로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으나, 외부 전문가들의 지적에 2017년에 단체종목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7-8명이 함께 제작해야 하는 ‘방짜유기’의 경우에는 현재 개인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에 대해 이봉주 방짜유기장 명예보유자가 명예보유자 신청 과정에서 한 차례 건의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이렇게 팀 단위로 작업해야 하는 종목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채 개인 종목으로 지정되는 경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장인들이라고 해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미보유자 사이에는 주어지는 혜택이나 업계 대우에 있어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중 한 명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면, 나머지 장인들은 하청업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하고, 협업이 중시되는 작업임에도 경쟁구도가 형성돼 내부 분열이 야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이칠용 회장은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재한 채로 위계를 만들고 내부 분열을 야기하는 시스템”이라며 거센 비판을 가했다. 

▲변옥자 명인이 제작한 조선시대 대수머리 가체
▲변옥자 명인이 제작한 조선시대 대수머리 가체

이건 되고 저건 안되고…이유는?

이러한 위계는 각기 다른 종목 간에도 형성된다. 비슷한 종목이나 연계된 종목 간에도 모종의 이유로 무형문화재 지정 여부가 나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매듭장은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다회장은 그렇지 않다. 작업 방식을 살펴보면 다회장이 끈목을 만들면 매듭장이 수술을 달게 되는 수평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음에도 무형문화재 지정여부로 같은 장인들 사이에서도 서열이 발생, 다회장은 매듭장 하청을 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소외되고 있는 미지정종목의 경우, 이와 유사한 사례가 다수다. 이 회장의 말에 따르면, 자수장은 지정되었으나 후수장은 부재하며, 염색장은 쪽염색에만 해당되고 홍염장은 미지정된 상황이다. 대목장은 3명씩 지정이 되는데, 창호, 닫집, 구들, 흙담 등은 지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 한지,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고서 복원장이나 금속매장문화재 복원장 역시 미지정 상태다. 이 외에도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혁필, 전통 궁중머리인 가채, 섬유인형, 번각, 어구류, 물레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종목 중 어느 것은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이 되고, 어느 것은 시・도무형문화재에 머물러 활동지역이 한정되거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만 일부 정부 주관 행사에 초빙되는 등의 차별이 발생, 여기서도 종목 간의 위계가 나뉘게 된다.

국가나 해당 시·도 관할 구역에서 지정하는 기준 역시 불명확해, 선정 과정에 대한 뒷말도 심심찮게 나왔다고 한다. 이 회장은 “새로운 청장이 오면, 문화재청 비밀금고에 자와 저울이 있지 않느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라며,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을 11번이나 맡았는데, 지정 기준을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송용운 명인이 제작한 죽간 (죽향풍류)
▲송용운 명인이 제작한 죽간 (죽향풍류)

무형문화재 지정 및 심사와 관련된 논란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2010년에는 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심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나 지침이 없어 지정 심사가 위원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국민권익위원회는 문화재청으로 하여금 무형문화재 지정 및 인정심사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2015년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등의 인정 조사기준’을 고시했다. 그러나 이때 발표된 조사지표 역시 개인종목의 경우 ‘형식미, 내용미와 표현미의 수준 정도’ 등 ‘전승 기간’ 항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정성적 평가의 영역에 있어 모호한 선정기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정성적 영역을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이 실질적으로는 공예 활동을 이어나는 공예인이 아니라는 점 역시 꼬집었다. 지난달 새로이 위촉된 ‘제5대 무형유산위원회 전문위원 중 ‘공예를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공예를 배워도 공예가가 되지 않는데, 문화재를 지정하는 평가자는 대부분 학계에만 오래 몸담아온 교수인 것이 아이러니하다”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문제로, 이 회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현장의 공방 위주로 지원사업을 펼치기보다는 아카데미 위주의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어,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공예인들의 무대인 ‘전승공예대전’의 심사위원들 역시 대부분이 보유자가 아닌 교수”라며, “대학에서는 기술이 아닌 이론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공예 관련 학과 교수들은 대부분 직접 활동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다음 기사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