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무형문화재 지정은 언제?” 사장될 위기 속 소외된 전통공예 분야…장인들의 목소리 ②
[기획] “무형문화재 지정은 언제?” 사장될 위기 속 소외된 전통공예 분야…장인들의 목소리 ②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7.0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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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밖 소외 종목 현실…생계는 물론 제자 양성도 어려워
‘인간문화재’ 되려면 평균 40년 소요…지원금액은 재료값도 안 돼
종목 지정 안돼도 사명감으로 전통 잇는다…외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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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채・갑주 명인 금관 김한섭 “’사라져가는 분야’라는 생각 들어…교육・홍보 부족한 탓”

등채는 과거 장수들이 사용하던 지휘봉으로, 왕이 중요한 국가적 행사를 치를 때 사용되며 왕권을 상징하기도 했다. 굵은 등나무로 만든 긴 막대기 형태의 머리 쪽에 물들인 녹피나 비단 끈을 단다고 해서 등채라고 불리운다.

금관 김한섭 명인은 25년 간 우리 전통 등채와 전통 갑주를 연구하고 제작해왔다. 등채 제작과 배포를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계승과 전수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자랑스런 우리 문화임에도 외국에서 관심을 더 가진다”라며, “교육과 홍보가 부족한 탓에 사라져가는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조선시대 후기 투구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조선시대 후기 투구

그는 “등채는 우리 전통과 옛 문화, 조상들의 철학이 깃든 무구(武具)”라며, “등채를 통해 당시의 문화와 관습, 시대적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등채는 포도대장,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등 한 부대의 수장(首長)이 되어야지만 지닐 수 있었기 때문에 신분의 상징이었으며, 악귀를 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에 오방색이 쓰이는 등 우리 조상들의 철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등채는 수년 째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 그는 등채가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 묻는 질문에 “등채를 볼 줄 아는 전문 심사위원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시스템 상 아쉬운 점을 묻을 묻는 질문에는 “무형문화재 지원금액이 재료 값도 되지 않을 만큼 터무니 없이 적다는 점”과, “나라장터 서류만 해도 100장이 넘어가는 등 증빙 과정이 까다로워 문서 작업이 익숙치 않은 장인들에게 종목 신청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악귀를 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담아 등채에 쓰인 오방색
▲악귀를 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담아 등채에 쓰인 오방색

‘국가유산청(문화재청) 등 국가 기관에서 전통공예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급한 것’으로는 작품 판매를 위한 매개 마련을 꼽았다. 그는 “길가의 카페나 공방, 소품샵 등에서 서구 공예품들을 판매하는 모습이 흔히 보이는데, 일본이나 이탈리아 등 공예 선진국은 자국의 공예품을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매개체가 잘 마련되어 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국가에서 공식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전통 공예 판매처가 없다는 사실 역시 지적하며, “요즘 같은 시대에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장인들은 한 가지만 바라보며 살아온 만큼 홍보, 판매 등 사업적인 측면이 취약하다”며, “과거 시대를 다루는 드라마 등 요즘 유행하는 한류 컨텐츠와 연계해 홍보하는 등 국가유산청이나 공진원 등의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교육과 홍보를 도왔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죽간(竹竿) 명인 송용운 ”잘못된 식민사관으로 무형문화재 종목에서 누락돼…우리가 원조”

송용운 명인은 중학교 때부터 우리 전통 대나무 낚싯대인 죽간(竹竿)를 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무역인의 길을 걸었지만 가르침을 받은 고 방기섭 선생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대나무 낚싯대의 전통이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25년간 이 길을 걸어오고 있다.

죽간과 견짓대는 임원경제지 전어지 2편에 설명과 그림이 나오고 부분별 칫수와 제작 방법이 나와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전통 공예 분야다. 경국대전에는 12명의 죽장이 궁궐 내에 있어 대나무 관련 공예품을 제작하였으며, 그렇게 제작된 죽간을 왕실과 사대부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풍속화에서도 죽간과 견짓대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죽간은 무형문화재 종목으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다.

▲송용운 명인이 제작한 죽간 (선비풍류)
▲송용운 명인이 제작한 죽간 (선비풍류)

송용운 명인은 그 이유가 무엇일지 묻는 질문에 “지금의 꼽기식 대나무 낚싯대는 일제 치하 때 일본에서 들어와 만들어진 일본 문화라고 주장하는 일부 문화재 관련 학자들 때문에 지금까지 대나무 낚싯대가 무형문화재에서 누락되었다고 본다”라며 “남아있는 문헌과 풍속화 등의 자료를 찾아본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꼽기식 대나무 낚싯대도 우리가 원조고, 일본이 이를 모방하고 산업혁명을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이면서 대나무 낚싯대를 대량 생산화했던 것을 일제 치하 때 낚싯대라는 상품으로 우리가 사용했던 것인데 대나무 낚싯대는 일본 문화라고 치부하여 무형문화재에서 누락시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이 아름다운 전통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전통을 후대에게 계속 이어나갈 자신이 없다”라며, “여러 문하생이 들어와 배우고 이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 후대에 전승되고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통을 잇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차상위 계층에 선정될 만큼 생계가 어려우며, 현실이 이러니 전승 또한 쉽지 않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럿 있으나, 돈 한 푼 줄 수 없는 상황에 그들도 생활이 있는지라 결국은 조금 배우다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송용운 명인
▲송용운 명인

그는 궁여지책으로 네이버 카페에 대나무 낚싯대 제작에 관한 모든 도구와 방법들을, 유튜브에는 제작하는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있으며, 그것을 보며 배우는 사람들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전통이라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주변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고 전승되는 것”이라며, “맥을 이어가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배려가 있지 않고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하루라도 빨리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해 아슬아슬한 전통의 맥을 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가체(加髢) 명인 변옥자 “개인적으로 전통 문화를 지켜 나가는 사람들…외로운 길”

사극 드라마에서 누구나 접해봤을 가체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신라조에 신라 부인에는 미발(美髮)이 많고 길이가 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당서(唐書)』 신라조에도 아름다운 두발(頭髮)을 머리에 두르고 주채(珠綵)로 장식하였다고 나타나 있다. 신라의 명물로 외국에 수출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부녀자 수식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기능했다고 전해진다.

변옥자 명인은 40년 동안 조선 전통 딴 머리인 가체(加髢)를 제작해왔다. 그는 작년 인천시에 가체 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신청을 하였으나, 이러한 역사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인천 지역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변옥자 명인이 제작한 조선시대 트레머리 가체
▲변옥자 명인이 제작한 조선시대 트레머리 가체

국가나 시・도 무형문화재로는 지정되지 못했지만, 변옥자 명인의 가채는 ADAGP 국제수급권을 취득해 소정의 로열티를 받고 해외에도 우리 전통 머리 양식을 알리고 있다. 국가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가치를 해외에서는 인정 받은 셈이다. 변옥자 명인은 “김치나 한복 등 우리의 오랜 문화유산들이 타국의 전통으로 오인 받기도 하는 오늘날, 자랑스런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임을 알리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는 “주변에 이렇게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문화를 지켜가는 분들이 많다”라며,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전통을 잇는 일이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보니, 제자를 양성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명인은 자녀들에게 전수하고자 노력 중인 상황이다.

그는 “전세계적 교류도 많아지고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오늘날, 문화적 융합으로 우리 전통 문화의 정체성이 흐려질 가능성도 있고, 세대가 지나가며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하며, “제자 양성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에서만 확인할 게 아니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통을 단순한 과거의 산물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 삶과 동행하는 방식으로 지켜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행사를 늘리고 이렇게 소외되고 있는 전통공예 분야들을 모아 전시를 여는 등의 방식으로 문화를 활성화시켰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변옥자 명인이 제작한 가채 중 조선시대 조짐머리(낭자머리)
▲변옥자 명인이 제작한 가채 중 조선시대 조짐머리(낭자머리)

전통에 내일이 있도록

전통은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루는 서사로 기능한다. 영어로 중국을 뜻하는 ‘China’는 소의 뼛가루를 주 성분으로 제조한 도자기를 뜻하는 ‘Bone China’에서 유래됐으며, ‘Japan’은 영어로 옻칠의 명사형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11월 13일을 ‘옻칠의 날’로 지정해 전국에서 옻나무를 심는다. 베트남은 6월 12일이 자수의 날이다. 달랏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자수박물관이 있으며, 베트남의 자수는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샤넬’과 같은 명품 의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 역시 전통 문화유산의 가치를 잊지 않고 보존하는 것을 넘어 ‘오늘의 것’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교육과 홍보 등 적극적인 노력을 쏟을 필요가 있다. 정체성과 문화가 쉽사리 도둑질 당하고는 하는 요즈음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전통을 잇는 소외 분야 장인들의 피나는 노력을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의 확대가 절실하다.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은 지난달 국가유산 체계로의 전환을 선포하며 새단장을 마쳤다. 기존의 ‘무형문화재’는 60년만에 ‘무형유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지만, 제도 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외 분야 장인들은 여전히 내일이 두렵다.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줄어든 것을 핑계 삼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말 뿐만이 아닌 ‘적극 행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