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풍경 속 기묘한 노스탤지어…《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리뷰]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풍경 속 기묘한 노스탤지어…《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7.09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2~6.23, 일민미술관
그래프턴 태너 ‘포에버리즘’ 개념에서 출발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일민미술관에서 지난 4월 12일 개막한 전시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가 지난달 막을 내렸다. 경험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속해낸 이 전시는 그래프턴 태너의 ‘포에버리즘’을 중심으로 여러 담론과 맞닿아 있다. 

▲스티브 비숍, 스탠다드 발라드 Standard Ballad, 2015,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5min. 10sec.
▲스티브 비숍, 스탠다드 발라드 Standard Ballad, 2015,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5min. 10sec.

이 시대의 가장 큰 산업, 그리움

그리움은 이 시대의 가장 큰 산업이다. 사회, 문화, 정치 전반의 영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대부분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감정과 연결된다. 소셜 플랫폼은 과거의 빛나는 순간을 오늘의 트래픽과 교환하고 아이돌 그룹은 지난 세기 팝 문화의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 경쟁한다. 정치인의 선거 전략은 좋았던 시절을 거듭 회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움이 현실을 지배하는 유력한 감정이며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전술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소비자, 관객, 유권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현실보다 친밀하게 받아들이면서, 실제로 소유하지 않았던 대상에 대해 애착과 상실의 감정을 느낀다.

-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 서문 中 -

그래프턴 태너는 저작 『포에버리즘』에서 동명의 개념인 ‘포에버리즘(foreverism)’을 “과거를 영원화(foreverizing)함으로써 과거를 현재 속에 계속 두고자 하는 행위”로 소개한다. 

패션, 동시대를 아우르는 오늘날의 트렌드 중 하나는 ‘Y2K’다. Y2K는 연도를 뜻하는 Year, 숫자 2, 1000을 가리키는 Kilo의 앞 글자를 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세기말의 생활양식을 가리킨다. 

2011년 개봉한 써니, 이듬해 브라운관에 찾아온 ‘응답하라 시리즈’ 등, 요즘 청년들의 부모님뻘 세대의 연애담과 일상이 담긴 콘텐츠들이 약 십여 년 전부터 부쩍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성수동이나 문래동, 연남동 등지에 위치한 소품샵에는 어김 없이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는 아이템들이 반겨준다. 

요즘 대중음악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만큼 가장 핫한 스타 그룹 중 하나인 ‘뉴진스’ 역시 Y2K 컨셉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과거를 샘플링해 현재를 재창안하는 혼톨로지(Hauntology) 음악은 그리움을 동력으로 여전히 현대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집단적이고 범국가적인 ‘그리움’은 원형에 대한 전유를 거쳐 ‘뉴트로’라는 이름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탄생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이러한 그리움이 과거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품는 과거에 대한 환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 전경 ⓒ김연신 기자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장에 어딘가 미심쩍은 분위기를 풍기는 케이크와 라디오가 놓여 있다. ⓒ김연신 기자

불안의 대항, 노스탤지어

이동진 평론가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을 두고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라는 한줄평을 남겼다. 현대인들은 그리움을 위한 그리움을 품고 살고, 그 감정은 이처럼 생생하게 특정 이미지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현재의 결핍을 곧잘 포착해내곤 하는 인간이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썩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지나온 적 없는 시·공간에 대한 기묘한 애틋함과 여운을 느낀다는 점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고전적인 의미의 노스탤지어는 불완전한 이동의 결과로 생겨났다. 이런 노스탤지어는 익숙한 고향의 정취나 정경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했다. 그러나 새로운 이동수단, 디지털 미디어가 펼친 공간 감각이 현대의 생활에 자리 잡은 후, 지리적인 의식은 점차 희미해지고 노스탤지어는 시간의 잔존물과 함께 일종의 망상처럼 촉발된다. 문화비평가 그래프톤 태너는 이 현상을 ‘영원주의(Foreverism)’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영원주의는 기록과 저장을 위해 개발된 매체 기술에 기반하지만,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고 기억하는 것, 그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에서 나아가 무엇도 종결되지 않는 특유의 상태를 유발한다. 영원주의가 도래한 사회는 우리가 결말을 맞닥뜨릴 때 겪는 우울감을 소거하고 과거가 아닌 영속화된 현재를 소비함으로써 노스탤지어를 갈망하도록 이끈다. 이때 고전적인 그리움을 대신하는 것은 그리움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력과 그 결과다.

-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 서문 中 -

▲루키쨩의 미래 Ruki-chan’s Mirae, 2024, Table Top Rpg, mixed media, size variable, play time: 1hr. '루키쨩'의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들이 루키쨩을 추억하는 내용의 보드게임이다.
▲루키쨩의 미래 Ruki-chan’s Mirae, 2024, Table Top Rpg, mixed media, size variable, play time: 1hr. '루키쨩'의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들이 루키쨩을 추억하는 내용의 보드게임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 현대인들이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반대급부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과거 속수무책으로 몰아치듯 쏟아져 들어온 모더니티에 과거로 회귀해야한다고 말하던 낭만주의자들이나, 더 나아가 본질에 가까운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하던 원시회귀주의자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폴은 늘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해왔던 주인공 길 펜더에게 크리스토퍼 젠크스의 ‘황금시대의 오류’를 제시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부정’이야. 고통스러운 현재에 대한 부정. 현재를 부정하고 살 수 있다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오류가 바로 ‘황금시대 사고(golden age thinking)’야. 그건 잘못된 개념이지. 다른 시대가 현재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은 현실에 적응 못하고 로맨틱한 상상이나 하는 사람들의 허점이지.”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中 - 

▲전다화 작가의 작품들. '우리 가좍', '(이상한 섹스 관련일듯...)' 등 작품 제목들이 상당히 개성있다.
▲전다화 작가의 작품들. '우리 가좍', '(이상한 섹스 관련일듯...)' 등 작품 제목들이 상당히 개성있다.

가상의 과거로의 도피

레오 까락스 감독은 “밤은 영화이고, 영화는 곧 밤”이라고 말한다. “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현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Die Religion … ist das Opium des Volkes.)”이라는 말은 주로 근현대에 반종교주의를 말할 때 인용된다. 그러나 마르크스 생전 아편은 마약이자 진통제로 기능했다. 오늘날에도 아편 성분은 강한 진통제에 쓰이고 있다. 

‘가상의 것’을 향한 그리움은 때론 불안에 잠식된 영혼에 먹먹한 진통제로 기능한다. 벌겨벗겨진 듯한 대낮에 불을 끄고, 영화적 공간으로 감성을 이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테마파크를 찾는다.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를 두고 “디즈니랜드라는 가상의 세계가 어린애 티를 내려 하는 이유는, 어른들이란 다른 곳, 즉 실제의 세상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이며, 어른들의 유치성 그 자체가 그들의 실제 유치성을 환상으로 돌리기 위해 여기서 어린애 흉내를 낸다”라고 말한다. 

보드리야드식으로 해석한다면, 이처럼 기묘한 오늘날의 집단적 노스텔지어 현상은 노골적인 현실의 불만족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은폐하기 위해 그 종착점을 실제로 겪어본 적 없는 ‘가상의 과거’로 정해둔 것으로 설명될지도 모른다.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장을 잇는 문.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전시장을 잇는 문.

기억을 주재료로 삼는 비간의 영화는 레트로 이미지로 관객도 모르는 노스텔지어를 자아낸다. 현재와 미래, 과거가 뒤섞인 영화의 시점은 ‘카일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도시화, 산업화 이전의 풍경과 생활양식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며 잊고 있던 시대를 각인시킨다.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여운에 잠긴다.

<지구 최후의 밤>의 촌스러운 무대 조명과 미러볼, 옛 노래는 <카일리블루스>의 네온 조명, 원시적인 풍경, 낡은 카세트테이프,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동요와도 중첩되며 전혀 다른 사물로 정확히 같은 감정을 자아낸다. <지구 최후의 밤>에서 폭죽과 시계로 표상되는 ‘순간과 영원’은 현재에 영원히 머무르는 과거를 통해 다시금 질문한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존재는 선행하는데, 그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워하고 있는 경험과 상실의 대상은 실존하는가, 혹은 가상인가. 

전시는 이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12명(팀)의 작가들은 전혀 다른 주제, 소품, 매체를 경유해 결국은 같은 지점에 도달한다. 각각의 작품이 자아내는 기묘한 분위기는 결국 모아들어 하나의 감정으로 고인다. 전시는 작은 디스토피아와 같은 가상의 공간으로 관객을 안내하고, 관객은 실제인지, 가상인지 모르는 이미지들에 포위되어 유령처럼 부유하는 생경한 그리움에 붙들린다. 그 음울한 풍경 속에서 묘한 그리움과 함께 길을 잃을 자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