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관음보살의 자비가 봄 햇살 처럼”
“미소 짓는 관음보살의 자비가 봄 햇살 처럼”
  • 편보경 기자
  • 승인 2010.03.0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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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미술박물관, 중생의 염원 화려한 미술로 승화한 유물 가득

의겸등필수월관음도(義謙等筆水月觀音圖)앞에 서니 화려한 보관을 쓰고 미소 짓는 관음보살의 자비가 봄 햇살처럼 가득 내리는 듯했다. 누군가는 ‘불교’라는 단어만 듣고 편견을 가지고 지나쳤을 법한 박물관이 될 수도 있겠으나 우리 선조들이 중생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부처님’이라는 이름의 절대자 앞에 간절한 정성을 화려한 미술로 승화시킨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고요히 자리잡고 있는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숙명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공덕의 ‘작은 석가탑’을 조금 더 높이 쌓아가는 마음으로 한평생 정성을 다한 권대성 관장의 마음과 그 마음을 모두와 나누려는 마음을 담은 박물관은 그 어떤 박물관보다도 돋보이고 정겨운 이유가 분명했다. 

▲목조지장삼존불감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은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본관과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소재의 별관인 사찰 박물관 안양암(安養庵)으로 구성돼 있다. 본관의 상설전시실은 총 2층으로 이뤄진 건물에 조선불화실, 불교조각실 등 3개의 전시실에 다수의 보물급을 포함하여 60여점의 수준놓은 유물로 꾸며져 있다.

본관 1층 전시실에는 17, 18세기 불화들과 불상, 공예품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데, 고려시대 철불과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 심적암아미타극락구품회도(深寂庵阿彌陀極樂九品會圖), 풍경/반야용선대(風磬/般若龍船臺)등이 주목할 만 하다.

특히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볼 수 있는 풍경/반야용선대는 양 끝에 용두가 달린 긴 대를 아래로 운치 있게 풍경 16개를 달고, 양쪽 용두 아래로 다리 소리로 연결된 몇 개의 굵은 철사아래 물고기 모양의 추가 달린 풍경을 달았으며, 철사에는 각각 목조 동자상을 1구씩 매달린 모습으로 삽입해 매우 독특한 운치를 자랑한다.

또한 화면의 상부 중심에 아미타삼존상이 ‘품’(品)자형으로 배치돼 있는 심적암아미타극락구품회도(深寂庵阿彌陀極樂九品會圖)는 특히 그 수려함을 자랑한다. 아미타삼존상과 함께 과거 53불과 본존 우측 27불, 좌측 26불 등 나한 보살 등을 합해 모두 123인이 그림 속에 배치돼 있어 장관을 이룬다. 

2층 제2전시실은 불교회화실로서 잔잔한 기풍이 살아있고 작품성이 뛰어난 조선시대 불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제2전시실의 대표 유물로는 팔상도(八相圖), 보물 1204호 의겸등필수월관음도(義謙等筆水月觀音圖),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등을 들 수 있다.

기획전시실1,2층에서는 미얀마 옥불(玉佛)과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한「미얀마의 삶 그리고 마음」특별전을 전시하고 있다. 또 2층 제3전시실은 불교조각실로서 중생의 염원을 담아 조성된 불상과 재미있는 모습의 목조나한군상(木造羅漢群像), 목조지장삼존불감(木造地藏三尊佛龕)등이 전시되어 우리나라 불교조각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목조나한군상

부처님의 제자들을 만든 목조오나한상은 17~8세기의 특징 있는 유형으로, 둥글고 복스러운 동자형의 얼굴에 눈이 가늘고 작은 코와 입이 얼굴 중앙에 모여 마치 개구쟁이 같은 인상을 주는 나한들이 재미있다.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별관인 사찰 박물관 안양암은 관음전, 명부전, 금륜전, 천오백불전, 영각, 염불당 등을 갖춘 대가람으로 1889년 이성월 대사가 창건했으며 19~20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안양암이 서울 도심의 독보적인 사찰로서 원형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권대성 관장이 사명감을 가지고 1978년 개발위기에 몰린 안양암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00년 6월 관장 앞으로 ‘ 안양암 ' 의 소유권이 이전되기까지, 안양암 소속의 종단과 쟁송을 거듭하고, 사기집단 등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문화재 보존과 문화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23년이란 긴 시간을 견뎌낸 덕분이다. 

안양암은 지난 2004년 5월 3일 서울시청에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별관 사찰박물관으로서 정식 등록되었으며, 2005년부터 일반에 무료 공개되고 있다. 현재 안양암은 신앙의 공간인 사찰일 뿐 아니라, 조선 말기 당대 최고의 명승들인 고산(古山), 보응(普應)등이 조성한 불교 문화재를 보호,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 됐다.

현재 안양암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물 8건(총 16점)과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12건(총1546점)이 보관돼 있으며, 범종, 금고 등의 공예품 및 불연, 번 등의 불교의식구, 경판, 서적과 같은 법보 700여점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근대불교문화의 보고로 중시되고 있다.

▲권대성 한국불교미술박물관장
“검은 비단 바탕에 금니로 그린 아미타 그림이 비매품으로 전시가 되어 있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웠죠”

칠순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의 권대성 관장은 우리 문화재에 매혹돼 한평생을 ‘우리 문화재 지킴이’로 살아왔다. 본래 사학도 였던 권 관장은 워낙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다 보니 더더욱 불교미술에 애착을 갖게 됐다. 권 관장은 자신이 불교 미술품에 특별히 관심을 갖도록 한 그의 ‘30대의 첫사랑’ 탱화를 회고 하며 마치 그때로 돌아간냥 얼굴이 상기됐다.  

“70년 11월에 미도파 백화점 화랑에서 사찰 판화전을 열었죠. 그때 그 탱화를 30만원을 주고 샀는데 그때 30만원이면은 지금으로 치면 3000만원 정도가 되는 큰 돈이예요. 엽서 10장 크기 정도인 그 탱화로는 비싼 편이었죠. 가까스로 구입해서 머리  맡에 걸었는데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불교미술에 심취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 후 그에게 이상한 상황이 눈앞에 벌어졌는데 그것은 1980년도 후반부터 많은 양의 불교 유물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이 유물들은 외국인들, 대사관 부인들, 교수, 예술가들이 사기도 했는데 저는 우리의 불교문화재가 함부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저로서도 경제적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보니 한 점, 한 점 사들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 때 그 ‘안타까운 사명’으로 모은 유물들을 박물관 진흥법이 생긴 이후 1993년 박물관을 열게 됐다. 권 관장은 현재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의 별관인 안양암을 지킨 일화로도 너무나 유명하다.

“안양암이 1889년도에 창건된 절인데 122년 전에 창건된 절이지만 절이 상당히 품격이 있고 아름답지요. 문화재가 2300여점이 있는 절이니까 대단한 절입니다. 그러니까 61년도에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안양암 곁에 살아서 거기를 방문하게 됐는데 그때가 4월 초파일 전날이었는데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건물 10여동이 제비 집 같이 어우러져 있는 안양암에 그만 반하고 말았지요.

그런 절이 78년도에 아파트 회사로 넘어가게 돼서 한번더 가보지도 않고 매입하여 24년간의 소송 끝에 법정화해하여 도로 소유권을 찾아왔어요. 안양암은 창건 당시만 해도 서울 사대문 밖에서 제일 가까운 유일한 절이었고 융성한 절이었어요. 신도가 제일 많은 절이기도 했죠.

오늘날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절로 지방에는 순천의 선암사를 꼽고 서울에서는 안양암 만한 곳이 없는데다 불상, 불화 기타 의식구 등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유물이 2300여점이 있다는 것, 전 세계에서 사찰 박물관은 안양암하나 밖에 없다는 점 등을 들면 제가 정말 보람을 느낄 만 한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의 행보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불교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에서 발 빠르게 걸음을 옮겨 지금은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는 우리문화재 바르게 지킴이 상임공동대표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 3월 출범한 이래로 현재 153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우리문화재 바르게 지킴이’는 우리나라 곳곳의 잘못 지켜지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올바르게 지키고자 전국을 무대로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 문화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민족의 뿌리고 얼입니다. 현재 국민들의 인식이 문화재는 보존해야 한다는 점에는 여지가 없겠지만 현재는 그 보존 방법이 크게 잘못되어 있어요. 가령 창경궁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이 우리의 순종황제를 위로해 준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에 궁궐을 대부분 헐고 그곳에 식물원, 동물원, 박물원, 소위 삼원을 만들었던 만행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심지어 창덕궁도 대부분 궁궐을 헐어내고 비원으로 격하시켰지요. 그 때 여기저기를 어지럽히는 담쟁이도 심고 가로수도 총독부나 관저가 있는 곳은 은행나무, 그 외에는 플라타너스를 심었습니다.

▲심적암아미타극락구품회도

일본이 우리 문화를 황폐하게 하기 위해 조성한 것들이 100여년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마치 그것이 정당한 관행처럼 믿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더욱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의 문화재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문화재가 축조 되었을 당시 그 상태로 주변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고궁주변 가로수가 그늘도 만들어주고 산소공급도 하여준다하고 담쟁이는 식물이고 보기 좋은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둬도 좋지 않으냐는 의견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방치한 나무와 넝쿨들에 의해 무너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기억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권 관장은 고궁이 지어졌을 당시 담 주변에는 가로수가 하나도 없었지만 일정시대 민족혼 말상정책의 일환으로 고궁 주변에 가로수를 심어 궁궐 담장의 아름다움을 크게 훼손하고 있으며 가로수와 화단 등으로 그늘과 습기 때문에 문화재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 등을 조목조목 언급하며 그동안 두 권의 책까지 출간한 노력과 각 관공서를 대상으로 진정서를 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화재청에도 진정을 하고 서울시청에도 진정을 했지요. 다들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서로가 책임 전가를 하고 있어요. 문화재청에서 고궁에 있는 담쟁이 넝쿨은 제거하였고 각 광역시도에 문화재에 심겨진 담쟁이 넝쿨을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고궁주변 가로수와 화단은 서울시로 제거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지요. 저는 아무튼 적법하게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할 일을 뚜벅 뚜벅 하는 것이지요. 올해는 먼저 서울 성곽을 바로 잡은 뒤 계속해서 고궁의 화계(계단식 꽃밭) 동묘와 종묘 등도 같은 방식으로 잘못된 점을 시정해 나갈 생각입니다. 잘못된 점들이 하도 많아서 연차적으로 최소한 50권 정도는 책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대로 시행하게 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권 관장은 홀로 외로이 싸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가족들이 그의 이러한 일에 큰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천 없는 것을 종교라고 할 수가 없지요. 나는 쉬운 말로 ‘깡깡이’ 신자라면 우리 집사람은 불교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예요. 유물들을 수집하러 다닐 때 저와 늘 함께였습니다.”권 관장은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권관장은 2남1녀을 두고 있는데 큰 아들은 런던 대학에서 불교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둘째 아들도 일본 요꼬하마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현재 박물관의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단다.

문화지킴이 권 관장은 문화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열려있는 사람이다. 이제 ‘한국 문화 발전 지원가’로서 우리나라 문화를 보존하고 세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박물관을 지하 2층 지상 2층의 설계로 만드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하 1,2층은 불교미술박물관으로 쓰고 또 지상 1층은 한국 현대 미술관으로 꾸며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쓸 예정입니다. 또 230석 규모의 복합 공연장도 조성해서 장르에 관계없이 공연장이 없어서 예술을 하고 싶지만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고요. 박물관 경관이 좋은 것을 활용해서 2층에는 까페를 곁들인 휴게전망공간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권 관장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마지막 소명을 말했다. 

“공자님께서 2500년 전에 벌써 나이별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구분을 지셨습니다. 사람이 70에 가서는 ‘어떤 생각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해도 이치에 어긋나지를 않는다, 자연과 조화롭게 산다’고 말씀을 하셨지요. 저는 이제 문화재에 잘못된 것이 관행이 된 지금, 그것을 다시 시정하는 것만이 권대성이 일생 해야 할 최대에 사명이라고 봅니다. 지금 저는 문화재보존과 문화재환경보호에 관한 하나의 전통으로 남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