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를 만나러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뉴욕행이다. 14시간 비행 끝에 존 F. 캐네디 공항에 도착한다. 엘로우 캡을 잡아타고 맨하탄 중심지역 스프링 스트리트(Sprint St.)로 향한다. 김차섭과 김명희. 이 두 부부의 루프 탑 스튜디오는 맨하탄 초중심지에 있다. 교통이 편리해 어디든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명품 샵이 즐비한 화려한 거리지만 생활하기 더 없이 편리한 곳이다. 차이나타운도 옆에 있다. 끼니를 위해 장보기도 수월하다.
한여름이다. 뜨거운 땡볕이 강하게 차 천장을 관통한다. 강원도 춘천 북산면 내평리. 이 부부의 두 번째 작업실이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에누리 없이 서울에서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꼬불꼬불 길에 자연 풍광이라도 즐길세라 속도라도 늦추면 3시간은 훨씬 넘긴다. 춘천인가 싶었는데 산골로 더 들어간다. 오히려 양구와 더 가깝다. 물론 뉴욕보다 가깝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거대한 산을 뚫어놓은 몇 십 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인산인해인 가평휴게소에 들러 쉬어가야 한다.
한국과 미국. 김명희는 맨하탄 소호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다가 갑자기 강원도 산골 스튜디오에 조용히 칩거한다. 폐교를 작업실로 개조했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이 곳에서 김명희는 칠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김차섭과 김명희 부부는 시골 폐교를 무대로 작업실을 꾸렸다. 그들은 돌연 산골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치열한 뉴욕생활이후 처음이다. 완벽한 귀국도 꿈꿨다. 반강제 한국행에 그들의 이중생활은 시작되었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두 부부는 이 상황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 일 년에 반씩 뉴욕과 춘천을 오갔다.
김명희는 폐교에 남겨진 칠판을 캔버스 삼아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고, 20년 이상 칠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적이 거의 없던 산골에서 얻는 재료지만 소호 한복판에서 작업을 완성한다. 김차섭 작고 이후 김명희는 작가로서의 삶 외 다른 역할이 늘었다. 유족의 역할이다. 작년 여름 김차섭의 작고 1주기에 ‘김차섭기념사업회’를 출범시켰다.
김차섭 작품세계에 대한 학술조명도 계획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뉴욕에서 만난 김명희는 두 가지 역할을 균형감 있게 조율하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한지 20년이 넘었다. 각각의 작업실 역할도 분리되어 있다. 춘천 내평리에선 주로 쌓여 있는 작업 정리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고 소호에선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다. 오랜 습관이다. 내평리에 있는 김차섭의 작품과 아카이브 정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50년 타국생활 탓일까? 김명희는 나와 타자, 이곳과 저곳, 과거와 현재 등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두 개로 분할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속의 사각 프레임은 점차 선명해 졌다. 디지털 시대가 되니 사각 프레임이 영상화면으로 대체되었다. ‘그림 옆에 그림’ 일수도 있고, ‘그림속의 그림’ 일수도 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화면분할이 작업의 주요형식이 되었다. 김명희는 이중캔버스를 통해 전혀 다른 시공간을 통합시킨다. 하늘과 땅, 인간의 내외면, 해와 달 등의 이중세계는 캔버스에 난 창과 거울, 액자로 표현된다. 김명희의 칠판 그림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품고 있다. 칠판도 분할시킨다. 그가 칠판에 담으려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첫째는 지리학적 연구이다. 그는 남편 김차섭과 대륙을 횡단하며 수 많은 공간을 탐험했다. 뉴멕시코 원주민마을부터 러시아, 영국, 중국에 남아있는 봉분문화를 추적하면서 고대사 관점의 문명규정에 몰입했다. 물줄기를 따라 흥망 했던 문명을 탐색했다. 봉분은 강가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필연적 우연일까? 그렇게 탐색한 봉분의 위치가 고대시대 문명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무덤일수도 있고, 오랜 시간 화려했던 문명사의 흔적일 수도 있다. 지금은 서울과 맨하탄. 이 두 도시를 하나의 화면으로 그리고 있다. 비행기 이착륙 시 볼 수 있는 도시 풍경이다.
둘째는 인물탐색이다. 폐교에 버려진 칠판 때문이었을까? 김명희는 교실에 남겨진 칠판을 매개삼아 과거로 돌아갔다. 이 교실에서 한 창 웃고 떠들며 생활했던 아이들을 그렸다. 춘천 내평리 주민이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 명 한 명 칠판에 담긴 아이들을 한군데 모아보니 큰 군상을 이뤘다. 시간이 지나 이 아이들이 성장하니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다. 김명희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인물 군상을 그린다. 익명의 군상이 점차 지인들로 변했고, 이젠 동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담고 있다. 그렇게 김명희의 군상시리즈는 내평리 교실에서 시작되었다. 김명희는 작은 칠판에 먼저 드로잉을 한다. 칠판이 영상으로 대체되는 현상은 오늘날 교실 풍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배움과 소통의 매개체였던 칠판은 이제 전자칠판으로 대체되었다. 영상이 나오고, 쉽게 조작할 수 있다. 김명희의 아이디어 스케치 칠판은 아이패드와 같은 사이즈이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윈도우, 액자, 미디어, 칠판이 한순간 하나로 묶어진다. 김명희의 ‘그림 속의 그림’에는 ‘칠판 속의 미디어’, ‘미디어 속의 칠판’이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다. 바로 이중세계에 관한 경험이다. 우리는 칠판을 보고 있지만 그 시대에 속한 익명의 누군가를 만난다. 그들은 또 역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