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어느 한 개인의 운명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어느 한 개인의 운명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4.09.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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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고뇌와 방황 시간 통해 내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그동안 서양문화의 <수용과 융화> 발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온 것 같아 오늘은 나 개인의 어긋날뻔한 사랑과 인연의 씨줄과 날줄에 관해 써볼까 한다. 며칠 전 나는 신문에서 중남미의 소금의 나라 <볼리바아> 대통령선거 운동의 현황을 소개하며 한국인 입후보 정 아무개라는 분이 매우 선전하고 있으며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고 감개 무량하였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아주 아득히 먼 나라 미지의 세계로만 여겨졌던 남미의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오늘날 우리가 그 나라 선거진행 상황을 소개받을 만큼 가깝게 다가온 것을 보고 참으로 세월 따라 우리들 인간들의 시간과 거리의 함수관계가 이렇게 많이도 변할 수가 있구나 하며 놀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젊었을 적 내가 독일 유학을 갔던 1961♡년 M. RILKE의 시대관>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느라 애쓰고 있던 때에 뮌헨(München)에 있는 Goethe Institut에 독일어 실력을 보충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München 대학에만 있는 Theaterwisssenschaft 연극학을 병행하기 위해 내 유학지를 잠시 바꾸었다.

오전에는 Goethe Institut에서 독일어 수업에 열중하고 오후에는 나의 전공과목인 독문학과 연극학 공부에 열중했다. 그런 가운데 나와 비슷한 목적으로 오전에는 Goethe Institut에서 독일어를 오후에는 München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당시 볼리비아의 부통령의 아들Luis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다. Goethe Institut에서 1년 반 과정의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2개월간 교사실습과정을 München 근교에 있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Murnau에서 보낸 후 졸업하게 돼 있었다.

Murnau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로 독일표현주의 화풍의 한 발상지이기도 한 아름다운 도시다. Goethe Institut에서는 2개월의 실습을 마쳐야 어디에서나 독일어를 가르칠 수 있는 독일어 교사자격증과 더불어 졸업의 영광을 누리게 돼 있다. 장학금을 준 DAAD본부는 그 실습과정을 필수로 권하였다. 그 실습과정을 함께한 네 사람은 대만에서 온 40대 중반 AIWEN신부님과 이정희(?)라는 동생 같은 간호사 출신 한국 여학생, Luis와 나, 넷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수업을 마치고는 늘 함께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일과 중에 하나는 이미 약혼한 내가 북부독일 공업지역 도시 Duisburg에 있는 약혼자 김재관 박사에게 안부 전화를 하루도 빠지고 않고 하는 일이었다. 내가 전화하는 동안 세 사람은 기다려 주었다. 이후에 저녁산보에 나서 낮의 독일어 수업의 스트레스를 풀며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를 섭렵하며 그 풍광을 즐기는 일이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문제가 생긴 건, 실습을 끝마칠 무렵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Luis가 나와 함께 귀국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엔 나를 좋아한다는 표현으로만 들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진지했고 그의 열정적인 고집은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이미 반년 전에 약혼한 김재관 박사는 내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 나를 기다려 주기로 했기에 김재관 박사에게 감사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Luis의 고집으로 보이는 진심은 나를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나는 뒤늦게 진지하게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만 했다.

마안하지만 나는 내 약혼남 김재관 박사에게 나의 지금에 처한 나의. 혼란을 얘기하고 두 남자 모두와 두 달만 연락 없이 떨어져 있으며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게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한편 미안한 마음이었으나 나는 모두에게 정직하고 싶었다. 우선 나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의 마음의 나침판의 초침의 방향을 진지하게 감지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만남의 함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는지 내 감정의 초침과 시간의 함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앞으로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것인지 나는 많이도 고심했다. 모든 것에 정직하게 그 어려운 시간을 잘 넘기고 두 사람에게도 순수한 내 마음을 전했다.

우선 Luis를 보내기 위해 내가 갈 수 있을 때, 내 마음의 확실한 지침이 섰을 때 볼리비아로 가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먼저 떠나 그곳에 정착하고 편지를 주고받자 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그는 내게 배편 승선표와 항공편 티캣을 주고 마지못해 떠났다.

한편 나는 내게 생각할 두 달여의 시간을 주며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법은 다 다르니 잘 생각해서 결론을 내려달라고 점잖게 말한 김재관 박사의 넓은 마음에 다시 한 번 고마워했다. 나의 청춘의 고뇌와 방황을 시간의 철학, 시간의 씨줄에 사랑의 날줄을 엮은 한 번의 마음으로 앞으로도 닥쳐 올 여러 번의 모험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내가 갑자기 성숙했다는 느낌으로 내가 내게 감사하게 됐다. 내 생애에 이러한 혼란은 마음으로 잘 정리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나는 그때를 통해 내가 내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Luis는 그 후 부통령이 되었으니 축하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는데 나는 너무 바쁘게 지내는 가운데 답장을 못했다. 좀 미안함을 금치 못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남편 김재관과 나에게 감사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